할 일이 많았던 탓에 여유를 많이 두지 않고 출발한 출근길. 밥 먹는 시간을 아껴 나가는 길에 빵이라도 사먹으
려는 요량이었는데, 은행에 들렀다 가느라 평소의 출퇴근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다 보니 흔한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눈에 띄질 않는다. 와중 최근 비싼 커피숍과 부띠끄가 연이어 들어서는 연희동 뒷골목의 뜬금없는 틈새
분식집 발견. 건물의 짜투리를 활용한 테이크아웃 가게인 것 같은데, 막상 계산대 앞에 서서 둘러보니 집 냄비
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에 한켠에는 순대, 튀김, 수제 소시지까지 없는 게 없다.
그 중에 골라든 것은 컵에 든 닭강정을 가리키는 컵강정. 박스에 담아 파는 중자는 칠천 원, 대자는 만 원이고 컵
에 담아 파는 것은 이천 원이다. 닭을 좋아하기도 하고 들고가며 잽싸게 먹기도 편할 것 같아 시켜 봤다. 두어 살
위의 누나로 보이는 사장님은 냉녹차 한 잔을 건네 주고는 철판 위에 닭강정과 떡, 웨지 포테이토를 올려 천천히
볶았다가 여러 소스까지 알뜰하게 뿌려서 건네 주었다.
그 손길을 보는 동안 나는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갑작스레 마음이 편해졌다. 급한 탓에 무엇을 먹든 체할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든 말든 강의를 위해서 무슨 음식이라도 쑤셔넣어야겠다던 본래의 심정은 간 데 없고,
나는 컵에서 닭강정과 떡, 감자를 하나씩 골라서 번갈아 먹으며 느긋하게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타야 할 버
스를 코 앞에서 놓쳤는데, 다른 때 같으면 스머프를 놓친 가가멜처럼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
디에서 시간을 단축했어야 했을까를 복기했겠지만, 오늘은 버스에서 냄새 피우며 신경쓰면서 먹지 말고 이 참에
천천히 서서 맛있게 다 먹지 뭐, 하는 선승의 마음이 들었다. 다음 버스는 컵을 다 비우고 손과 입을 닦고 있을
무렵 마치 전용 자가용처럼 딱 맞추어 왔다. 그리고 결과는 거짓말처럼 평소보다 훨씬 넉넉한 세이프. 동화같은
출근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