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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쓰러졌다. 알게 된 것은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온 자정 무렵이었다. 엄마가

입원한 뒤로 아빠는 피곤한 듯한 기색을 보이는 일이 잦아졌다. 쿠당쿠당 소리를 내며 들어와도 아무

런 인기척이 나지 않아 집에 혼자 있는 줄 알고 마루에 누워 있다가 갑작스레 나오는 아빠에 놀란 적

이 한두번이 아니다. 얕은 잠을 자고 있었던 듯 아빠의 눈은 대개 시뻘갰다. 어제 밤도 그렇게 안방

에서 나온 아빠는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고 말해 주었다. 그 때문에 병원에서 잠깐 나온 엄마도 집으

로 하루 자러 왔으니 가서 인사하라고 아빠는 말했지만 돌아 누운 엄마의 등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피곤해 있던 차였다. 열두시 무렵까지 잤는데도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멍하니 있다가 그간 밀려

있던 집안일을 주섬주섬 한 뒤 엄마가 있는 병원에 갈 차비를 할 때까지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

았다.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삼십 분쯤 기다리는 동안 유일하게 들었던 것은 봄이라 날

씨가 따뜻해졌구나, 하는 느낌 뿐이었다.


엄마의 병원을 찾는 것도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어제 쓰러진 할머니 앞에서 통곡을 했다는 엄마는 체

념한 듯 이런저런 정황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는데, 듣고 있다가 갑작스레 눈물이 났다. 왜 나는지,

어떻게 나는지도 모르고 눈물이 뺨을 타고 계속 흐를 정도로 났다. 엄마도 이야기에 울음을 섞기 시작

해서,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하고 테라스로 나갔다. 주안을 내려다 보며 호흡을 고른 뒤 세

수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세면대 위의 거울에 비친 눈이 새빨갰다. 눈동자를 한참 쳐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은 다섯 시 반쯤이었다. 중환자실의 저녁면회는 일곱 시부터라고 했고 엄마의 병원에서 할머니

가 있는 병원까지는 삼십 분쯤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여섯 시쯤 일어나면 되겠지, 하고 막

내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은 이미 가서 혼자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전화로는 잘 들리지 않

았지만 삼촌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저쪽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겠다

고 한 뒤 병원을 나섰다.


막내삼촌은 쉰이 거의 다 되어 가지만 농담과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스무 살 정도의 터울이 지는

우리 조카들과도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장가를 가지 않고 쭉 할머니와 함께 살아와서, 어젯밤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하고 친척들에게 연락을 한 것도 삼촌이었다.


집에서 나설 때에는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며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면 어쩌나, 하고 책까지 한 권

챙겨 들었던 것이지만 울고 난 뒤라서 그런 것인지 멍하니 있는 동안 지하철은 금세 주안에 가 닿

았다. 병원은 눈에 띄는 곳에 있었다.


중환자실 앞에는 삼촌과 이모가 와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 어제의 일이나 요새의 근황에 대해 서

로 한두마디씩 나누고 다시 입을 닫고 있는 한 시간이 지나갔다. 일곱시가 되어 중환자실이라고 쓰

여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개의 옷장이 있었다. 삼촌은 초록색 가운을 꺼내어 입고 슬

리퍼로 갈아 신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좁은 복도 안은 다른 가족들까지로 북적북적해졌다. 우스꽝

스러운 초록색 가운을 대여섯살의 꼬마나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나 낑낑대며 입는 모습은 몹시 처연

했다.


가장 먼저 갈아입은 내가 중환자실로 먼저 들어섰다.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불쾌하게 더운 공기가

훅, 하고 끼쳐왔고 뒤를 이어 삐, 삐 하는 엇박의 기계음들이 들려왔다. 눈을 돌려보니 여남은 명의

환자들이 누워 수십 개의 선들을 몸에 꽂고 있었다. 의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걸

어가며 두리번두리번하는데도 할머니를 찾지 못 해 당황하고 있는데, 삼촌이 뒤에서 불렀다. 나는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 하고 지나친 것이다.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할머니는 삭발을 하고 산소호흡기

를 끼운 채 누워 있었다. 그리고, 작았다. 너무 작았다.


요 몇 년동안 기세가 줄긴 했지만, 외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상과는 좀 달랐다. 목소리도 카랑카랑

했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대로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우스운 얘기도 잘 했지만, 내

가 들은 것들은 대체로 할머니가 누굴 혼내줬다는 얘기였다. 할머니는 항상 당당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쪼그려 누워 있는 할머니는, 말도 안 되게 작았다.


어제부터 면회 시간마다 왔다는 삼촌은 혼자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십분도 안 되어 나가 버렸다. 이

모는 이런저런 말들을 붙이며 계속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중간에 으, 으 하

는 소리를 내긴 했지만 알고 대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이

고 2주일 내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고 했다. 이모가 정강이를

꼬집자 할머니는 발을 크게 들어올렸지만, 간호사는 이러한 행동들이 의식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

라고 말했다.


할 말이 없어 할머니의 어깨를 잡고 있는데, 침대 옆에 있는 기계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

작했다. 간호사가 걸어와 기계를 살피는데, 내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자 간호사는 ‘그 쪽이 아

니라 이 쪽 환자분이예요’라고 말하며 할머니의 옆 침대를 가리켰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한숨

을 크게 쉬다가, 그 쪽 환자의 가족들이 있었더라면 따귀를 철썩하고 맞더라도 할 말이 없었을 거라

는 생각을 하고 철렁했다. 우리 할머니만 아니라면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면회시간은 삼십 분이었지만, 이십 분쯤이 지났을 무렵 눈이 빨개져서 다시 들어온 삼촌은 한 마디

씩 하고 이제 나가자고 했다. 할머니, 또 올게 라고 말하는데 다시 왈칵 눈물이 났다. 혹시 깜빡, 하고

눈을 뜨지 않을까 싶어 계속 돌아다 보며 걸어갔지만, 문을 닫을 때까지 할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각자 집으로 간다는 친척들과 헤어지고 엄마의 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에 탔다. 오는 길에는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 몇 번이나 행인들과 충돌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진

이 빠져 멍하니 고개를 꺾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떼었다. 내 몸이 힘들면 눈물도 안 난다. 그 와중에도

부평역에서 갑작스레 풍겨 온 햄버거 냄새는 입맛을 자극했고, 눈 앞을 스쳐간 짧은 치마의 다리에

는 절로 눈이 갔다. 간사하구나. 간사하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병실에는 내가 간 사이 아빠가 와 있었다. 아빠와 함께 부평 상가로 나가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었다.

밥은 잘 먹혔다. 나는 반 공기를 더 먹었다. 식사를 하며 아빠는 엄마가 내일 MRI 촬영을 하게 되었

다는 말을 해 주었다. 교통계에 있을 때부터 운송공제조합 쪽 사람들은 일반 보험회사에 비해 질이

좋지 않은 것을 수 차례 봐 왔던 탓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MRI 촬영까지 보험금 지급을 받게 되었

다는 소식이 몹시 반가웠다. 교통사고 이전에도 엄마는 목과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고칠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어디가 왜 아픈지 알 수 있다면 마음이 한결 좋아질 것 같

았다.


병실로 돌아가 엄마와 잠시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시간쯤 나누다가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아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좋은 날보다 슬픈 날이 더 많다는 말을 했다. 명일이 평일

만 못 하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울음을 참느라고 창 밖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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