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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사월

중환자실의 할머니는 점점 몸이 오그라든다. 할머니 앞의 침대에는 양쪽 눈에 섬뜩하게 거즈를 붙인

여자가 누워 있는데 면회시간에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오늘 면회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흘끗 보자, 게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며칠 전 갑자기 위독해진 할머니에게, 가족들은 합의하에 산소호흡기를 달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당

신도 편하게, 가족들도 마음 편하게 될 수 있게 내린 조치이지만 담당의사가 갑자기 찾을 때마다 놀

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제 저녁 면회 시간에 한 간호사가 담당의사가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내일 시간을 내 달라고 말했다. 저녁에는 의사도 퇴근하기 때문에 면담은 낮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데, 오늘 낮에 가능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내가 가게 됐다. 삼십분여를 기다려 만난 의사는 이산화탄

소 농도를 낮추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갑자기 높아지면 돌아가시게 되는 것이니 생각하고 계시라

는 말을 한 번 더 하려고 불렀다고 했다. 병원이 아니라 동사무소였다면 이왕에 알고 있었던 사실을,

전화로 하거나 쪽지로 남겨도 될 것을 굳이 사람을 불렀느냐고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랏

님도 의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아쥐고 예, 예 하며 듣다가 나왔다.


저녁 면회를 끝내고 나면, 할머니의 병원이 있는 주안과 엄마의 병원이 있는 부평은 인천의 2대 상

권이기 때문에 거리고 지하상가고 시끌벅적한 가운데 지나갈 수가 있다. 하지만 낮 면회의 경우엔

저 멀리까지 보이는 쭉 뻗은 지하상가에 혼자 터벅터벅 걸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호선이야

언제나 미어 터지지만, 대낮의 국철에는 대체로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


일년전에도 똑같은 말을 웅얼거리고 있었다. 봄이라도 와라. 봄이라도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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