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이 태양계를 구성하는 행성의 자리에서 내려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2006년의 여름
이었다. 말년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그때까지보다 더 꼬이고 있는 군생활 중이라 다른 것은 도무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텐데도, 관련 기사가 떠 있는 모니터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취학 전부터 전문 교육 기관인 대학원에 재학 중인 지금까지, 한 차례라도 진지하게 뜻을 두었던
직업들은 전부 말하기나 글쓰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목록 중에 단 하나 스스로도 특이
하다 여기는 예외가 있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주제에 제법 과학잡
지인 뉴튼까지 구독하는 열성도 보였다. 정기구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핵물리학이나 생명윤리학
특집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해 보면, 여타의 꿈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당장 내 눈에 와 닿고
있는 저 빛은 수천 년 전에 출발한 여행자. 정작 그 별은 지금쯤 원래의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더하거나 뺄 것 하나 없는 과학적 사실fact이지만, 이것을 문학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문학이
라 부를 것인가. 때로, 과학의 철리哲理는 지고의 문예미를 갖는다.
제대 후 정신없는 재사회화, 그리고 생애 처음 떠난 해외여행의 준비로 정신 없다가 다시 명왕성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역만리 인도 땅에서였다. 캘커타의 한 성당에 북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길래 사진을 찍으러 간 길이었다. 성당을 청소하던 잡역부는 카메라를 꺼내 드는 내게
서툰 영어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부실을 찾아가 남한에서 온 신자인데 현재 미션스쿨
에 다니고 있으며 오로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고 호소하자 주임신부는 너그럽게 웃으며 촬영
허가증을 내 주었다. 열 살 근처에 엄마한테 등을 떠밀려 미카엘Michael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
은 적이 있고, 채플을 네 번이나 들어야 졸업을 시켜주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몽땅 거짓말은 아
니었다. 모든 예배 시간이 끝나야 촬영을 할 수 있다길래 한가해져서 주위를 산책하고 있는데, 천문
관이 눈에 띈 것이다.
인도의 유명한 재벌 가문이라는 벌라Virla 가에서 세운 벌라 천문관이었다. 벌라 가문 선대들의 초상
화가 잔뜩 걸린 복도를 빙 돌고 나니, 돔형의 내부가 펼쳐졌다. 하얀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돔을
보고 있자니 거대한 첨성대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햇살이 작렬하는 점심 무렵이기 때문인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어 방송 시간이었는데도 손
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의자 한 줄의 손잡이를 모두 올리고 가로로 길게 벌렁 누워 돔을 쳐다 보았
다. 곧 불이 꺼지고, 한가운데의 영사기로부터 돔으로 영상이 쏘아졌다.
쇼 영상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많은 사진들이 거대한 돔에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것도 흥미로운 장면
이었고, 녹음 방송이 아니라 라이브로 하는 것인지 나레이터가 자꾸 쿨쩍거리는 것이 몹시 우스웠다.
다리를 까딱거리며 인도 여행 내내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별이 진다네’를 멋대로 흥얼거리
고 있는데, 다음 쇼로 이어지는 잠시의 암흑 사이에 나레이터는 'Pluto', 라고 말했다.
음성은 영상과 함께 차분하게, 명왕성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언제 발견되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뉴튼
을 스크랩까지 해 두었던 내게는 오랜만에 다시 듣는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거기까지만
해 줬으면 했다.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직접 밟아 본 인도가 아직도 문화적으로는 형편없이 뒤떨
어진 나라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설마 고작 몇 달 전에 발표된 천문학계의 최신정보가 방송
으로까지 만들어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나레이터는 차분하게,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퇴출 소식을 알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천문협회의 새 행성규정 조칙까지 설명해 주었다. 그 방송
을 마지막으로, 쇼는 끝났다.
멍하니 터벅터벅 나와 보니 여전히 북인도의 햇살은 뜨거웠다. 다음 차례인 프랑스어 방송의 관객들
이 내 옆을 지나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고작 한 시간 전에 천문관으로 들어간 것 뿐인데, 왠지 주위
를 둘러싼 곳이 타국이라는 사실이 새삼 생생하게 느껴졌다. 문득 허기가 들어 길거리에서 파는 파이
를 사 들고 가로수의 그늘가에 앉았다. 한 입 베어 물고는 우물우물거리다가, ‘명왕성은 이제 인도에
서도 태양계의 행성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학생과학에 실린 조경철 박사
의 인터뷰에 가슴 설레어 하며 캡틴 퓨처를 신나게 읽던 유년기와, 뉴튼의 컬러사진들을 열심히
오려 내어 연습장에 붙이고 부록으로 나온 큰 포스터들을 책상의 유리 밑에 끼워 넣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미안해. 명왕성은 더 이상 태양계 행성이 아니래. 영어로도 확실히 들었어.
그것이 모두 약 일년 반 전의 일이다. 대학원의 첫 주, 공연은 일주일 앞, 엄마의 갑작스런 입원 등 쉽
지 않았던 한 주를 보내고 오랜만의 휴일에 느지막히 일어나 어제자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한 기사에
눈이 멈췄다. 새로이 아홉 번째 행성이 될 수 있는 천체를 발견했다는 기사였다. 이전에 행성으로 제
정할 것인지에 관해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던 세레스나 카론 등의 천체보다는 월등하게 큰 천체라고
했다. 기사 가운데 언급된, 예전에 아홉 번째 행성이었던 천체의 이름은 왜성 134340이었다.
기사를 쳐다 보며, 헤어진 옛 연인의 쓸쓸한 근황을 들을 때와 같이 나는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오
므리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슬퍼하거나 말거나, 인간들이 태양계의 행성으로 인정
해 주거나 말거나, 그 별은 거기서 수십억 년 쯤 돌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별의 공전주기
만큼도 못 사는 주제에 헤어진 연인 운운하는 게 건방진 짓이다. 명저 <드래곤 라자>에서 숲속의
철학자 카알 선생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꼬집어 ‘인간이 숲을 걸으면 길이 나고 하늘을 쳐다 보면
별자리가 생긴다’고 비판했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없고서야 어찌 인간이라 할 것인가. 나의 명왕성
은 이제 우주에 없다. 안녕 명왕성. 그동안 고마웠어.
이었다. 말년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그때까지보다 더 꼬이고 있는 군생활 중이라 다른 것은 도무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을 텐데도, 관련 기사가 떠 있는 모니터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던 기억이 난다.
취학 전부터 전문 교육 기관인 대학원에 재학 중인 지금까지, 한 차례라도 진지하게 뜻을 두었던
직업들은 전부 말하기나 글쓰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목록 중에 단 하나 스스로도 특이
하다 여기는 예외가 있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 주제에 제법 과학잡
지인 뉴튼까지 구독하는 열성도 보였다. 정기구독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핵물리학이나 생명윤리학
특집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해 보면, 여타의 꿈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당장 내 눈에 와 닿고
있는 저 빛은 수천 년 전에 출발한 여행자. 정작 그 별은 지금쯤 원래의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더하거나 뺄 것 하나 없는 과학적 사실fact이지만, 이것을 문학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문학이
라 부를 것인가. 때로, 과학의 철리哲理는 지고의 문예미를 갖는다.
제대 후 정신없는 재사회화, 그리고 생애 처음 떠난 해외여행의 준비로 정신 없다가 다시 명왕성의
이름을 들은 것은 이역만리 인도 땅에서였다. 캘커타의 한 성당에 북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길래 사진을 찍으러 간 길이었다. 성당을 청소하던 잡역부는 카메라를 꺼내 드는 내게
서툰 영어로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부실을 찾아가 남한에서 온 신자인데 현재 미션스쿨
에 다니고 있으며 오로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고 호소하자 주임신부는 너그럽게 웃으며 촬영
허가증을 내 주었다. 열 살 근처에 엄마한테 등을 떠밀려 미카엘Michael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
은 적이 있고, 채플을 네 번이나 들어야 졸업을 시켜주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몽땅 거짓말은 아
니었다. 모든 예배 시간이 끝나야 촬영을 할 수 있다길래 한가해져서 주위를 산책하고 있는데, 천문
관이 눈에 띈 것이다.
인도의 유명한 재벌 가문이라는 벌라Virla 가에서 세운 벌라 천문관이었다. 벌라 가문 선대들의 초상
화가 잔뜩 걸린 복도를 빙 돌고 나니, 돔형의 내부가 펼쳐졌다. 하얀 벽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돔을
보고 있자니 거대한 첨성대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햇살이 작렬하는 점심 무렵이기 때문인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보다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어 방송 시간이었는데도 손
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의자 한 줄의 손잡이를 모두 올리고 가로로 길게 벌렁 누워 돔을 쳐다 보았
다. 곧 불이 꺼지고, 한가운데의 영사기로부터 돔으로 영상이 쏘아졌다.
쇼 영상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많은 사진들이 거대한 돔에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것도 흥미로운 장면
이었고, 녹음 방송이 아니라 라이브로 하는 것인지 나레이터가 자꾸 쿨쩍거리는 것이 몹시 우스웠다.
다리를 까딱거리며 인도 여행 내내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별이 진다네’를 멋대로 흥얼거리
고 있는데, 다음 쇼로 이어지는 잠시의 암흑 사이에 나레이터는 'Pluto', 라고 말했다.
음성은 영상과 함께 차분하게, 명왕성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언제 발견되었는지를 말해 주었다. 뉴튼
을 스크랩까지 해 두었던 내게는 오랜만에 다시 듣는 반가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거기까지만
해 줬으면 했다.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직접 밟아 본 인도가 아직도 문화적으로는 형편없이 뒤떨
어진 나라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설마 고작 몇 달 전에 발표된 천문학계의 최신정보가 방송
으로까지 만들어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나레이터는 차분하게,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퇴출 소식을 알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천문협회의 새 행성규정 조칙까지 설명해 주었다. 그 방송
을 마지막으로, 쇼는 끝났다.
멍하니 터벅터벅 나와 보니 여전히 북인도의 햇살은 뜨거웠다. 다음 차례인 프랑스어 방송의 관객들
이 내 옆을 지나 우르르 몰려들어갔다. 고작 한 시간 전에 천문관으로 들어간 것 뿐인데, 왠지 주위
를 둘러싼 곳이 타국이라는 사실이 새삼 생생하게 느껴졌다. 문득 허기가 들어 길거리에서 파는 파이
를 사 들고 가로수의 그늘가에 앉았다. 한 입 베어 물고는 우물우물거리다가, ‘명왕성은 이제 인도에
서도 태양계의 행성이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학생과학에 실린 조경철 박사
의 인터뷰에 가슴 설레어 하며 캡틴 퓨처를 신나게 읽던 유년기와, 뉴튼의 컬러사진들을 열심히
오려 내어 연습장에 붙이고 부록으로 나온 큰 포스터들을 책상의 유리 밑에 끼워 넣던 고교시절이
떠올랐다.
미안해. 명왕성은 더 이상 태양계 행성이 아니래. 영어로도 확실히 들었어.
그것이 모두 약 일년 반 전의 일이다. 대학원의 첫 주, 공연은 일주일 앞, 엄마의 갑작스런 입원 등 쉽
지 않았던 한 주를 보내고 오랜만의 휴일에 느지막히 일어나 어제자 신문을 뒤적거리는데, 한 기사에
눈이 멈췄다. 새로이 아홉 번째 행성이 될 수 있는 천체를 발견했다는 기사였다. 이전에 행성으로 제
정할 것인지에 관해 격렬한 논란에 휩싸였던 세레스나 카론 등의 천체보다는 월등하게 큰 천체라고
했다. 기사 가운데 언급된, 예전에 아홉 번째 행성이었던 천체의 이름은 왜성 134340이었다.
기사를 쳐다 보며, 헤어진 옛 연인의 쓸쓸한 근황을 들을 때와 같이 나는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오
므리고 있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슬퍼하거나 말거나, 인간들이 태양계의 행성으로 인정
해 주거나 말거나, 그 별은 거기서 수십억 년 쯤 돌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별의 공전주기
만큼도 못 사는 주제에 헤어진 연인 운운하는 게 건방진 짓이다. 명저 <드래곤 라자>에서 숲속의
철학자 카알 선생은 이러한 인간의 특성을 꼬집어 ‘인간이 숲을 걸으면 길이 나고 하늘을 쳐다 보면
별자리가 생긴다’고 비판했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없고서야 어찌 인간이라 할 것인가. 나의 명왕성
은 이제 우주에 없다. 안녕 명왕성. 그동안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