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이틀인지 아침이 새벽인지도 알지 못하고, 배고프면 부를 때까지 먹고 졸리면 깰 때까지 잔다. 배가 차면
두어 숟갈 들었더라도 곧 그만두고 차지 않으면 두 그릇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신이 깨면 두 시간을 잤어도
일어나 앉지만 혼미하면 시계도 보지 않고 다시 돌아눕는다. 오롯이 남는 시간은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앉은뱅이 책상에서 옛 글을 번역하는 데 쏟아붓는데, 덕분에 못해도 하루에 한 권은 읽던 다른 책들은 사
흘이 지나도록 반 권도 못 읽는 일이 허다하다. 진즉에 이렇게 했으면 박사과정의 학기도 이미 끝나 있을 것을,
때늦은 석사를 따겠다고 짧게는 백 년 길게는 삼천 년 전의 글을 붙잡고 기진맥진 애를 쓰는 모습이 반은 기특하
고 반은 허망하다. 계사년 정월에 연희동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