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림의 노래 중에서는 저녁 지하철의 고단함을 잘 그린 <퇴근길>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내 퇴근길은 골목에 도보. 그 중 서문에서 삼 분 가량 내려가다가 갑작스레 왼쪽으로 열려 있는 작은 골목
은 사계절 어느 시간에 렌즈를 갖다 대어도 마음에 와 닿는 사진을 푹푹 토해낸다.
거주는 서문, 공부는 문과대, 유흥은 홍대 인근이라 연대에 다니면서도 좀처럼 지날 길 없는 삼거리. 요 몇 년 사
이의 트리들 가운데 가장 모양이 예쁘게 나와준 올해의 크리스마스 트리도 이제 곧 내려가겠구나 싶어 책을 읽
다 산책삼아 가 보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서커스 텐트 같았던 트리.
의도한 것은 아닌데 찍고 보니 꼬깔 모자를 쓴 호머 심슨 같이 나왔다. 별 내용 없는 근황 일기는 한동안 쓰지 않
다가, 텅 빈 연구실에 열댓 시간을 앉아 공부를 하고 난 멍한 머리로 그냥저냥 올린다. 아침 여덟 시 반. 야간조
는 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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