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중순을 막 넘긴 지금, 아직도 뙤약볕에 돌아다니다가는 지치기 딱 좋긴 하지만 그래도 볕의 끝맛은 무자비한
한여름이 아니라 고추 말리는 향 나는 초가을이다. 납량의 납納은 들이다, 는 뜻이고 량凉은 서늘하다, 라는 뜻이다.
합치면 '서늘함을 들이다'는 말로, 우리말이 있을까 해서 찾아보니 '서늘맞이'라는 예쁜 말이 있었다. 사전에 기재된
표준어이니 자주 써도 좋겠다.
위의 사진은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고 받아두었던 KBS '전설의 고향' 포스터. 요새같은 날씨의 추세라면 올 여름에도
못 써먹고 넘어갈까 싶어 마침 딱히 쓸 것이 없는 날에 올린다. 얼핏 보면 별 거 없지만 처녀귀신의 눈과 표정을 찬찬
히 뜯어보다 보면 서늘함이 스물스물 들어온다. 역시 구관이 명관. 옛 시리즈 가운데 '내 다리 내놔' 편은 본지 이십 년
이 넘었는데도 지금까지 내 두 눈으로 본 가장 무서운 영상물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뜻하지 않게 내 다리
내놔 귀신이 이광기 형인 것을 알게 된 뒤로는 조금 덜 무서워졌음에도 그렇다.
이것은 작년 가을에 벌였던 나이트샷 놀이. 고양이 과의 눈을 가진 나는 나이트샷 놀이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대체
로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편이다. 그런 안이한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진이 나와
버렸다.
그래서 작심하고 메또드에 입각해 펼쳐본 싸이코패스 연기. 마음 속의 모델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콜
슨 선생님.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 다음 주 만나는 사람들마다 올 해의 나이트샷 경연에 참가시
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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