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된 것을 가장 실감하게 만들었던 것은 각종 서류들을 뗄 때 보게 되는 삼십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친구의 어릴 적 얼굴을 빼닮은 그의 딸을 본 것과 둘째 고모가 반년여 병상을 오가다 마침내 돌아가신 일
이었다. 팔을 휘두르고 침을 뱉고 욕을 하여도, 아래로는 닿는 것이 없고 위로는 답답하게도 쌓여 있어
나는 끝줄에서 만년 천둥 벌거숭이로 편하게 살 줄 알았던 모양이다. 와중에 고작 피 몇 방울이 한 팔에
안기도 힘든 생명을 만들고, 생에의 왕성한 욕구를 자랑하던 이들도 순서를 받고서는 큰소리 못 내고 줄
에서 비켜 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제 발로 걷지 않아도 밀려서 위로 가는 게 있었구나, 하고 새삼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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