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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오오카미







한국에도 곧 정식발매될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기 위Wii의 게임, ‘오오카미’이다. 제작사는  캡콤Cap

com. 이전에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로 한 차례 발매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은 리메이크인 셈이다.


작품명인 ‘오오카미Okami’는 하나의 한자에도 여러 개의 읽기가 있는 일어의 특성답게 대신大神의

음이며 늑대 랑狼의 음이기도 하다. 게임의 주된 스토리 라인이 주인공인 큰 늑대가 곤경에 처한 신을

도와 악신에 의해 봉인된 여러 자연신들을 되살려 내는 고행을 하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도 신이 된다

는 것이므로, 게임만을 접했다면 역시 부동의 명가名家 캡콤, 작명도 일품이다 하고 무릎을 쳤을 것이

다. 그러나 이러한 작명은 일어의 활용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특히 이 ‘오오카미’의 경우는 오래

전의 설화에서부터 그 재기 넘치는 혼용이 확인된 사례이다.


이 작품에서 제작사인 캡콤은 여러 가지의 고전 설화에서 서사에 유효한 모티브를 따 와 적절히 혼용

하는 한 편 내용을 표현하는 형식 상에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 무렵 여러 개발사들에서 경쟁적으로 개발되던 기술은 얼마나 피사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

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캡콤은 다소 구시대적이라고 평가될 수 있었던 카툰 렌더링

Cartoon Rendering 기술을 도입했다. (곡면의 피사체를 표현해야 할 경우 3D의 극한 기술들은 수천

억개의 평면을 연결함으로써 마치 곡면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을 택하지만 카툰 렌더링은 대범하게

툭툭 몇 개의 평면을 연결하고 그 각각의 배색을 다르게 함으로써 입체감을 표현한다. 그 결과물이

마치 만화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름도 카툰 렌더링이다. 카툰 렌더링이 활용된 유명한 게임인

‘카트 라이더’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처음 게임이 발표되었을 때 일부에서는 캡콤이 개발

비를 절감하기 위해 내린 결단이라는 평도 일었지만 막상 나온 결과물에서는 위의 아트웍에서 보듯

게임의 중요한 오브제인 자연물들이 마치 동양의 수묵화처럼 표현이 되어 오히려 고전적인 내용과

큰 시너지를 내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캡콤은 주인공인 늑대가 취하는 행동에 있어 여타의 게임처럼 특정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이 아

니라 플레이스테이션 2의 아날로그 스틱을 사용하여 화면에 도형을 그리게 하는 직관적 방식을 도입

하였다. (예를 들면 태양신을 살려낼 경우 큰 원을 그린다든지, 폭포를 살아나게 하는 때에는 긴 선을

주욱주욱 그어준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창의적 시도는 손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화면에 직접 반

영되는 위Wii의 콘트롤러 ‘위모콘’에서 한층 더 빛을 낼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부터 방영되기 시작

한 위Wii의 TV 광고에서도 화면에 내내 비추어진 것은 유명한 런칭타이틀들이 아니라 손과 손목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위모콘의 모습이었다. (볼링게임에서 붕-하고 흔들면 공이 굴러간다든지, 낚시게

임에서 머리 위로 빙빙 돌리다가 앞으로 향하게 하면 화면에서는 낚시대가 날아간다든지 하는 것이

위모콘의 대표적인 활용사례이다.) 위wii판 오오카미에서는, 화면상에 일어나는 모든 조작을 한 손에

쥔 위모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적을 베는 것도,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리고 게임의 스토리 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자연물들을 부활시키는 주문도 모두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설명한 카툰 렌더링의 활용이나 직관적 조작과 같은 시도들이 단순히 개발

사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험자로 하여금 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명

확한 기획의도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야담과 설화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조선의 호랑이 설화와 일본의 큰 늑대 설화 비교연구를 시도

한 경험이 있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거나 적기 때문에 호랑이 설화가 적다. 호랑이의 대체물이

라고 부를 만한 것이 큰 늑대 설화였던 것이다.) 이 때 큰 늑대 설화와, 그에 관련된 여러 설화들을

접할 경험이 있었는데, 학부의 소논문을 위해 수집한 자료와 거기에서 얻은 지식만으로도 게임 ‘오오

카미’에서 일본의 고전 설화들이 활용된 너비는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고전 관련 컨텐츠의 멀티미디어 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고증이 아니다. 문제는 오

랜 세월을 살아남은 강력한 모티브와 캐릭터가 현대에 얼마나 유효하게 재해석될 수 있느냐이며, 재

해석된 모티브를 구현하는 내용과 형식상의 방법들은 반드시 서로 유기적이어야 한다. (머털이가

구운몽九雲夢의 성진과 같은 전인全人적 인물이었다면 배추도사 무도사와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이런 면에서 볼 때 캡콤의 ‘오오카미’는 높은 점수를 줄 만 하다. 게임의 기반 정서로 제시될 수 있

는, 이른바 대지모大地母 사상, 즉 동양의 친환경적․선순환적 사상은 캡콤의 진출 시장이 될 서양에서

여전히 신선하고 강력한 기제였으며, 그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자국의 고전 설화를 선택적으로 채택,

보완하였다. 외적인 형식상에 있어 원전인 설화의 느낌을 살릴 수 있게 카툰 렌더링 기술을 활용했고

‘신이 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게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게임 ‘오오카미’의 상업적 결과는 밀리언셀러 작품을 다수 보유

하고 있는 개발사 캡콤의 네임밸류를 고려하면 다소 아쉽다고 할 수 있었지만, 불법복사와 중고품

거래, 그리고 경쟁사의 차세대기인 Xbox360의 출현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해 보면 선전을 했고 무엇

보다 평론가와 유저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 호응이 2006년 플레이스테이션 2 ‘오오카미’

의 2008년 위wii 리메이크를 낳은 것이다. ‘오오카미’는 이른바, 신新 고전이 됐다.


물론 경계를 야담과 설화에 한정지을 경우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일본은 섬나라이

고 따라서 기본적으로 다신교 신앙이다. 애니미즘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면, 한국의 경우에는 절대

자를 기점으로 해 이루어지는 신들의 상하 권력관계가 있으며 자연물은 위계 상의 최하층에 미약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한편 일본은 ‘팔백만 신’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양에서도 압도적이며 각각

의 위상 또한 획일적 수직의 관계로 파악하기 어렵다. 당연히 관련된 모티브들이 다양하면서도 자극

적이다. 멀티미디어화 되기 위한 고전 컨텐츠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 엔터테인먼트성을 태생적으

로 지닌 자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충사蟲師'나 '백귀야행百鬼夜行', 그리고 지브리 스튜디

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현대 일본의 야담,

설화라 이를만 하다.)

그러나 고전의 재해석에 반드시 야담과 설화만이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문학이 거칠게

말해 전통적으로 서정성과 일상성, 재기에 기대고 있다면 한국의 문학이 지니는 특징은 강력한 서사

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국민성의 차이이다.)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등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은 일본 문학이 지니지 못 한 빼어난 문예미라 이를 만 하다.

또한 멀티미디어의 방향이 반드시 비디오 게임으로만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게임이라도

한국이 이미 세계 최강의 입지를 확립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 있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대두하고 있

는 체감형 게임도 그 발전상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하며 제 9의 예술이라고 불리우는 만화도 있다.


긴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듯이, 예술의 조류는 순환한다. 현대예술의 가장 큰 흐름은 탈권위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사와 같은 권위에 기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권위’의 키워드가 다시 전면으로 부상할 때에,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닌 우리는 ‘오오카미’

의 성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고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 고전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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