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버스 루트를 찾는 낯선 퇴근길. 익숙한 것 같지만 생각해 보니 막상 직접 마주친 것은 꽤 오래된 것 같은
거리의 행상. 슥 봐도 온통 중국제. 어플로 버스 도착 시간을 보니 십여 분이 넘게 남았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을까 싶어 기웃기웃거리고 있자니 옆 건물의 처마 밑에서 아직 찬 봄바람을 피하고 있던 주인 아저씨가 잠바
의 주머니에 팔을 끼워넣고는 종종 걸음으로 다가온다.
다이소 앞에 좌판을 벌린 것이 꼭 맥도날드 앞에서 핫도그를 파는 모양새 같아 왜 그리 했는지 물어보니, 그저
목이 좋아서 그랬다 한다. 호쾌한 것 같기도 하고 게으른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오랜만에 그 모습을 보고 그리움이 살아났던 만보기. 얼마인지를 묻지도 않았는데
아저씨는 옆에서 흘끔흘끔 눈치를 보다가, 오천 원 짜리인데 삼천 원에 주겠다 한다. 어차피 삼천 원에 줄 거라
면 오천 원 얘기는 왜 하느냐고 묻자 날이 추워서 일찍 들어가려고 싸게 주려는 것이란다. 그럼 아마 맥시멈 이
천 원쯤 하겠구나 싶었지만 아저씨의 코 끝에 콧물이 대롱대롱 달린 것이 안쓰러워 토달지 않고 만 원짜리를 건
넨다. 아저씨는 앞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더니 내 쪽을 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운 손짓으로 오천 원 한 장
을 건넨다. 받아들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궁시렁궁시렁 하며 이천 원
을 더 붙여줬다. 아저씨는 버스를 타러 가는 내 등 뒤로 이 근처 자주 지나요? 하고 말을 붙인다. 이미 돌아선 등
에 말을 붙이는 건 날이 추워서가 아니라 마음이 추워서일 것이다. 나는 또 올게요, 하고 가던 길을 마저 간다.
만보기는 애인에게 선물로 갔다. 허리춤에 채워주고 함께 산책을 하다가 문득 생각나 체크를 해 보니 별로 걷지
도 않은 것 같은데 7000 보 남짓. 산책이 끝날 때쯤엔 몇 보나 될지 내기를 했다. 애인은 이만 보, 나는 이만 오
백 보, 결과는 57보. 성의 좀 내자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