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마이뉴스>
양 거대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과 임기말 속속 재조명되는 각종 비리에 관한 정치 이슈, 방송사 파업의 후유증에
관한 사회문화 이슈, 노사 '갈등'에 관한 경제 이슈 등 무엇 하나 작다고 할 수 없는 화제들에 각종의 분석이 난
무하여, 별로 다를 것도 없는 내 생각을 한 마디 덧붙이느니 차라리 속도를 따라가는 데에 힘을 써도 모자랄 한
때이다. 게다가 공약으로 최저임금 두 배 인상을 내세운 여당의 한 대선 경선 후보가 토론 중 최저임금이 얼마인
지 아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는 뉴스 등을 접하다 보면, 그닥 귀하다고 할 수도 없는 내 시간이지만 이
런 일에 하나하나 일기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피로감에 사로잡힌다. 비리가 어쨌네 정책이 어떻네
아무리 책 읽고 기사 찾아 진지하게 비평하면 뭘 하나. 말하는 이들이 벌받을 생각이 없고 잘못했다는 생각이 없
고 지키겠다는 생각이 없는데.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우스꽝스러워지는 기묘한 꼴이다. 예의 그 후보는 심지어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이였다.
와중에 그래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소식이 있어 이렇게 전한다.
독도에 세 종류의 조형물이 있었다. 먼저 맨 밑에 태극과 건곤감리의 문양이 새겨진, 말하자면 태극기 모양의 둥
그런 판. 사진으로 보면 지름이 4, 5m, 높이는 50cm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위에 국기, 경북도기, 울릉군기의 세
깃발을 달 수 있는 게양대와, 일본 쪽을 향하여 포효하고 있는 높이 1m, 길이 2.5m의 호랑이가 얹혀졌다. 지난
2011년 8월,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1억 원을 들여 조각가 홍민석 씨에게 의뢰해 설치한 작품이다.
이미 1년여 전에 설치가 끝난 이 조형물이 다시 한 번 논란에 오르게 된 것은 이명박 현 대통령이 광복절을 앞
두고 독도를 방문한 뒤 부터이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외교적 맥락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이
었고, 관련 부처인 외교통상부와도 합의를 본 사안이 아니라고 한다. 국내 신문방송에는 엠바고를 요청하였으나
엉뚱하게 하루 전 일본에서 소식이 먼저 나가는 해프닝도 있었고, 일본 정부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발빠르게 독
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는 등 여러가지의 석연치 않은 후폭풍을 남겼다.
합리적인 추론과 언론보도를 통해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도무지 그 의중을 짐작할 수 없었던, 이 헌정 사상 대통
령의 첫 독도 방문 끝에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친필이 담긴 '독도표지석'을 설치하는 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그런데 경북도청과 울릉군은 이 독도표지석을, 다른 적당한 곳도 있을텐데 굳이 기존의 호랑이 상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다 세웠다. 호랑이 상이 불법 설치물이었기 때문이라는 해명이 있었다.
독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 336호로, 관련 법령인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그 주변을 개발할 경우 문화재 현
상변경 허가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에 경북도청과 울릉군은 예의 세 가지 조형물에 대해 허가 신청을 내었
으나, 문화재청은 깃발 게양대 중에서도 국기 게양대에 대해서만 허가를 내 준 바 있다. 그런데 경북도청과 울릉
군은 허가 결과에 관계 없이 세 조형물 모두를 무단으로 설치한 뒤 국기 게양대만 설치한 사진을 제출하였고, 문
화재청은 이 사진만을 보고 넘어갔던 것이다.
아무튼 불법 설치물, 혹은 점거물을 치우고 그 자리에 허가를 받은 조형물이 들어갔으니 말하자면 '사필귀정'이
된 이 이벤트가 끝나갈 무렵, 조형물의 작가인 홍민석 씨가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훼
손당했다고 반발하며, '(국기 게양대) 바닥부터 호랑이까지가 제 작품인데 호랑이만 빼고 그 위에 비석이라니….
철거를 해야 한다면 제 작품이라고 인정되는 부분 모두 철거하라", "내 작품을 임의 철거한 것은 로뎅의 '생각하
는 사람' 팔을 하나 자르고 이름까지 적어서 다른 것을 꽂아 넣은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자신의 조형물 전체를 철거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홍 작가의 이러한 이의 제기에 관해 해당 기관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초기에는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
한 것은 실수였다는 발언이나 독도의 다른 곳에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보도를 탔
다. 하지만 가장 최근 뉴스인 오마이뉴스의 어제 소식에 따르면, 홍 작가는 어제인 20일 오후까지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이 없고, "경상북도청의 독도정책과 담당 사무관은 '공사 대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조형물의 소유권은 울
릉군에 속해있다'며 '작가가 작품성을 따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울릉군청의 독도관리사무소
담당자는 '미리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면서도 '울릉군은 홍 작가가 아닌 건축사와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에 작품은 울릉군에 귀속돼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현재까지의 경과이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몇 개의 단상
을 갖게 됐다. 여기에 일단 적어두고,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답이 떠오를 때마다 추가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하나. 국기 게양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경북도기에 울릉군기까지, 참 많이도 달렸다. 울릉군민 중에 울릉군기
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도 의문이다. 한 기사를 보니, 울릉군 관계자가 '울릉군이 실제적으로 독도를 관리하
는데 군기 하나 못 거는 건 그렇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좀 어떻길래.
둘. 애당초 독도에 왜 굳이 '조형물'을 세우려 했을까. 태극기 모양의 판석이야 그렇다 치지만, 호랑이는 왜. 그
것도 굳이 일본 방향을 향해.
셋. 그러니까 세 개의 조형물 중 국기 게양대 말고는 모두 불법인 셈인데, 옮겨진 것은 호랑이 뿐이다. 나머지는
독도 표지석을 장식하며 오늘도 그 자리에 계속 있는 셈이다.
넷. 문화재청의 불허가 판정에도 사진 한 장으로 밑장빼기를 하고 원안대로 설치를 밀어붙였던 공무원의 저 패
기. 민생사업에도 좀 그래 보일 것이지, 하는 핀잔 한 점. 독도와 관련된 이런 상징적인 사안, 그러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언론에 날 사안에까지 밀어넣는 이 '가라' 신공이 도정과 군정에 얼마나 더 산적해 있을까 하는 공포 한
점.
다섯. 문화재청은 사진만 보고 설치물의 합법 여부를 확인해도 좋은 것일까? 하지만 일일이 찾아가서 확인하려
면 그것도 세금인데. 구글어스로는 확인이 안 되는 것일까?
여섯. 호랑이 조각상이야 그렇다 치지만 태극기 모양의 기반석도 현상 변경 허가를 못 받은 판에, 대통령의 친필
새겨진 '표지석'이 태극기보다 뭐 그리 잘난 게 있다고 대번에 허가를 받은 것일까?
일곱. 예술품에 대해 '돈 받고 팔았으면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산 사람 마음'이라고 하는, 저 천박한 인식. 어디
에서부터 다시 교육을 해야 이런 공무원이 안 나오는 것일까? 공무원의 소양교육과 문화교육을 정기적으로 시행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공무원 시험에 교양 면접 시험이나 예술 비평 논술 시험을 보면 해결될까? 초중고등
학교에 문학과 예체능 과목 내신 반영 비율을 대폭 상승시키면 될까?
피아니스트 정재형 씨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초기에, 돈이 없어서 문구점에서 악보를 복사하고 있는데 동네
할머니가 뒤에서 툭툭 치더니 '그거 범죄예요'라고 말했다던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것이 '강대국'이
아닐까? 올림픽에서 5등하고 메달리스트들 퍼레이드 시킨다고 날짜 맞춰서 한 번에 귀국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내 돈 주고 산 거면 호랑이 대가리를 떼어내든 호랑이에 소불알을 갖다 달든 상관 말라고 일갈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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