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정해진 주제 없이 눈에 띄는 것을 그렸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되도록 사람의 얼굴을 그리려고 노력한다.
영화 <HER> 포스터의 호아킨 피닉스. 별로 닮은 것 같지 않아 누구를 그린 것인지 함구하고 있었는데 흘깃 본 한 학생이 어, 그 영화의 주인공 아니예요, 하고 말해줘서 기뻤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자주 간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면 문인들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비닐 봉투에 책을 넣어 준다. 그 봉투를 들고 수업을 하러 간 날, 학생들에게 나누어준 문제의 한 제시문에 마침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 나왔길래 신기해하며 따라 그려 봤다. 원래보다 좀 야비하게 그려져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한창 공사중인 연대 정문 앞에서 만날 사람을 기다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린 이한열.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 근처에서 죽었던 것이다.
'잃어버린 진보의 꿈' 조봉암. 나는 내가 조봉암과 미약한 인척 관계가 있음을 서른넷에야 알게 됐다. 남편인 조봉암이 사형을 당하자 그 아내는 고향인 강화로 내려와 조용히 살고자 하였는데, 그 재색을 눈여겨보고 청혼을 한 이가 내 작은외할아버지였다 한다. 새 작은외할머니는 본 일이 없지만 작은외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몇차례 만나 크게 귀여움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따라그리기 위해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면 그냥 사진만 슥 하고 볼 때보다는 확실히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전태일의 얼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각진 턱과 낮은 콧날, 그리고 고집스럽게 작은 입매였다.
재판장에 선 김재규. 시원스레 뻗은 콧날과 메기처럼 넓적한 입술, 그리고 굵게 패인 주름이 눈에 띈다.
영화 <암살>을 보고 와서 그려본 의열단 단장 김원봉. 얼굴의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선을 넣은 것인데 마치 깎다만 수염처럼 나와서 아쉽다. 조각처럼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한눈에 매혹당할 만한, 시원하고 남성적인 인상이다. 작은 스케치북에는 다 그리지 못했지만 한껏 '후까시'를 넣은 머리 스타일과 잘 붙는 정장 옷맵시도 멋지다.
<마루 밑 아리에티>를 보고. 인물의 얼굴을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사실에 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낑낑대다가 이런 그림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요만한 선으로 얼굴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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