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처 책을 읽다가 피곤해지면, 이면지의 여백에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혹은 이 일기장의 새 카테고리 기획안을
끄적여 보곤 한다. 말이 좋아 기획안이지 차근차근 체계를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때에 가장 즐거운 공상
을 하는 것에 불과하긴 하다. 그 중 요새 가장 자주 떠올리는 것은 인터뷰로 이루어진 새 카테고리를 만들어 보
는 것이다. 가제는 '당신은 누구시길래'.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숫자의 질문을 정해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구
성된 인터뷰이다. 큰 목표를 먼저 잡지 말고, 아주 단순하게 친한 지인들과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에서부터 시작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든지, 서른/마흔/쉰 이 되기 전에 꼭 하고야 말 일
이라든지. 유치한 질문이라도 직접 묻고 반응을 받아 고쳐가며 하다 보면 몇십 년쯤 후엔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자연스레 깊은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나.
매일 똑같은 공부를 하고 만나는 사람도 거의 없는, 말하자면 드라마가 없는 일상의 요 몇 년인데 그림 카테고리
와 독후감 카테고리를 분화시키면서부터는 일기장에 쓸 것이 더욱 줄어들었다. 덕분에 1월이 반이 넘어가도록
대문에 신년 인사를 걸어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 마음 속에서나마 있었던 일을 짧게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