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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신터 클라스와 피트

 

 

 

 

 

 

크리스마스 트리를 다시 꺼내면서, 작년에 했던 장식을 그대로 다는 것이 재미없게 느껴져 트리 밑에 놓을 그림

 

한 점을 그려봤다. 메인 모델은 만화가 정철연 씨의 유명 웹툰 <마조&새디>의 주인공 마조와 새디. 한 장만 그렸

 

고 가정에만 전시하는 등 상업적인 목적은 전혀 없으니 도용을 알게 되어도 용서해 주셨으면 한다.

 

 

 

 

 

오른쪽의 새디가 입고 있는 것은 '신터 클라스(Sinter Klaas)'의 의상이다. 신터 클라스는 발음의 유사성에도 보

 

이듯이 산타 클로스와 마찬가지로 성 니콜라스(St. Nicholas)로부터 발원된 캐릭터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그

 

리고 네덜란드 령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산타 클로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뉴암스테르담, 지

 

금의 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 출신 청교도들이 신터 클라스 캐릭터를 전파하였고 이것이 미국식으로 발음되면

 

서 산타 클로스로 바뀌었다고도 하니, 실제로는 같은 인물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겠다. 빨간 옷을 입고 겨울에

 

찾아오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기본 설정은 동일하다.

 

 

 

 

 

 

 

 

 

 

 

 

 

 

 

 

하지만 산타 클로스와 몇 가지 재미있는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의상. 얼핏 보면 닌자같기

 

도 하고 가죽 도착증 환자 같기도 한 산타 클로스에 비해, 신터 클라스는 주교라는 본래의 설정에 보다 충실하

 

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 보았는데 위 사진에서 보이는 의상 디자인은 시대나 장소에 관계없

 

이 대체로 비슷하였다.

 

 

 

 

 

 

 

 

 

 

 

 

 

 

 

 

 

 

두번째로 재미있는 것은 탈것이다. 주교라는 오래된 설정에 충실한 것을 보자면 탈것도 산타 클로스의 공중썰

 

라는 반중력적 비히클에 대비되는 전통적 교통수단일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분이 타고 다니는 것은 무려

 

기선. 인터넷을 뒤져보니 성 니콜라스가 터키 지역에 있다가 스페인으로 가 아동 구호 활동을 하였고, 당시 스페

 

인에서 네덜란드로 갈 수 있는 교통 수단이 증기선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설정이 생겼다는 주장이 꽤나

 

많았는데, 성 니콜라스가 4세기 경의 인물인 것을 생각해 보면 반성 없이 전해지는 지식인 것만 같다. 증기선이

 

라는 설정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신터 클라스가 민간의 전승 수준을 넘어 하나의 캐릭터로 구체화된

 

것은 19세기에 쓰여진 한 동화책이었는데, 당시의 문명을 상징하는 총아가 증기선이었기 때문에 동화책의 저자

 

가 신터 클라스는 증기선을 타고 나타나는 것으로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번째 차이는, 산타 클로스가 뜬금없이 북극에 기지를 두고 출동하는 것에 비해 신터 클라스는 스페인이라는

 

구체적 지역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건 위에서 설명했듯이 성 니콜라스에게 스페인 지역에서의 아동 구호 활동이

 

라는 이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신터 클라스는 11월 중반쯤 증기선을 타고 스페인에서 출발하여 네덜

 

란드에 도착하는데, 도착하는 도시는 매년 돌아가면서 바뀐다고 한다.

 

 

 

 

 

 

 

 

 

 

 

 

 

 

 

 

 

 

네번째 차이는, 산타 클로스가 찾아오는 밤이 12월 24일 반면 신터 클라스는 성 니콜라스의 축일인 12월 6일의

 

하루 전날 밤, 그러니까 12월 5일 밤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의미야 더 좋지만, 전세계적으로 12월 24일엔 영

 

고 상업 제품이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때려 대는데 네덜란드 사람들도 놀기는 24일날에 맞춰 놀겠지, 하고 생각

 

했는데. 찾아보니 네덜란드에서는 실제로 12월 6일이 공휴일일 뿐만 아니라 12월 25일보다 훨씬 큰 축제들이

 

열리는 날이라고 한다. 그럼 25일은 어떻게 되나, 하고 더 찾아보니 25일은 25일대로 또 논다고. 역시 OECD 국

 

가 중 1인당 노동 시간 최단 국가. (2010년 자료에 의하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1년 노동 시간은 OECD 평균인

 

1749시간보다 약 400간이나 적은 1377시간. 1377시간인 나라도 있는데 평균을 1749시간까지 올린 주범들

 

중 1위가 바로 한국. 같은 조사에서 한국의 노동 시간은 2193시간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극적인 차이는 수행 비서인 '검은 피트(Zwart Piet)'의 존재이다. 위 그림에서 왼쪽에

 

 있는 마조에게 입힌 것이 검은 피트의 의상이다.

 

 

 

 

 

 

 

 

 

 

 

 

 

 

 

 

검은 피트는 신터 클라스를 수행하며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행동으로 흥을 돋는 역할을 한다. 피트의 등장

 

도 19세기부터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설명이 있다. 그 하나는 중세 때부터 있어왔던 악마 캐릭터의 변형이라

 

는 주장이다. 중세의 겨울에는 민중들을 대상으로 하여 신터 클라스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역할극이 공연되었는

 

데, 여기에서 갈등을 만들고 장난을 치는 악마가 있었고 그 악마의 색이 검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유럽의 신화나 전설에 있어 악마 캐릭터는 해피 엔딩을 만들기 위해 결정적 순간에 단 한 번의 실수로 패

 

배하고 마는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주인공에 비해 뛰어난 기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검

 

은 피트는 순발력이 떨어지고 하급 노동을 맡으며 본인의 의도로 웃음을 만들기보다는 조롱의 대상이 됨으로써

 

웃음을 만드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캐릭터는 흑인 노예 제도가 일상화되어 있던 19세기 제국

 

의 유럽유색인에 대한 악의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0세기

 

까지도 네덜란드로 이민 온 유색인종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피트라고 놀림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75

 

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남미의 수리남에서는 주인인 백인 신터와 몸종인 흑인 피트의 관계가 인종주의적인

 

시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신터클라스 행사를 금지하는 법안이 입법되기도 했다. 인형이나

 

전등으로 만들어지고 땡인 루돌프에 비해 참으로 사연 많은 캐릭터라 하겠다.

 

 

 

 

 

 

 

 

 

 

 

 

 

 

 

아무튼, 그림 한 편 그리려다 공부 잘 했다. 검색 도중 이와 같이 눈이 번쩍 띄이는 상품도 발견했지만, 애석하게

 

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만 한정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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