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을 둘러메고 방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데,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하고 묻자 잠
시만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을 빼꼼 열어보니, 반팔 와이셔츠에 잘 다린 정장 바지를 입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대뜸 내게 사진의 것처럼 세로로 트인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에서는 세 장의 지폐가 부채꼴을 이루며 몸
을 반쯤 드러내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봉투를 쳐다보다가 다시 그의 눈을 쳐다보자,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OO일보예요. 보시라는 게 아니고, 잘 봐달라고. 받아 두세요.
언론을 통해 수십 수백 차례나 접해왔던 사례인데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니 머리와 몸은 허둥거렸다. 눈길을 조
금 내려 그의 가슴께를 보던 나는 더듬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니, 아닙니다. 됐습니다.
닫은 문 저쪽에서, 옆 방의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건네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가방을 메고 방 한가
운데에 꽤 긴 시간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시원하게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왜 블로그에 올리고 제보도 하게 사진 한 장 찍자고 말하지 못했나. 일기
에서 술자리에서 그 신문 씹어대던 헌걸찬 기세는 어디로 갔나. 눈 앞에서 실제 돈을 흔들어대니 홀린 것인가.
아니면 남자의 행색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다소간 처량해 놀란 것인가.
나가보니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뙤약볕 아래를 걸으며 점차 정신이 돌아온 나는, 에이 젠장, 그 돈 받
아서 뉴스타파나 국민TV에 후원해 주었더라면 솔로몬의 한 수였을 것을, 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꼭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