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산 색칠공부 놀이 후, 캔버스와 붓, 그리고 아크릴 물감을 사 스스로 그림을 그려 보기로 했다. 순서가 바뀌었는데, 앞서 올렸던 '센과 치히로' 그림은 세번째, '가면 라이더' 그림이 네번째, 그리고 오늘 올리고 있는 그림이 첫번째로 그렸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 있을 때부터로 어느덧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그 이후로도 연필, 볼펜, 붓펜 등으로 도구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으로는 색이 없거나 적은 그림을 주로 그려왔다. 선 만으로 사물과 구상을 표현해내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기도 했으나 채색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통과 붓 등을 마련해 두고 앉아 본격적으로 채색을 하는 것은 고교 졸업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물감을 주문하는 일부터가 즐거웠다.
첫 시도에서 따라 그려보고 싶은 그림을 고르는 데에는 큰 고민이 없었다. 교토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을 때부터 꼭 그려보고 싶었던 화가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의 그림들, 그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눈을 잡아끌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유화를 그리게 될지 아닐지조차 모르면서도 언젠가 도전한다면 꼭 이 그림을, 하고 엽서로 사 둔 것이 있었다. 그것이 위의 그림이다.
쌀쌀맞은 듯 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남성, 어딘가 비례가 안 맞는 듯 한데 그것이 도리어 묘하게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유메지 특유의 여성이 어우러져 한참을 바라보았던 그림이다.
이 캐릭터들에게는 출전이 있다. 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인형극 <신쥬텐노아미지마心中天網島>의 주인공이다.
남자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가미야 지헤에紙屋治兵衛라 한다. 지헤에는 처자식이 딸려 있었지만 유곽의 여자 고하루小春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지헤에의 아내는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아이의 옷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만들어, 남편에게 돈을 주어 고하루의 몸값을 치루게 한다. 유곽에서 풀려난 고하루는 지헤에의 집 앞에 꼼짝도 못 하고 서 있고 지헤에는 아내 옆에서 엎드려 울었다. 결국 지헤에와 고하루는 지헤에의 아내의 마음에 괴로워하다가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했던 유메지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목판화를 그렸을 뿐 아니라 시를 쓰기도 했다. 유메지의 <인형사人形遣>이다.
인형사
즐겁다 즐거워
그것 참 재미있네, 하고
감색의 천막 끝
인형사가 왔다고 하네
엄마 뒤에 숨어 살짝 보니
인형사가 젊디 젊구나
'아, 어찌해야 하나요' 흐느끼니
하얀 목덜미가 애처로워
인형 고하루도 흐느끼며
애처로움일까 내리는 비일까
덩달아 우는 엄마의 소매자락
人形遣
「めでたやなめでたやな
さりとはめでたやめでたや」と
のれん
紺の布簾のつまはづれ
人形遣がきたさうな。
母のかげよりそとみれば
人形遣のうら若く
「ま、どうしよぞいの」と泣きいれば
襟足しろくいぢらしく
人形の小春もむせびいる。
ものゝあはれかふるあめか
もらひなみだの母の袖。
이 그림을 그리면서 얇은 붓을 쓴다 하더라도 얇은 선을 따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기술을 연마하는 것 외에 분명히 비책이 있을 것이니 미술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물어보자고 생각하며 얼렁뚱땅 완성을 했다. 원화에 비해보면 비율도 잘 안 맞고 표정의 미묘한 정서를 잘 살려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밑선을 그리고 물감을 짜고 붓을 바꿔가며 무척 즐겁게 그렸다. 이때의 즐거움이 원동력이 되어서 연이어 몇 개나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아크릴 물감은 굳고 나면 갈라지기가 쉽다고 해서, 몇 년 만에 가보는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홍대의 화방을 찾아 무광 배니쉬를 사다가 거듭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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