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자치단체의 장과 위원 및 교육감을 선발하는 제 6회 지방선거가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일을 따다 6.4
지방선거라고도 부르는 이번 제 6회 지방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선거일의 5일 전인 5월 30일과 4일 전인 5월
31일 양일 간에 걸쳐 사전투표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투표일 당일 본적지에서
투표를 할 수 없었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미리 부재자 투표를 시행한 적이 있지만, 부재자 투표의 경우에
는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일정 수 이상이 모여야 하는 등 여러가지의 제약이 있었다. 한편 이번부터 시행되
는 사전투표제는 5월 30일, 31일 간 전국 어디서나 자신이 방문할 수 있는 투표소에 가 투표를 할 수 있게 한 제
도이다. 관내의 유권자는 물론 관외의 유권자, 즉 본적이 해당 선거구에 있지 않은 사람들도 신분증만 제시하면
간단하게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닷새 후인 투표일엔 어차피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인천의 본가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내려간 김에 내 선거구에
서 직접 투표를 해도 되지만 이번부터 시행되는 정치 실험에 직접 참여해 보고 싶어, 정작 살고 있는 서대문구
연희동도 아니고 출근길에 있는 광진구의 중곡4동 주민센터에 들러 투표를 했다.
공휴일인 선거일이 다음 주 수요일, 그리고 그 주의 금요일은 또 다른 공휴일인 현충일이다. 목요일만 휴가를 내
면 화요일 밤부터 시작되는 긴 연휴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전투표에 미리 투표를 해 두고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내가 투표소를 찾을 시간은 오후 세 시 언저리라 사람이 딱히 많을
것 같지 않긴 했지만 혹시라도 줄이 길어졌다간 출근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투표소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투표소는 '관내인'과 '관외인'의 두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었
다. '관외인' 섹션으로 가 신분증을 제시하고 지문 확인을 통해 본인 인증을 했다. 인증이 끝나고 나자 옆의 프린
터에서 내 선거구에 해당하는 투표지가 연이어 출력되기 시작했다. 시장, 교육감, 시의원 등을 포함해 총 7장의
투표지가 지직지직 소리를 내며 나왔다. 출력되는 데에 15-20초 정도가 소요되어, 사람이 많을 때 왔더라면 한
참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표소에 들어가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투표하고, 투표지와 함께 배부받은 봉투에 표를 넣어 봉한 뒤 투표함
에 넣었다. 봉투에는 내 본적에 해당하는 선거구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 봉투가 6월 4일 전까지 내 선거구에
도착해서, 선거일 당일에 선거구에서 모인 표와 합쳐져 계산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없었고 또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미리 정해놓고 갔던 터라 투표는 순식간에 끝났다. 처음 가는 동사무
소라지만 동사무소가 특별히 다르게 생길 것도 없고 해서 별로 색다른 경험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권
자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실험이라고 생각하니 괜스리 좀 뿌듯해졌다.
시간이 남고 해서 주민 센터 앞 문구점에 있는 뽑기를 왱왱 돌렸다. 천 원짜리 한 장을 온통 동전으로 바꾸고 나
니 기분은 아임 인 베이가스. 입맛 따라 돌려본다.
나는 모르는 동네에서 시간이 남았을 때 뽑기를 돌리는 것을 소소한 취미로 갖고 있다. 아무리 후진 동네의 후진
뽑기라도 천 원을 넣고 열 판을 돌리다 보면 표지에 나와 있는 번쩍번쩍한 상품에 80%정도는 근접하는 물건 하
나 정도는 나오기 마련이다. 열 판 중에 하나만 나와도 씩 웃으며 가지고 노는 나는 무척 관대한 소비자다. 그런
데 그 상식이 바로 오늘 깨졌다. 원가가 단자리로 추정되는, 원산지도 백 퍼센트 그 나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공해물 열 개가 내 손에 떡.
80년대라 해도 뽑기에서 나왔다가는 욕 먹었을 것 같은 자동차도 큰 문제이지마는, 반지에 주판을 달아서 뭘 어
쩌자는 것인지. 게임에 등장했다면 암산력이나 명중률이 상승할 것만 같은, 그러나 그 능력이 상승한다 하더라
도 차마 캐릭터에게 달아줄 수 없는 디자인의, 괴 반지.
한 번 껴봤다. 끼우고 쳐다보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은 반지가 아닌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