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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옥성호, <갑각류 크리스천 레드 편>

 

 

 

<부족한 기독교> 3부작으로 기독교 내외에서의 상찬과 비난을 받은 바 있었던 저자의 2012년 5월 작. 2013년

 

3월에 나온 <갑각류 크리스천 블랙 편> (이하 <블랙>) 과 함께 두 권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추천을 받은 것은

 

<블랙>이었으나 학교 도서관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전작을 먼저 접한 뒤에 읽으면 더 효율적일 것 같아 일단

 

집어들었다.

 

 

 

적어도 이 책 <갑각류 크리스천 레드 편> (이하 <레드>)에는 저자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서 왜 두 권으로 나누

 

어 출판했는지, 또 왜 '레드'와 '블랙'이라는 편명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두 책의 목차들을

 

살펴본 결과 전작인 <레드>는 대체로 현재 한국 기독교의 문제상황을 고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블랙>

 

은 신앙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하는 것을 위주로 삼고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제목 중 일부인 '갑각류 크리스천'은 목회자의 아들이며 오랜 시간 기독교 신앙을 가져온 신자이기도 한 저자가

 

직접 관찰한 한국 크리스천의 모습을 형용한 단어이다. 저자는 남포교회의 박영선 목사가 한국의 크리스천에 대

 

해 탄식하며 내뱉은 다음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거기에서 책의 제목에 쓰이게 될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다 갑각류야. 겉모습은 엄청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어 보이는데, 실상 그 속은 연약한 살로 가득 채워진 갑

 

각류... 그러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더 집착해. 새벽기도, 십일조, 술 담배 안 하기 등등... 속이 허할수록 밖으로 드러내는

 

이런 신앙 행동 양태에 더 집착하지. 왜 그런지 알아? 겉이 무너지면 속까지 다 무너지기 때문이야."

 

 

 

저자는 이어서 보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의 '갑각류'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하나. 속에 담긴 내용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집착한다.

 

둘. 유명하다는 사람에게 매우 취약하고 그렇기에 이른바 성공한 사람을 쉽게 숭배한다.

 

셋. 내용보다 효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감정 고양에 더 치중한다.

 

넷. 신앙에 대한 이성적 의문에 민감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결국 '속살을 다지며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저

 

자는 '의문과 회의적인 시각을 솔직히 드러내고, 그런 다음 치열하게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대원칙

 

을 설정했다. 결국, 전편인 이 <레드>가 '의문과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내용이고, 후편인 <블랙>이 '치열하

 

게 질문'을 하는 내용일 것이다.

 

 

 

서문에서의 방향 설정이 끝난 뒤 바로 본문이 시작된다. 300여 쪽에 달하는 본문은 간결하게 3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장은 다시 10-20 쪽 남짓의 소챕터로 분류된다. 한국 크리스천의 문제적 상황을 신도의 입장에서 바

 

라본 1장 '갑각한 평신도'와 목회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2장 '갑각한 목회자'는 각각 열 개의 소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종의 소결(小結)에 해당하는 3장 '이제는 갑각 탈피'에서는 다섯 개의 소챕터를 통해 '치열한 질문'을

 

하기 위한 자세, 즉 <레드>를 마무리하고 <블랙>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적당한 분량과 흥미로운 주제, 그리고 입말식 문체로 구성된 각 소챕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설교라고 해도 좋을

 

만큼 쉽게 읽힌다. 특히 목회자의 아들이자 모태 신앙을 갖고 있으며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교회에서

 

보냈다고 스스로 술회하는 저자가 '내부자'로서 직접 체험하여 전달하는 실상들은 선정적인 에피소드나 충격적

 

인 수치 등으로 접하는 교회의 현실보다 더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내부자'로서의 시각은 독자가 계속 유의하며 책을 읽어야 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교회의

 

비리와 신도들의 무지, 목회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까발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데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기

 

독교 내부에서 불편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는 이러한 책을 거듭해서 내는 이유는 교회 내부의 각성과 자정을

 

유도하고자 함에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비기독교인과 반기독교인에게 있어 기독교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교

 

의 수단으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참된 신앙'을 찾고자 하는 기독교인을 위해 쓰여진 결과물이다.

 

이 '시선'을 감안하며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그냥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그저 저자 개인의 팬이 되거나

 

또 하나의 '예수쟁이' 책을 만났다는 감상 정도에 멈추지 않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앙에 관해, 나는 기본적으로 유신론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불교에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으며 기독교에

 

는 꽤 뿌리깊은 불신감과 반발감을 가지고 있다. 단 이 불신감과 반발감은 일부 기독교인들의 지나친 포교 행위

 

나 근본주의적인 토론 자세, 혹은 미션 스쿨인 모교 연세대의 채플 강제 참여 조치 등과 같은 지엽적 현상에 의

 

해 자라난 것이고,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 체계에 대해서는 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 와중에

 

만난, 귀하디 귀한 '진솔한 내부자'의 고백이 아주 반갑다. 이런 자세로 접근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독서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 교인과 교회의 부정적 실상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원하시는 분

 

이라면 이 블로그에 소개한 바 있었던 김상구 씨의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를 추천하고, 한국 개신교의 엄청난

 

성장과 그 이면에의 역사적인 접근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김진호 씨의 <시민 K, 교회를 나가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