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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강준만, <증오 상업주의>

 

 

 

 

강준만과 그의 출판벽(癖)을 알고 있는 분이라면, 이 블로그의 <독서일기> 카테고리의 몇십 권도 안 되는 목

 

에 웬 강준만 책이 그리 많냐고 타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1년에는 여름 경 한꺼번에 나온 <한국현대사 산책

 

2000년대 편> 5권을 빼고도 6권, 2012년에는 '교양 영어 사전'이라는 사전을 포함해 6권을 출간한 바 있었던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2013년 첫 작품, <증오 상업주의>. 부제는 '정치적 소통의 문화정치

 

학'이다.

 

 

 

강준만의 책은, 읽기는 즐겁고 독후감 쓰기는 괴롭다. 메세지와 논거가 명확하고 문장이 쉽기 때문에, 읽을 때

 

야 편하고 즐겁지만, 독후감을 쓰자면 별볼일 없는 내 감상을 적는 것보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를 옮겨 두거나

 

의 목차를 다시 정리해 두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가 많다. 이 책도 예외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책의 구체적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아마도 심상한 요약과 군소리에 지나지 않을 이 독후감을 읽기보다는 잠깐이라도

 

에 들러서 p5 - p14의 '머리말'과 p15-p16의 '차례'를 훑어보시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명백히 작년 7월 출간되었던 <안철수의 힘>의 연장선 상에 있다. <안철수의 힘>의 부제는 '2012 시대

 

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였다. 끊임없이 한국사회를 관찰하고 탐구해왔던 강준만이 보는 2012년의 가장 큰 사

 

회 문제는 '증오'였다. 따라서 시대적 과제는 이 증오를 넘어서는 것이었고, 그 과업의 가장 적절한 수행자로 강

 

준만은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안철수 전 원장을 지목하였으며 공개적으로 지지하였다. <안철수의 힘>은 안

 

철수에 대해 진보와 보수를 비롯한 각 계로부터 쏟아진 비난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그에 대해 공박하는 구성을

 

취함으로써, 오의 종언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에 안철수의 어떤 면이 적격인지를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분량

 

을 할애하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안철수 전 원장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현 국회의원과의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 사퇴를 선언했고, 대선 직후 미국으로 떠났다. 그 선거에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제 1

 

모토는 '대통합'이었지만, 강준만의 눈에는 그가 증오를 해결할 수 있는 적격자가 아니거나, 혹은 한국 사회가

 

주체적으로 대통합을 이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보다 본래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상황에서, 증오는 왜 생겨나고, 어떻게

 

생겨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이 책은 총 5장에 걸쳐 그 질문들의 해답을 묶은 것이다. 그리고 강준만은 '맺

 

는 말 - 왜 안철수의 도전은 실패했나'에서 다시 한 번 안철수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글을 끝맺는다.

 

 

 

강준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서 연구했고, 또 그 적임자가 안철수이기 문에 결말부

 

에서나마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정

 

한 의도를 갖고 쓰여진 저작물로 읽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어떤 책인들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이 책은

 

분명히 '정치적'인 농도가 한층 짙은 편이다. 이 점을 충분히 감안하면, 이 책에서 탐구하고 있는 여러 중요한

 

슈들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거칠게나마 전체의 내용을 요약해 두고자 한다.

 

 

 

1장과 2장은 2011년 저자가 미국 콜로다도 대학에 일 년간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관찰한, 미국 사회의 '증오'

 

에 관한 관찰기이다.

 

 

 

1장 '편향성은 이익이 되는 장사다'에서는 극우적인 시각을 킬러 컨텐츠로 삼은 FOX 뉴스의 성장 전략을 분석

 

했다. 강준만에 따르면, 미국의 언론은 이미 1960년대부터 진보적이거나 적어도 중립적인 스탠스를 기준으로

 

아왔다. '진보적'인 것이 '보수적'인 것보다 '새롭다'고 인식하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여있었던 셈이

 

다. 당연히 시청자들에게는 그 반대편의 시각에 대한 요구가 알게 모르게 잠재되어 있었다.

 

 

FOX 뉴스는 이러한 요구를 감지해 내고는, 1990년대부터 전국적 인기를 끌고 있었던 우익 라디오 방송 진행자

 

을 대거 영입하여 엔터테인먼트적인 '뉴스 쇼'를 런칭하였고, 카리스마 있는 사장과 편집장의 지휘 하에 '보

 

수'적 가치관에 영합하는 뉴스들을 생산해 냈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 2001년 9.11 사태 이후부터 대성공을 거두

 

어, 점점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는 CNN에 비해 FOX 뉴스는 현재도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강준만은 특히 FOX

 

뉴스의 성공 원인으로 '적 만들기 전략', 호전적 애국주의, 반 엘리트 포퓰리즘, 퍼스널리티 엔터테인먼트를 꼽

 

았다.

 

 

 

2장 '중립은 곧 악의 편이다'에서는 미국 민주당의 득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무브 온move on'을 분석하고, 한

 

국에 무브온적 활동을 이식하려는 시도의 득실을 계산해 본다. 잘 알려진대로 무브 온은 미국에서 형성된 세

 

최대의 온라인 진보 운동 단체이다. 이들은 유권자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주당 진영의 캠

 

페인과 홍보를 담당하는 한 편 공화당을 공격하는 몫까지 수행하였다. 그 힘은 차츰 막강해져, 현재 민주당에 가

 

장 큰 영향력을 갖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왕성한 활동은 공화당 진영을 자극하여 보수의 무브 온이라고 할 수 있는 '티 파티tea party'가 탄

 

생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실제로 티 파티 운동의 기획과 구성은 무브 온의 것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였

 

다고 한다. 이제 양 진영간의 대립과 '증오'는 더욱 치열해졌다.

 

 

강준만은 무브온의 이러한 어두운 면이, 한국사회로 이식될 때에는 더욱 강화되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하위적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초강력 일극주의' 국가

 

인 한국에서는 증오의 경기장 바깥에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든 사람은 점점 더 반드시 어딘가에

 

서 있어야만 하도록 강요받는다.

 

 

 

3장과 4장은 우리 사회를 관찰한 결과이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증오가 나타날까, 그리고 어떻게 나타날까에 대

 

한 연구가 실려 있다.

 

 

 

3장 '우리의 소원은 소통입니다'에서는 한국 사회에 증오가 가득하고 소통이 부재하는 이유가 개개인의 의지 탓

 

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 있다고 지적한다. 소통은 무작정 같은 탁자에 앉아 '소통 좀 해 봅시다'라고 해서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 정치, 경저적인 구조와 그에 따른 문화적 관행이 해결될 때 이

 

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장애 요인으로 강준만은 초강력 일극주의, 승자 독식주의, 속도주의, 연고주

 

의, 미디어 당파주의의 다섯 개를 꼽고 이에 대한 세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4장 '정치인들은 쓰레기다'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적 소통이 대체로 '포퓰리즘'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그 구체적인 구조와 결과를 제시한다. 기성 정치 엘리트에 대한 혐오를 동력원으로 하여 발생

 

하는 '포퓰리즘 소통'은, 건설적인 대화와 타협을 허용하지 않고, 중립 지역을 소멸시키며, 상시적으로 적을 만

 

들어내는 등의 폐해를 갖고 있다. 이런 소통 구조 하에서의 선거는 결국 인물 중심주의적 '반감과 응징'이라는

 

순환적 이벤트의 성격을 갖게 된다.

 

 

 

5장 '100대 0의 증오에서 51대 49의 이성으로'에서는 타협의 장점과 미덕을 역설하는 솔 알린스키의 견해를 소

 

개하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과 '증오 상업주의'에서 탈피할 것을 주문한다. 이 부분은 특히 진보 진영의 '정의로

 

운 증오심'에 충고를 건네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 보수 진영을 사악하고 타도해야만 할 어떤 것으로 인식하

 

는 이상, 증오 상업주의는 해소될 수 없고, 그 결과는 결국 한국 정치의 후진성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다.

 

 

 

 

 

2011년에서 2012년에 걸쳐, 우리는 여러 개의 강력한 정치적 사건들을 목격했다. 그 가운데에는 분명 적을 만

 

들고 증오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었고, 의도가 없었을지언정 증오를 낳는 사례도 있었다. 2012년 말의 18대 대

 

선에서는 종래의 '지역 갈등'에 '계급 갈등'과 '세대 갈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바야흐로 미움을 일삼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때에 '증오'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의 그림자를 분석하고 해결책

 

까지 제시하는 이 책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물론 그 메시지만을 따다가 '온 세상의 평화를'과 같은 종교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악하고 건설적인 결과를 내는 데에까지

 

해악을 미치는 증오는, 그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마땅히 직시하고 제거하는 것이 옳다. 위대한, 그러나 죽어버린

 

논문보다는 다소간의 흠결과 비약이 있을지언정 살아서 호흡하는 글을 쓰는 강준만의 현재진행성. 오랜만에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새 책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