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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4

싹 털렸어

 

 

 

 

 

친구네 동네가 금요일 밤 자전거로 놀러가기 딱 좋은 거리에 있었다. 좋은 동네였다. 4차로를 중심에 두고 대로

 

변의 오목조목한 가게들부터 거주단지로 가는 길 골목골목에 아늑해 보이는 선술집이 조로록 늘어서 있는, 안

 

온한 느낌의 동네였다. 자전거를 대로변의 펜스에 묶어놓고 대여섯 시간 잘 놀고 돌아와 보니 앞뒤로 뗄 수 있는

 

액세서리가 몽땅 사라져 있었다.

 

 

 

뗄 수 있는 것이라지만, 어쨌든 나사로 고정시켜 놓은 것들이라 술마시고 지나가던 사람이 아, 저거 예쁘네 하고

 

서는 툭 떼어서 들고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장비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합치면 십만 원 가량의 물품

 

이지만 자전거를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어보이는 물건이 아니다. 거기에 주차를 시켜놓은

 

곳이 훤한 가게 앞이라 행동이 쉽게 눈에 띄는 점, 인근에 술집과 가게가 많으니 자전거 주인이 근처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 등에도 절도를 감행한 것 등등을 감안해 보면 역시 상습범의 소행인 것 같았다.

 

당장 잃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종종 놀러가고 싶은 동네였기 때문에 집에 와 자고 일어난 뒤 경찰에 신고를

 

다.

 

 

 

나는 씁쓸했다. 자전거를 펜스에 묶어두었을 때, 헬멧을 어떡할까 고민을 했었다. 안장 위에 난짝 얹어두고 다

 

녀 올까, 아니면 자물쇠를 다시 풀어서 헬멧의 구멍에 관통시켜 단단히 묶어둘까. 자전거와 함께 산 자물쇠는 몹

 

시 튼튼한 한편 묶고 풀기가 불편하다. 혹시나 모르니까, 하고 불편함을 눌러가며 나는 자물쇠를 풀렀다. 그러면

 

서 속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도난을 걱정할 필요가 있나. 만사에 대비가 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의심하면서까지 대비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고 내 마음이 황폐한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헬멧도 도난당했을 판이었다. 더 조심하고 더 의심할 필요가

 

었던 셈이다. 그 격차만큼 씁쓸했다. 원래 갖고 있던 조심과 의심도 스스로 무척 불쾌한 것이었는데, 더 했어

 

했구나. 더 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돌아오는 길에 달리다가 쳐다보니, 내 자전거는 그간 핸들에 주렁주렁 달고 있던 짐들을 떼어내고 좀 자유로워

 

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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