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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식용유 치즈 피자' 사건

                                         <상기 이미지는 본문 중 언급되는 상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수입이 정기적이지 않고 이따금 있다 하여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보니, '직업이 대학원생입니다'와 '먹고 살고

있습
니다'라는 모순적 명제 사이에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해도 좋다. 좋은 날이 오면 보은해야 할 대

상들은 당
장만 꼽으라 하여도 수십여 개는 쉽게 댈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주변의 사람이 아니라 저가형의 상

품들을 내놓는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식품류에서 근래 몇 년 동안 큰 혜택을 받았던 기업 중 하나가

논란에 휩싸였다.




식약청, 즉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16일 '피자스쿨', '59피자' 등 이른바 저가형 피자 브랜드들이 상품에 100

%
자연산 치즈를 넣었다고 홍보하면서 실제로는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를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에

는 국내
산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임실치즈'의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들도 포함되어 있어 트위터와 블로그를 중심

으로 비판
여론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내가 주로 이용했던 브랜드는 서울 연희동에 지점이 있는 '피자스쿨'이다. 특히 큼직하게 썬 감자가 여덟 조각

올라
가 있는 '포테이토 피자'는 마요네즈가 듬뿍 뿌려진 느끼한 부분과 감자가 올라가 있는 담백한 부분의 맛을

번갈아
가며 느낄 수 있어 못해도 삼사백 판 이상은 먹었을 것이다. 저가형 브랜드답게 콜라와 피클을 함께 구입

하여도 팔
천 원 안짝, 서양 요리에는 입이 짧아 세 번에 나눠 먹으니 한 끼니에 삼천 원도 채 안되는 것도 잦은

매식에 한 몫
했다. 이 탓에, 이제는 밖에서 내 돈 주고 피자 사먹을 일은 없을 정도로 질려 버렸지만 아무튼 고

마운 마음은 분명
히 갖고 있었는데.



애당초 싸게 끼니를 해결하고자 사먹은 것이지 무병장수를 위해 먹은 음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사에 덧붙은

사회 일반의 분노에 찬 목소리들만큼 성이 나 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단,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기사에서는 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는 것 같아 추가로 덧붙이고 그 가운데 들었던 생

각들도
함께 적어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이 기업들이 자연산 치즈가 아닌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를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이

가운
데 '가공 치즈'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두 종류 이상의 치즈를 섞거나 탈지분유, 과실, 채소 등을 섞

은 것으
로, 말 그대로 '가공한' 치즈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초기에는 불량 치즈의 재생법으로 이용되었으나, 가

열처리되어
보존성이 좋고 경제적이므로 현재 많이 소비된다'고 하는 소개에 영양분에 관한 언급은 없고 단지

보존성과 경제성
만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자연산 치즈보다 몸에 좋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모조 치즈'인 듯하다. 치즈의 함량이 50-95%까지 이르는 가공 치즈에 반해 모조 치즈는

50%
이하이며, 나머지는 전분, 식용유, 산도 조절제 등의 물질이 섞인다고 한다. 일부에서 이 브랜드의 피자들

에 '식용
유 치즈 피자'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시간을 갖고 찾아보니 다른 참고할 점들이 좀 있었다. 첫째, 원가 절감을 위해 피자에 모조 치즈나 가공 치즈를

용해온 것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사실인 듯했다. 주로 엄마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등에서는 해당 브랜드

의 피자
를 아이들에게 먹이지 말자는 의견이 이미 수 년 전부터 담론화되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하자

면, 알려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가 치즈는 아니라고 하나, 경제성을 감안하면

무작정 비난만 할
식품은 아니라는 의견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버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

가린은 아직도 생산되
고 있지 않은가, 라는 비유에는 크게 납득되는 바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값에 피

자 먹을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뭐'라는 뉘앙스의 댓글도 많았다.



내가 이 사건을 지켜보며 주목했던 것은 두 지점이다. 작게 보면 계급적인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 파파 존스나

자 헛의 피자를 무시로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뉴스에 큰 관심을 갖지 않거나, 아니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
온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을 것이다. 주소비층, 즉 분노의 담당층은 나와 같이 도심에서 매 끼니를 매식

해야 하는 1
인 가족이나 싼 것이라도 피자를 먹이고 싶었던 저소득층의 부모들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비만

하다'는 명제
가 팩트의 차원으로 입증된 미국과 같이, 이제 한국에서도 소득이 높지 않으면 최소한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것이 사회적인 기회를 충분히 수여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이나 식품에 민감
한 젊은 부모들의 분노와 결합된다면 총선 급이 아니라 대선 급 이슈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마침
이들 세력은 트위터 등을 통한 SNS여론의 향배를 결정짓는 세대-계급이기도 하

다. 

  


더 큰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단지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가형 브랜드를 내세

기업 간의 이슈가 아니라, 대중 전체를 상대로 하여 '판매자-기업-지배-피선출 등' 대 '소비자-서민-피지배-

선출
등'의 프레임으로 무의식중에 인식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는 뜻의
'양두구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을 정도로 유구한 이런 전통은, 그러나 특히 요 근래의 몇 년간 정부나

고위관료,
대기업 등 상징적인 존재들의 일련의 행태로 인해 그 피해자들에게 심한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그 켜

켜이 쌓인 층
의 두께가, 이렇듯 단순한 연상 고리를 가진 사건만으로도 새삼 인식될만큼,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에 이르렀다고 나
는 보는 것이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이 사건을 '식용유 치즈 피자' 사건으로 명명하는 그 심

리의 근저를 훑어보
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한다면, 차곡차곡 쌓아온 '빛나는' 커리어가 결국 피

자치즈에 날아갔다는
넋두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도우에 모조 치즈가 아닌 가공 치즈를 사용했다고 하는 피자스쿨의 피자만을 주로 먹어왔고, 피자

쿨의 피자도 크러스트에는 모조 치즈를 넣었다고는 하나 그 옵션은 이천 원을 따로 내야 하는 턱에 거의 먹어

적이 없다.  말하자면 큰 피해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성공한 뒤 어떤 형태로든 해당 기업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식품업계에 남은 내 마음 속 보은의 대상 1위는 한솥

도시락. 걸
릴만한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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