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이미지는 본문 중 언급되는 상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
수입이 정기적이지 않고 이따금 있다 하여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보니, '직업이 대학원생입니다'와 '먹고 살고
있습니다'라는 모순적 명제 사이에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해도 좋다. 좋은 날이 오면 보은해야 할 대
상들은 당장만 꼽으라 하여도 수십여 개는 쉽게 댈 수 있다. 그 가운데에는 주변의 사람이 아니라 저가형의 상
품들을 내놓는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특히 식품류에서 근래 몇 년 동안 큰 혜택을 받았던 기업 중 하나가
논란에 휩싸였다.
식약청, 즉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16일 '피자스쿨', '59피자' 등 이른바 저가형 피자 브랜드들이 상품에 100
% 자연산 치즈를 넣었다고 홍보하면서 실제로는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를 사용해 왔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에
는 국내산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임실치즈'의 이름이 들어간 브랜드들도 포함되어 있어 트위터와 블로그를 중심
으로 비판 여론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내가 주로 이용했던 브랜드는 서울 연희동에 지점이 있는 '피자스쿨'이다. 특히 큼직하게 썬 감자가 여덟 조각
올라가 있는 '포테이토 피자'는 마요네즈가 듬뿍 뿌려진 느끼한 부분과 감자가 올라가 있는 담백한 부분의 맛을
번갈아가며 느낄 수 있어 못해도 삼사백 판 이상은 먹었을 것이다. 저가형 브랜드답게 콜라와 피클을 함께 구입
하여도 팔천 원 안짝, 서양 요리에는 입이 짧아 세 번에 나눠 먹으니 한 끼니에 삼천 원도 채 안되는 것도 잦은
매식에 한 몫 했다. 이 탓에, 이제는 밖에서 내 돈 주고 피자 사먹을 일은 없을 정도로 질려 버렸지만 아무튼 고
마운 마음은 분명히 갖고 있었는데.
애당초 싸게 끼니를 해결하고자 사먹은 것이지 무병장수를 위해 먹은 음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사에 덧붙은
사회 일반의 분노에 찬 목소리들만큼 성이 나 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단, 궁금하여
더 검색을 해보니, 기사에서는 다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는 것 같아 추가로 덧붙이고 그 가운데 들었던 생
각들도 함께 적어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이 기업들이 자연산 치즈가 아닌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를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가공 치즈'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두 종류 이상의 치즈를 섞거나 탈지분유, 과실, 채소 등을 섞
은 것으로, 말 그대로 '가공한' 치즈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초기에는 불량 치즈의 재생법으로 이용되었으나, 가
열처리되어 보존성이 좋고 경제적이므로 현재 많이 소비된다'고 하는 소개에 영양분에 관한 언급은 없고 단지
보존성과 경제성 만이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자연산 치즈보다 몸에 좋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모조 치즈'인 듯하다. 치즈의 함량이 50-95%까지 이르는 가공 치즈에 반해 모조 치즈는
50% 이하이며, 나머지는 전분, 식용유, 산도 조절제 등의 물질이 섞인다고 한다. 일부에서 이 브랜드의 피자들
에 '식용유 치즈 피자'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시간을 갖고 찾아보니 다른 참고할 점들이 좀 있었다. 첫째, 원가 절감을 위해 피자에 모조 치즈나 가공 치즈를
사용해온 것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사실인 듯했다. 주로 엄마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등에서는 해당 브랜드
의 피자를 아이들에게 먹이지 말자는 의견이 이미 수 년 전부터 담론화되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하자
면, 알려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가공 치즈나 모조 치즈가 치즈는 아니라고 하나, 경제성을 감안하면
무작정 비난만 할 식품은 아니라는 의견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버터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
가린은 아직도 생산되고 있지 않은가, 라는 비유에는 크게 납득되는 바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값에 피
자 먹을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뭐'라는 뉘앙스의 댓글도 많았다.
내가 이 사건을 지켜보며 주목했던 것은 두 지점이다. 작게 보면 계급적인 문제를 언급할 수 있다. 파파 존스나
피자 헛의 피자를 무시로 사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뉴스에 큰 관심을 갖지 않거나, 아니면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 온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을 것이다. 주소비층, 즉 분노의 담당층은 나와 같이 도심에서 매 끼니를 매식
해야 하는 1인 가족이나 싼 것이라도 피자를 먹이고 싶었던 저소득층의 부모들이 아닐까. '가난한 사람이 비만
하다'는 명제가 팩트의 차원으로 입증된 미국과 같이, 이제 한국에서도 소득이 높지 않으면 최소한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이것이 사회적인 기회를 충분히 수여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이나 식품에 민감한 젊은 부모들의 분노와 결합된다면 총선 급이 아니라 대선 급 이슈로 부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마침 이들 세력은 트위터 등을 통한 SNS여론의 향배를 결정짓는 세대-계급이기도 하
다.
더 큰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단지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가형 브랜드를 내세
운 기업 간의 이슈가 아니라, 대중 전체를 상대로 하여 '판매자-기업-지배-피선출 등' 대 '소비자-서민-피지배-
선출 등'의 프레임으로 무의식중에 인식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
는 뜻의 '양두구육'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을 정도로 유구한 이런 전통은, 그러나 특히 요 근래의 몇 년간 정부나
고위관료, 대기업 등 상징적인 존재들의 일련의 행태로 인해 그 피해자들에게 심한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그 켜
켜이 쌓인 층의 두께가, 이렇듯 단순한 연상 고리를 가진 사건만으로도 새삼 인식될만큼, 무시할 수 없는 수준
에 이르렀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이 사건을 '식용유 치즈 피자' 사건으로 명명하는 그 심
리의 근저를 훑어보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한다면, 차곡차곡 쌓아온 '빛나는' 커리어가 결국 피
자치즈에 날아갔다는 넋두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도우에 모조 치즈가 아닌 가공 치즈를 사용했다고 하는 피자스쿨의 피자만을 주로 먹어왔고, 피자
스쿨의 피자도 크러스트에는 모조 치즈를 넣었다고는 하나 그 옵션은 이천 원을 따로 내야 하는 턱에 거의 먹어
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큰 피해자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성공한 뒤 어떤 형태로든 해당 기업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식품업계에 남은 내 마음 속 보은의 대상 1위는 한솥
도시락. 걸릴만한 일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