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 들어 가장 티나게 밥줄이 끊긴 방송인 중 한 명인 '시사 엔터테이너' 김용민 씨(이하 김용민)의 신작. 현
재는 인기리 방송 중인 '나는 꼼수다'의 제작, 편집을 맡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반 박자 정도 느린 개그 타이밍
이 불편하고 안타깝고 그렇지만, 앞으로의 '시사 평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오락성이라는 사
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인재인 것은 확실하다. 이 책도 그가 출연 중인 '나는 꼼수다'와 '김어준의 뉴욕 타
임스'에서 끊임없이 광고하길래 알게 됐다.
오늘은 세부 내용부터 소개를 하고 총평을 하려고 한다. 눈여겨보면 좋을 법한 정보들이 꽤 있어, 일단 간단한
요약, 혹은 발췌를 주로 하고 따로 써야 할 감상이 있으면 덧붙이겠다.
책은 크게 5부로 나뉘어져 있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의 의미를 고찰하는 1부. 김용민이 주목하는 2017년 대
선 주자 7명에 관한 2부. 조국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이하 조국)와의 인터뷰인 3부. 정치평론가 김용민이 예
비 대권 주자 조국에게 건네는 일종의 컨설팅인 4부. 그리고 여론조사 기관 대표, 정치평론가, 노사모 대표 등의
조국에 대한 평이 실린 5부.
1부는 김용민이 근래 자주 입에 올리는 '진보의 집권은 2017년이 좋다'는 언급에 대한 상술이다. 거칠게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 어느 쪽이 집권하든 다음 정권은 현 정권의 설거지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파탄 난 남북관계와 천문학
적으로 늘어난 국가 부채와 같은 거대 이슈들부터, 동남권 신공항 선정이나 과학 벨트 부지 재선정 등에서 불거
진 지역 감정, 그리고 급하게 덮은 구제역이 불러올 환경 오염 등 당정이 총력을 기울여 진화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아울러 2017년 대선은 대학진학율 80% 이상이 달성된 세대들이 50대까지 올라가는 때로, 노무현을 추억하는
30대는 40대가 되며 '88만원 세대'가 30대가 되고 촛불세대가 20대의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대권 주자와 소속
정당의 '캐릭터'에 속지 않고 '컨텐츠'를 묻는 유권자들이 의미 있는 다수를 차지하는 때이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하게 되면, 앞서 말한 유권자들이 10년의 경험을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 체제에 대한 경험을 가지
고 2017년 대선에 임하게 된다. 진보 정권이 장기집권할 토대가 생기는 것이다.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박근혜가 될 것 같은데, 어차피 줄 거 시원하게 주고, 줘 봤더니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지켜보자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정치평론가나 지식인들이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이 알
아서 진보정권 찍어줄 거라는 이야기. 4년만으로 이미 정치적으로 피로해진 이들에게 어쩌면 더 어두울 수도 있
는 5년을 더 보내보라는 건 사려깊은 언술은 아니나, 확실히 설득력은 있다. 아울러 (그 5년에서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 지금은 잠룡이나 규룡에 불과한 야권의 예비 대선 주자들도 그 때쯤엔 든든한 덩치와 맷집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2부에는 김용민이 주목하는 2017년 대권 주자들의 짧은 이력과 그의 인물평이 실려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총 7
명으로, 2012년의 유력한 대권 후보인 박근혜와 (김용민이 생각하기에) 2007년의 후보, 즉 '시효가 지난' 인물
들인 정동영, 손학규, 유시민은 빠졌다. 이력은 생략하고, 그의 인물평만을 짧게 정리하여 올린다. 자신이 생각
해왔던 인물평과 비교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겠다.
(1) 김두관 : '지역 구도 타파'라는 구도에서 노무현 후계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함. 경남도지사 재임 중의 성과에
주목.
(2) 김문수 :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 서울시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경기도의 앞선 복지.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이 신념이 아니라 야심에 근거. 아울러 씻을 수 없는 변절의 기억.
(3) 나경원 :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이라는 '스토리', 외모에 기반한 대중적 '인기', 그러나 본인의 목소리
는 부재.
(4) 안희정 : 충청권 표심을 정치적 지렛대로 이용하지 않은 첫 충청권 지도자. 세종시 수정, 과학벨트, 4대강 사
업 등 도지사로서뿐만 아니라 전국적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이슈들이 큰 장애물이자 곧 기회.
(5) 송영길 : 좁은 인맥. 불분명한 노선. 앞으로의 기반이 될 인천시의 재정상 총체적 난국부터 풀어야.
(6) 오세훈 : 때늦은 '진짜 보수' 타령. 자신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비한나라당 이미지'만 깎아 먹어.
(7) 이정희 : 현장에는 언제나 있는 의원. '작은 차이를 극복하며 통합의 대의를 앞세운 리더십'
한명숙과 문재인이 빠진 것은 그들이 2017년보다는 2012년에 더 큰 역할을 할 사람들이라는 계산 하에서였겠
지만, 원희룡과 노회찬, 조승수 등이 빠진 것은 알 듯 말 듯 하다. 이외로, 송 시장님 챕터를 읽으면서 고향 인천
을 찾을 때마다 전임 안상수 시장이 (보온 상수님과는 동명이인이다.) 여기저기 퍼주던 눈 먼 돈을 새 시장이 모
두 자르고 있어 지역민심이 흉흉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던 터라 안쓰러웠다. 열심히 해도 욕먹는 판이고
잘 해도 본전이 될까말까지만, 그래도 꼭 잘 극복하셔서 인천도 살리고 본인의 입지도 세우시길 바란다.
3부와 4부는 조국과의 인터뷰, 조국의 장단점 분석. 그리고 그 분석에 기초한 컨설팅 등으로, 말하자면 '조국 현
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뷰는 사실 양과 질에 있어 오연호와 조국이 아예
인터뷰 형식으로 한 권을 채운 '진보집권 플랜'에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인터뷰를 제한 나머지 부분
들 가운데 김용민이 파악한 조국의 장단점만을 적어 둔다. (컨설팅 부분이 강점을 키우고 약점을 보완할 것, 정
도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도 하다.)
(1) 조국의 강점 : 하나, 뉴 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지명도. 둘, 야권의 대안 부재 상황. 셋, 세대교체 추세. 넷, 세
련됨.
(2) 조국의 약점 : 하나, 강고한 지지세력의 부재. 둘, '엘리트' 이미지. 셋, 현실정치 참여 의사와 결단력.
개인적으로는 2017년이라 할지라도 조국을 대선 후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흥미가 적었다. 준수한
외모와 킬링 컨텐츠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보물을 쥐고자 하면 오물에라도 손을 박아넣는 투지와 여의도 내에
서의 경험, 인맥이 없다면 대권을 쥘 수도 없거니와 혹 쥐더라도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
5부는 '정치 고수'들의 조국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평이다. 평자는 네 명으로 <리얼미터> 대표 이택수, 정치평
론가 공희준, 전 노사모 회장 노혜경, 익명의 30대 기혼여성이다. 현 정국이나 다른 대권 후보들에 관한 질문들
도 던져졌으나 여기에서는 주로 조국과 관련된 언급만을 정리해 본다.
(1) 이택수 : 조국은 진보진영의 집권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인 '강남좌파'의 아이콘으로써 학벌과 외모 등의 조건
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투사로서의 파이팅' 등 다양한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2) 공희준 : 강남좌파는 좌파가 아니다. 그들은 강남에 주거하기 때문에 강남좌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강남
이 상징하는 토대, 구조적 틀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좌파란 스스로를 치장하기 위한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 이들에게는 심정적으로 강동 지역이나 강서 지역보다 뉴욕이 더 가깝다. 조국이 진정 대권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서울대 교수와 강남 거주라는 조건을 버리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
은 없을 것이다. 그가 야권 대선 후보가 될 확률은 49%,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될 확률은 51%이다.
(3) 노혜경 : 조국은 아직은 대선주자급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좋은 재
목 정도로 보는 것이 좋겠다. 입지와 위상은 유리하지만, 현실정치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
다. 조국 자신이 진보의 미래냐 아니냐보다, 대중이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수준과 방향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4) 30대 기혼여성 : 지난 총선에서 20-30대 여성들은 '의미 있는 표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에게 조국
은 상당히 경쟁력 있는 카드이다. (이 부분은 문맥상 그의 외모와 관련된 언급으로 보이는데, 확실히 적시된 것
은 아니라 일단 단순 인용만 해 둔다.) 친화력은 조국의 강점이나 너무 잦은 노출은 신비감을 떨어뜨리는 것 같
다.
특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는데, 조국은 이미 개인으로서의 실체가 강남 좌파라는 트렌드의 아이콘에 압도
당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강남 좌파는 딱히 주거로 특정지어진다기보다는 학벌과 경제력, 그리고 주로 문화, 소비 생활등
을 골자로 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 정의되는 세력이다. 그 세력의 실체가 건강한가 아닌가, 혹은 새로운 개
념을 둘러싼 논의가 생산적인가 아닌가를 차치하고라도, '빨갱이-퍼랭이'나 'TK-PK', 혹은 세대론 등의 조악한
틀에서 벗어나 마침내 '계급'의 프레임이 적용되기 시작한 특정 사례라는 것은 유의미하다. 시대는 이미 같은
20대냐 아니냐, 혹은 같은 부산 사람이냐 아니냐보다는, 무슨 직업에 종사하며 얼마를 버느냐의 질문이 더 많은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남 좌파'나 '분당 우파'에 이어 앞으로도 무수
히 많은 신조어가 탄생할 이 논의는, 이어질 것이고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이 점차 몸집을 키워가는 것이 대선 주자로서의 조국에게는 유리한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
다고 본다. 작게 보자면 '강남 좌파'라는 이름표는 필연적으로 앞서 지적되었던 '엘리트 이미지'와 연결될테고,
여기에 박근혜 지지자들이 '변기에 벽돌 넣던 박정희 각하'를 들고 나오면 필패라고 봐도 좋다. 하지만 더 근본
적으로, 국회의원 정도면 몰라도 대선 후보는 이미지와 실체 사이의 간극에 대해 검증받는 일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이 간극이 크면 클수록 당선 가능성은 멀어지게 된다. '대쪽 판사'였던 이회창이 아들 병역 비리에 나가떨
어지는 것이 실패 사례였다면, 수많은 비리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CEO로서의 경력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
지와 맞아떨어졌던 이명박 대통령을 성공 사례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조국의 경우에는, 이미 '욕망하며 질
투하는', 오늘날 대중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심리코드가 반영된 '강남 좌파'라는 거대한 이미지의 가
장 큰 아이콘이 된 데 비해 그 실체는 실질적인 정치 기반을 갖지 못한 학자에 불과하다. 대중의 환상 위에 세워
진 엄청난 기대가 쭈그러들으면, 조국 본인의 비극일 뿐 아니라 이후의 진보 세력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미증유
의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는 책 총평. 200쪽 가량의 분량에 떡제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편집과 디자인. (솔직히 학생 레포
트라고 해도 믿겠다.) 그러나 내용은 확실히 괜찮다. 정치에 조금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시간이 없다면 일일이
알 수는 없는 정치인들의 이력, 언행이나 새로이 유행되는 말인 '강남 좌파'의 소개, 그리고 유명한 사람인 조국
에 대해 여러 사람이 달아 놓은 평 등을, 깊지는 않더라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모두 접할 수 있는 것은 아주 효
율적인 일이다. 두꺼운 한 권의 전문서를 통해 대권 후보들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이 정도
깊이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며 보는 눈을 길러나가는 것도 좋겠다 싶다. 그런 차원에서 한 가지 건의. 독자들이 무
지하게 양질인 시사 잡지를 산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 수 있게 값 좀 낮춰 주시라. 만이천원은
좀 그래. 정리해서, 서서 읽으실 거라면 말할 것도 없고, 사서 읽으셔도 큰 후회 없으실 것 같아, 평균해서 강추.
특히 학부생 후배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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