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귀가버스. 버스 입구 앞 좌석에 앉아서 덜컹덜컹 집에 간다. 논현 정류장에서 버스는 서고 입구가 열렸
다. 멀쩡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간에 서서 탈 생각은 않고 기사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아빠! 기사
님이 쳐다보지 않자 남자는 다시 아빠! 소치 가요? 하고 외쳤다. 기사님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갔다 오는 길
이다, 라고 대답했다. 남자는 계속해서 힘찬 목소리로, 네!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씩씩하게 다음 버스를 기다리
기 시작했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나는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지난 뒤에야 남자가 말한 것이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소치를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침 버스에 손님도 적고 한남대교에 차도 없고 해서, 아는 분이
세요? 하고 묻자 기사님은 피곤한 얼굴로 신길동 사는 스물여덟 살 짜리예요, 라고 답했다. 답을 듣고 더 궁금
해졌지만 물어봐야 대답을 안 해줄 것 같은 분위기라 호기심을 누르며 덜컹덜컹 집에 왔다. 방에 들어와 옷을
벗다가, 그 사람 소치에 가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