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신방과 교수인 강준만 씨의 새 책이다. 멀리서 여러 권이 쌓여 있는 모양새를 봤을 때엔 표지가 좀 별로
라고 생각했는데, 한 권을 들고 오며 여러 번 쳐다보니 그 의도된 키치가 재미있기도 하다. 출판사는 인물과 사
상사.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은 강준만 씨의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 중 아홉 번째 책이다. 그 이전의 제목들을 살
펴보면 커피, 다방, 축구, 강남, 입시, 전화 등의 키워드가 들어 있어, 다방면에 걸쳐 문화사 연구를 진행해 왔음
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나는 시간 절약을 위해 특정 장르의 글은 덮어놓고 읽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 일이 있었는데, 문화사는
그 중 대표적으로 꼽는 것 중 하나이다. 물론 하나의 주제의식 하에 잘 기획된 문화사 서적도 적지 않지만, 대중
의 화제에 오르거나 접하기 쉬운 책들의 독서 경험은 대개 크게 재미있지 않은 잡지를 읽은 기분으로 끝나기 일
쑤였다. 게다가 문화사는 다큐멘터리 채널들의 단골 소재이기도 해서, 커피나 바나나 등에 관한 문화사적 지식
은 영상물을 통해 훨씬 더 재미있게 접한 경험이 있는 터였다. 와중에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은 일단 눈맛이 당
기는 소재 탓이 첫 번째였고, '한국 현대사 산책'을 통해 쉽게 읽히는 글을 접했던 저자에 대한 신뢰가 두 번째
였다.
이 책은 해방 이후부터 스폰서 검사 사건이 터졌던 2010년까지를 총 8장으로 나누어 해당 시기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총 8장 가운데 4장부터 8장까지의 다섯 개 장은 2000년대 이후를 다루고 있어 근현대
사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도 기억 속의 사건을 떠올리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내용은 룸살롱의 역사에
서부터 출발하여, 룸살롱에서 일어난 사건, 룸살롱 문화의 본질 등에까지 방대하게 뻗어나간다. 개별 사안에 대
한 깊은 성찰이 드물게 보이는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룸살롱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한 권 안에 접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문화사의 미덕이다.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없었던 근현대사의 정치적 비화 뿐 아니라 '텐프로'와 같이 실제 룸살롱에서 쓰이는 비속
어 등까지 두루 기재되어 있는 방대한 정보 등이 그 예이다. 강준만 씨 개인의 수집 편력에 기인한 것일까, 아니
면 이미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있는데 다른 이들이 활용을 못 하는 것 뿐일까?
흥미로운 여러 꼭지들을 지나 '맺는말'의 형태로 저자가 요약하는 바는, '룸살롱 문화'는 한국의 '칸막이 문
화'가 만들어낸 현상이며, '칸막이 문화'는 '조직의 공동체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끼
리끼리 문화'가 낳은 음지의 자식이 '룸살롱'이라는 원적 불명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성을 거부
하거나 배제'하고, '조직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지적할 내부 비판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이 '칸막이 문화'를 어찌
하면 좋을 것인가? 좋지 않으니 없애자, 라는 원론적 결론을 낸다면 선정적 화제를 꺼내어 코묻은 돈이나 떼어
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정체성 부여와
그에 따른 사기 진작'이라는 '나름대로의 순기능'을 인정하되 '부처 간 교환 근무 인사'나 '평가 시스템의 개혁'
등의 대책을 통해 개선해 나가자는 끝말을 내놓았다.
그 이상은 이 책에서 다룰 바가 아니다, 라면 할 말 없지만 기대하던 입장에서는 조금 서운하긴 하다. 흥미로운
정보의 편집을 통해 끌어들인 독자들에게 건전한 가치관, 상식을 심어주는 데에까지 나아갔더라면 더 좋았을텐
데, 하고.
총평하여, 손 닿는 곳에 두고 몇 번씩 다시 읽으며 감상할 것은 없지만, '룸살롱'이라는 소재에 대한 훌륭한 자
료집이므로, 사회 제반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된 글을 쓰는 이는 반드시 한 권 사 두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훨씬 즐겁게 읽은 다른 책들도 근래 형편 때문에 살까말까 고민 중인 나로서도 당장 구매 최우선순위에 이 책을
올려두었다. 끝에 소심하게 슬쩍 덧붙이는데, 책 제목은 좀 심하게 식상하지 않은가 싶다. 제목 바꾼 탓에 흥행
에 시뻘건 불 들어갔다고 평해지는 영화 '나는 아빠다'에 한 치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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