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지2014.10.02 18:20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2009년 작. 저자는 한국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익숙한 이름일 청강문화산업대의 만화창작과 교수이기도 하다. 책은 일단은 제목 그대로, 일본 여행 도서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총 4부로 이루어지는 책의 구성은, 다소 산만하다.

 

 

1부 '만화'는 네 개의 챕터 중 하나에 불과함에도, 책의 2/3를 차지하는 분량이나 독특한 기획에 있어 이 책의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 1부를 써놓고 분량이 모자라서 2-4부를 덧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의심이 들 정도이다.

 

기획은 흥미롭다. 2009년 교수로서 연구년을 맞은 작가는 일본을 방문하였고 이때의 방문기, 여행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직업이 만화평론가인만큼 만화에 나온 장소들을 탐방하고 취재해 일종의 가이드북을 썼는데,이 원고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만화에 나온 명소'에 관한 간단한 소개나 지리 정보 등은 이미 기존의가이드북에도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온 문화와 일본 현지에서 관광객으로 느끼는 문화가 교차되는 지점을 최대한 담아내'는 '문화여행에세이'를 쓰기로 결정한다. 쉽게 말해, 직업이 만화평론가인 형이, 일본의 만화나 만화영화에 나온 그 장소에 직접 가보고, 느꼈던 소회를 정리한 책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사카의 낡은 상점가와 주택가에서는 <요츠바랑>의 조용한 일상을 떠올리고, 만박기념 공원을 산책하며 <20세기 소년>의 중요한 코드들을 분석하고, 도쿄의 메이지진구에서 일본 술을 마시며 <명가의 술>을 언급하는 것이다. 긴자에서 읽는 <시마 과장>, 미술관에서 읽는 <갤러리 페이크>, 츠키지 시장에서 읽는 <어시장 삼대째> 등도 일본 만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독자라면 흥미로운 기획이다.

 

아쉬운 점 하나. 이 기획은 대도시인 도쿄와 오사카에 한정되어 있다. 필자가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그 정도였는지 아니면 실제로 일본 만화의 배경이 그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다양한 지역이 소개되었더라면 하는 욕심은 버리기 아깝다.

 

아쉬운 점 둘. 이 책에는 40개가 넘는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해당 작품의 컷이 등장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직접 만화에 등장하는 장소에 가고 사진까지 찍었는데 그 광경이 만화에서는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은 역시 서운하다.

 

 

2부 '애니메이션'은 약 40쪽의 분량으로, 특히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를 거닐며 일본의 '오타쿠 문화'에 대해 고찰한다. 오타쿠 문화, 좀 더 나아가 서브컬쳐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유용한 정보와 시사점이 충분하다.

 

다만,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나 도쿄에 있긴 매한가지인데 여기서 언급되는 작품의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따로 2부로 분리한 것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차남>이나 <현시연>과 같이 오타쿠가 등장하는 작품이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은 개별 작품의 특성일 뿐이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따로이 갖고 있는 특성이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만화평론가로서 특히 관심을 쏟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따로이 분리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3부 '캐릭터 & 토이'에서는 약 30쪽 분량 대부분을 아예 '인간은 왜 장난감을 좋아하는가', '어른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장난감에는 어떤 분류가 있는가' 등의 질답에 할애하고 있다. 후반부에 이르러 '일본에서 장난감 사기'라는 소꼭지에 몇 개의 대형 장난감 가게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1, 2부에서 유지되던 컨셉이 무너졌다는 인상은 버리기 어렵다.

 

 

4부 '테마파크'는 약 30쪽 가량의 분량에 일본 각지의 만화와 관련된 테마파크들을 소개한다. 주요하게 소개되는 지역은 도쿄와 돗토리이다. 특히 돗토리에서는 미즈키 시게루, 다니구치 지로, 아오야마 고쇼의 세 만화가가 소개되고 있는데, 두산백과에 의하면 '일본에서 현청소재지로는 인구가 두 번째로 적다'는 돗토리가 따로이 소개되는 것으로 보아, 역시 필자가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 집필이 되었다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는다.

 

 

흥미로운 기획에도 구성과 포장에 허술함이 있어 단점을 주로 언급하게 됐지만 나는 대체로 즐겁게 읽었다. 언급되는 만화들도 이른바 '대작' 위주로 편성하고 있어 대부분 아는 작품들이었고 일본의 예쁜 사진들을 컬러로 보는 것도 즐거웠다. 필자의 직업이 만화평론가인만큼 개별 만화에 대한 평도 '그것 참 재미있었지' 정도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관련된 추가 정보나 새로운 해석 등에까지 나아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이드북이 아닌만큼 실용 정보가 많지 않고,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인만큼 분석과 평론의 깊이에도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나는 만약 일본 현지에서 동행한 누군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분명히 아주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독서를 마쳤다. 일본 여행이나 일본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검색해 보니 2011년, 같은 학교의 교수인 만화가 최호철과 함께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녀보고 함께 쓴 <펜 끝 기행>이란 책이 있다. 나는 곧 구해서 읽을 예정이다.

 

 

 

 

 

 

Posted by 최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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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가정보 하나. 경기도에 집 짓고 책장으로 꽉 채우는 것이 소원인데, 이 형은 이루었다.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011&contents_id=51391

    2014.10.02 18: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추가정보 둘. 일본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아니면 그냥 내용에 관심이 있을 사람들을 위해 책의 차례를 복사해다 붙여둔다.


    · 추천사 일본 생활을 통해 본 일본 만화는 진짜였다. 004
    · 만화는 문화를 사랑하게 해준다 006
    · 머리말 008

    Prologue 출발 전, 나는 이미 일본을 알고 있었다

    Part 1 만화 Comic
    <서브 컬처> + 유년의 문화충격 018
    <산><드래곤헤드> + 축복과 재앙이 뒤섞인 ‘일본의 지리’ 022
    <반딧불의 묘><바람의 검심> + 비장한 미의식이 살아 있는 ‘일본의 정서’ 030

    Area 오사카
    <요츠바랑> + 낡은 상점가와 거대한 빌딩이 공존하는 오사카 038
    <열네 살><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 + 일본적인 색채의 상점가와 골목 풍경042
    아케이드 상점가는 추억을 부른다 044
    관람차, 백화점, 지하상가들로 버무려진 원더랜드, 우메다 052
    <현시연><망상소녀 오타쿠걸> + 덴덴타운에서 만난 오타쿠들 056
    오타쿠의 성지, 덴덴타운을 탐험하다 060
    <오다 노부나가><베가본드><북두신권> + 일본의 역사 만화에서 본 일본의 역사 064
    <도쿠가와 이에야스> + 오사카성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068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념하다 070
    <용> + 근세의 풍경을 간직한 신세카이080
    <20세기 소년> + 만박기념공원에서 만난 ‘친구’의 초상 088

    Area 타카라즈카
    만박기념공원 가는 길, 타카라즈카 가극을 보다 096
    <철완아톰><리본의 기사><정글대제> + 일본 만화의 대부, 테즈카 오사무 098
    테즈카 오사무 박물관 기행 116

    Area 도쿄
    <오! 나의 여신님><미소라><더블맨> +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종교와 숲 120
    <이웃의 토토로><모노노케 히메><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메이지진구에서 찾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상 129
    <나츠코의 숲> 혹은 <명가의 숲> + 메이지진구에서 만난 일본 술 ‘사케’ 138
    숲을 걷자, 도쿄는 걷기 즐거운 도시니까144
    <브레이크다운><바텐더><시마 과장> + 긴자, 일본을 상징하는 거리 146
    역사와전통의 럭셔리 거리, 긴자의 숍 152
    <리본의 기사><올훼스의 창><베르사이유의 장미>
    + 소녀만화의 거리, 오모테산도와 캣스트리트 158
    오모테산도, 럭셔리 브랜드와 유명 건축가들의 각축장 172
    <갤러러 페이크>+예술의 도시, 도쿄 176
    도심 속, 쇼핑 공간에 자리한 미술관들184
    <도쿠가와 이에야스> + 옛 도쿄의 향기, 에도박물관들 186
    에도 시대의 기억이 숨쉬는 에도도쿄박물관 194
    <미래소년 코난><바람계곡의 나우시카><하울의 움직이는 성>
    + 일본을 담아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196
    <어시장 삼대째><미스터 초밥왕> + 일본의 맛, 츠키지 시장 204
    야구, 롤러코스터, 스파, 코스튬이 한자리에! 도쿄돔시티 212

    Part 2 애니메이션 Animation
    일본 ; 문화 … + 우리에게도 취향의 커밍아웃이 필요하다 216
    <전차남><기동전사건담><에반게리온> + 취향의 헤비 유저, 오타쿠 223
    <현시연> + 모에의 천국, 아키하바라 232
    미소녀 게임, 캐릭터, 경품…취향대로 골라간다 238
    월간 <파후> + 이케부쿠로에서 만난 동인녀들 243
    이케부쿠로, 동인녀에게는 천국, 일반인에게는 번화가 250

    Part 3 캐릭터 & 토이 Character & Toy
    … + 어른들, 장난감에 탐닉하다 254
    <건프라><구체관절인형><트랜스포머><피겨> + 장난감, 그들에 대한 이해 262
    <키디랜드><토이파크><토이저러스> + 일본에서 장난감 사기 278

    Part 4 테마파크 Theme Park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 일본의 일본다운, 일본인에 의한 테마파크들 288
    작지만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테마파크들 294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 도시 전체가 만화 테마파크인 그의 고향 돗토리 298
    요괴들과 함께 즐겨 보자,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306
    만화가 다니구치 치로 + 만화 속 거리를 걷다 310
    <명탐정 코난>, 오쿠에이정을 살리다 318

    2014.10.02 18:2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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