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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2015 교토

5일차 - 교토 상경

 

 

 

 

4월 12일 일요일. 8일부터 20일까지 13일 간의 여행 중 5일차이다. 이 날은 나오시마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교토로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떠나 교토에서의 오후를 누려도 되지만 섬에 체류한 나흘 동안 가장 좋은 볕이 든 것이 분하여 점심 무렵까지 노닥거리기로 했다. 마침 나오시마의 골목은 어슬렁거리며 노닥거리기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하다. 산책 길, 멋진 자연이나 안도 다다오의 작품보다 더 내 눈을 잡아끌었던 것은 언젠가 꼭 키워 보고 싶은 샴 고양이의 실루엣. 반투명 창이라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한층 애틋하였다.

 

 

 

 

 

 

 

 

이전의 경험에 비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태도라면, 즐길 수 있을 때에는 즐기자, 로 요약할 수 있겠다. 여행을 할 때의 나는 잠자리나 먹을 것, 혹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 수 있는 경험 등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한 숙소라도 오래 자면 그만이고 조금 덜 맛있는 것을 먹더라도 돈을 아껴 기념품을 사는 것이 남는 장사다. 내 일상적인 욕망은 맨 뒷줄에 놓는다. 그건 해외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아직도 조금 주제넘은 경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돈과 시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안한 일이겠지만 나는 대체로 혼자 여행을 해 왔던 터라 큰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그런 나와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하다.

 

이번에 여행의 태도를 바꾸어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이전에 비해 돈과 시간에 다소간의 여유를 확보하고 떠난 것도 없지 않지만, 갔던 곳에 또 갔기 때문이다. 새로 가 보고 싶은 곳보다는 다시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았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확인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좋았는데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을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그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호텔에 묵고 방송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다닐 것은 아니지만, 천 엔 정도 더 주더라도 특색이 있는 숙소도 좀 찾아보고, 밥 때가 되어야 근처의 편의점이나 덮밥 체인점 찾아 우걱우걱 먹지 말고 나중에 와 보고 싶은 식당 있거들랑 눈에 좀 담아두고 다니자. 기념품도 남들 기념품보다는 내 기념품을 사도록 하자.

 

 

 

 

 

 

 

 

그래서 맛나게 먹었다. 교토도 아니고 나오시마까지 가서. 시저 샐러드와 마르게리따 피자. 나오시마의 특산물도 뭣도 아니었지만, 아주 맛있었고, 나는 즐거웠다.

 

 

 

 

 

 

 

 

케익과 아이스크림의 디저트까지.

 

 

 

 

 

 

 

 

 

다시 항구로. 배를 기다리며 야요이 호박과 뜨거운 안녕을 했다. 이런 놈들이 많은 듯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는 쳐다도 안 본다.

 

 

 

 

 

 

 

 

으아악.

 

 

 

 

 

 

 

 

 

예쁜이 열차 타고 땡땡 소리 내며 교토로 상경한다. 교토는 한자로 경도京都이니 이 때만큼 상경上京이란 말이 어울릴 곳이 없다.

 

 

 

 

 

 

 

 

열차를 오래 타고 또 여행 가방을 질질 끌고 댕겼더니 오랜만에 찾은 교토역에서 진한 라멘 한 그릇 먹고 나자 몸이 푹 퍼져 버렸다. 교토에서 첫 밤을 보내게 될 숙소의 체크인 마감 시간도 가까워지고 해서 이 날은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를 찾지 못해 큰 고생을 했던 지난 여행의 첫날 밤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숙소로 향하는 버스. 교토에 몇 안 되는 못난이 랜드마크, 교토 타워 오랜만이다.

 

 

 

 

 

 

 

 

 

닷새 간 신세를 지게 될 숙소의 이름은 KOBAKO였다. 하룻 밤에 4,000엔. 1인실, 다다미 바닥, 그리고 헤이안 신궁에서 가깝다는 것이 메리트였다. 지난번 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헤매인 뒤에야 찾을 수 있었다.

 

현관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위의 복도처럼 가로로만 길고 세로로는 무척 좁은, 옛날 일본 만화에서 본 것 같은 거실 풍경이 있었다. 커다란 괘종시계도 있고 계산대 역할을 하는 듯한 앉은뱅이 책상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고. 그 사이로 코타쓰 하나에 서너 명이 옹기종기 발을 밀어넣고 있었는데 내가 인기척을 내자 그 중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명이 사장인 듯 부스스 일어나며 손님맞이를 하였다. 며칠은 감지 않은 것 같은 헤어 스타일의 사장은 흰 반팔 티셔츠와 체크 무늬의 사각 팬티만을 입고 좁은 복도를 따라 나를 안내하였다.

 

 

 

 

 

 

 

 

이번 교토 여행에는 두 군데의 숙소에 머물렀다. 이동이 불편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숙소에 묵고 싶었지만 다소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었고 또 벚꽃 시즌과 맞물려 빈 곳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군데 모두 무척 재미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숙소였던 위 사진의 방은 일단 두툼한 이불과 널찍한 개인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이불을 개어놓지 않아도 옷가지와 컴퓨터 등을 마구 늘어놓을 공간이 충분하였다. 그날 그날 사 온 물건들을 쭉 펼쳐놓고 보기도 하고 큰 교토 지도를 활짝 펴서 보기도 하고. 

 

 

 

 

 

 

 

 

재미있었던 점은 이런 것이다. 이 방은 위의 사진에서 소개한 복도와 붙어있는 방인데, 실질적으로는 벽이 없고 여러 장의 문짝이 벽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쪽 면은 옆 방과, 한 쪽 면은 복도와, 한 쪽 면은 내 방 바로 앞에 있는 휴게실과, 한 쪽 면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붙어 있다. 그나마도 벽 역할의 문짝들이 서로 아귀가 딱딱 맞게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널찍널찍하게 떨어져 있어서 이런저런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것은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의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잠귀가 밝은 터라 밤 중의 소음은 좀 불편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일본어나 영어도 듣고 지나가는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하며 즐겁게 지냈다.

 

교토에서의 첫날 밤에는 남은 여행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일정을 다시 확정하고,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3권과 4권, 교토의 문화재에 대한 내용을 숙독하고 잤다. 복도에서 빛이 새어들어와 잠이 금방 올지 모르겠네 생각하다가 금세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