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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성적표의 귀환

그렇다. 위대한 성적표님이 또다시 나와 주셨다. 최대호 성적계의 떠오르는 다크호스 F군은 이번

학기에는 나타나지 않아 아쉬움을 더했다. 본래는 '그들의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A군과 F양의

불륜관계, B양과 C군의 포크댄스등을 다양하게 사용하여 짧은 글을 써보았으나 교수님들께 그저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라 장난을 치는 것은 예에 벗어난다 생각하여 삭제하였다.


정말이다. 노력대비로 말하자면 입학 이래로 최고의 성적이다. 출석상황을 면밀히 돌이켜 본 결과

나의 3학년 2학기는 열심히 6학점을 들었거나 조금 놀며 9학점을 들은 학생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것도 과목별로 편중해서. 중간고사 이전까지 한 번도 안 들어간 수업이 두개, 서너번 정도

는 들어간 수업이 두개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니, 기분이 나빠질까봐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

논리상으로는 세쌍둥이로 받아도 할 말 없는 F군이 하나 없는 성적표 앞에서는 정말이지 참담한

마음 반 감사한 마음 반이라고 밖에는 할 말 없다.


마광수 교수님은 친분을 쌓았다 하나 고작 반년인데다가 그 반년간 연극을 두편 하느라 그다지 못

뵈었으니 결과에 승복한다 치고, 영감은 잘 안 줄 줄 예상했으니 그렇다 치고.


수업 단 세 번 들어갔고 얘기 한 번 못 나누어 본 수업. 일주일에 하나씩 제출했어야 할 레포트를

몽땅 몰아 연말에 낸 수업. 죄송하다고 자작 소설 '주안 동정남'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첨부해

보내드린 그 이름모를 교수님이 C를 주셨다. D를 주셨어도 감복했을 터인데. 흑흑.


그리고 순서는 두번째라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두번째가 아닌, 허경진 선생님. 이미 선생님 덕분에

혹여 내가 선생님의 뒤를 걷게 되지 않더라도 평생 공부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고전문학에의 애정

을 키워놓았지만, 그 애정이 결과나 실력으로 나타나지 못 하고 항상 애정에만 머물러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이다. 오히려 이는 준엄한 채찍이라 할 수 있을까. 출석이 열번근처일 터인데. B를

주셨다.


부끄러운 발자취만 남기고 잠시 떠난다. 내 사랑하는 국문과. 마음에 담은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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