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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8

The Dark Knight






코믹스에서 출발한 미국의 영웅 캐릭터들 중 가장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배트맨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디오에 쓰여진 'Gold Star'와 함께 태어나 처음으로 해석해 본 영어단어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하루

종일 영화만 틀어주는 채널도 없던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처음으로 그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접

하고는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대학에 입학한 뒤 어떻게 어떻게 하여

미국에서 판매되는 배트맨 코믹스를 구해 읽은 적이 있었는데, 팀 버튼 식의 기괴한 동화 분위기가

빠진 배트맨은 어쩐지 밋밋한 느낌이었다.


여담이지만, 몇 년전의 어느 날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은 헌책방 사냥에서 우연히 팀 버튼이 직접

쓰고 그림까지 그린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찾아내었다. 신판을 구입할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책이라 환호성을 울리며 구입하자마자 선 자리에서 몽땅 읽어버렸는데, 다 읽고 난 뒤엔, 사람

들에게 인상을 주기엔 성공했지만 어쩌면 이 사람의 인생 자체는 그리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하는 말에는 '음울'이나 '기괴'등의 단어가 자주 등

장하는데, 개인적 취향 등의 차원이 아니라 본성이 그러한 사람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비정상적인 환상성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고민이라는 외피를 씌워 긍정적으로 풀어 놓았던 '빅 피쉬'

는, 당시 주변인들은 혹평을 일삼았지만 나는 무척 좋았다. 아직 못 본 '스위니 토드'도 기대된다.)


'Batman Begins'의 후속편인 'The Dark Kinght'의 감독은 전작에 이어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전작을 감상하며 메멘토나 인썸니아에서 보여 주었던 성찰력이 시리즈의 무게에 눌린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엔 어떨지 신경이 쓰이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주인공이 여전히 크리스토퍼 베일이며

이번 작의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하는 조커 역에 히스 레저가 발탁되었다는 것.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사실 가슴 속에는 아직도 배우의 꿈이 남아 있는데, 내 마음대로 영화와 배역을 고를 수 있

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꼭 해 보고 싶은 배역 다섯 손가락 안에 조커는 수년째 계속해서 들어 있다.

그런 조커에 히스 레저. 불안불안하다.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조커 연기는 조악한 세트와 지루한

화면구도에 관계 없이 지금 보아도 부러워 죽겠다. (광기 어린 연기는 내면 감정의 수렴보다는

발산이라 여겨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는 이를 설득시킬 만한 광기를 표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왕의 남자'에서 정진영이 보여 주는 연기 정도에 '광기' 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광

기를 모욕하는 일이다. '해안선'에서 장동건은 눈알을 번뜩이지만 나는 '아, 눈알을 번뜩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졸고 있었다.)


아무튼, 올 여름 개봉예정. 1년만의 영화관 나들이가 될지 어떨지, 다 같이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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