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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3

Girls, it's christmas time.











                                                 출처 www.beadslook.com



DIY라는 단어가 있다. 양놈들이 흔하게 써대는 이른바 축약형 문장인데, 지금에서야 어디서든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이지만 내가 처음 접하던 90년대 중반즈음에는 ASAP만큼이나 생소한 단어였다.

혹여나 지금도 모르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DIY는 Do It Yourself의 축약형으로, 문장 자체가 갖는

뜻도 있겠지만 요새는 재료만을 준비하여 소비자가 그 재료를 구입한 뒤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

어 보게 하는 일련의 상품형태를 가리키고 있다. 그 종류야 예전부터 있어오던 뜨개질부터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차량조립까지 엄청나지만, 그 근저를 꿰뚫고 있는 정신은 하나로 묶인다. 창조에의

호기심과 자기애로의 발전. 그 둘의 만남. 이른바 '건전한 인디 정신'이다.


반지 사진 몇 개 늘어놓고서는 이렇게까지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라는 볼멘 소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번쯤은 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이니 참아 주시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잊지 않는, 혹여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몇개의 개념, 정신, 주의가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그 사람의 개성, 특성, 인생을 결정하는 가치와 기준이 된다. 나에게 당신의 그것

은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역지사지와 인디정신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둘은 기실

아주 상이하다.


역지사지는 잘 알다시피 예(禮)를 체현하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내 경우 이것은 나의 행동을 삼가

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재는 잣대가 된다. 에, 그건 너무 조건부야, 라고 말씀하시면

원래 문장부터가 조건부라고 화답할 수 밖에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경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거봐 청년. 남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라구. 남이 너한테 그따위로 굴면 너도 싫을 것 같지?

그러니 그만두라구. 남이 싫어한다니까.

여기를 보라! 경구는 어떠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동기로 '남이 너를 싫어할 테니까'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나 예의 진정한 발현이기 때문에, 가 아니다. 남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많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굳이

드래곤 라자의 명문을 들지 않더라도 인간은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지 못 한다. '다른 이'

라고 통칭된 불특정 다수는 우리의 머리속에서 '사회'의 이미지와(여기가 중요하다! '개념'이 아니라

'이미지'인 것이다.) 연결되고, 거기로부터 유리된다고 생각했을 때에 인간에게 촉발되는 감정은

무엇일까?  

그렇다. '공포'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포

를 꼽고 있다. 과연 그렇다. 인간은 공포앞에 취약하다. (만화 '드래곤 헤드'나 '카이지'는 이 부분을

잘 파고든 수작이다.) 아홉시 뉴스에서 본, 불이 난 건물에서 먼저 대피하기 위해 남을 밀치는 모습

등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학창시절에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선생님은 누구였을까? 전인적 교육을 실천하는 음악선생님이었을까? 아니다. 대부분 제대로

때릴 줄 아는 학생과 소속 선생이나 체육과 선생이었을 것이다. 복종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공포다.


아니야! 화재현장같은 데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남을 구하는 이들도 있잖아! 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

겠다.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렇게 질문하는 당신은 그 사람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영웅이다. 왜? 답은 당신도 알고 있다. 그는 우리 모두가 가진 비열한 본성

이자 생명을 지닌 개체의 한계인 '공포'를 극복해 낸 것이다. 당신은 거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러나 그것을 부끄러움이라고 인정하기는 싫다. 그래서 그를 '영웅'화 하는 것이다. 그는 '원래부터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 따라서 소리높여 그를 칭송해도 더 이상 당신에게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공포를 바탕에 깔고 있기에 역지사지는 오늘날에 썩 잘 어울리는 가르침이다. 다큐멘터리

필름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그룹 마릴린 맨슨의 리더는 이 부분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다. 현대는

공포가 지배하는 시대이다. CF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옆사람에게 입냄새를 풍길지도 모르니 자일리

톨을 씹어라. 머리에 비듬이 있으면 회사면접에 짤릴지도 모르니 비달 사순 샴푸를 써라. 일하다 난

처해질지도 모르니 위스퍼 생리대를 착용해라. 모든 문장을 유심히 보기 바란다. 나의 '어떠한 결점'

이 상대방으로부터 '불쾌'를 유발할 수 있고 '사회로부터 유리'당할 수 있다. 그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상품'이 제시된다. 인간의 본성인 공포와 자본주의, 그 사이를 잇는 텍스트로서의

역지사지까지 세박자가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시대, 우리는 그 시대에 살고 있다.


상술했듯이, 역지사지는 인간에의 불신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개념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에

게 네 이웃은 언제나 너를 사랑할 것이니라라는 보편적 의식이 있었다면 역지사지가 씨알이나 먹혔

을까? 말같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까지 도달하기 전에도, 내 인생에서의 역지사지는 그다지

즐거운 개념이 아니었다.

봐라, 난 네가 싫어할까봐 이만큼 해 줬다. 그러니 너도 이만큼은 지켜 줘라. 선 넘어오면 그대로 한

방 친다. 이것이 내 가치와 기준의 하나였다. 나이를 먹어 논어를 손에 잡게 되고부터 역지사지라는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이름을 붙여 주었을 뿐 그것은 항상 내 뇌리에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확실히 피곤하다. 함께 사는 인간들을 불신하면 행복하지 못 해같은 착한 소리를

덧붙이지 않아도, 이 개념의 본원적 방향은 밖으로 향해져 있다. 즉 나를 구성하는 가치가, 밖으로

, 타인을 향해 있다는 것이 피곤한 것이다. 내가 내 삶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내 삶의

'외면', 문학으로 치면 '교훈', 내가 흔히 쓰는 말로 '부르조아'이다.


당연히 나올 차례인 인디정신은 문맥상 예쁘게도 정확히 역지사지에 배치된다. '나'에 대한 관심,

즉 내 삶의 '내면', 문학으로 치면 '쾌락', 그리고 흔히 쓰는 말로 '보헤미안'이다.


앞서 DIY를 이야기했었다. 이제 거기와 관련된 인디정신이다. (단 주의할 것이 있다. 내가 '건전한'

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도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사회 아래에서는 인디

정신이 메인 스트림에 거부하는 서브 컬처의 성격을 떨칠 수 없었기에 그 이름 자체가 저항성을

띠는 경향이 있었으나, 시대는 바야흐로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어느정도 포스트 모더니즘을 받아

들일 수는 있는 사회로 가고 있다. 인디는 다양한 문화형태의 한가지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지금의 인디 정신이 '건전하다'라고 해서 이전 사회의 인디정신을 '불건전하다'라고 말한 것이라 생

각했다면 필시 양비론자나 흑백론자이다. 둘 다 어쨌든 모더니즘 시대의 폐해자들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재미있게도, 인디정신의 핵심인 '창조'와 '자기애'는 기실 같은 코드이며, 역지사지의 바탕인

공포와 정면으로 배치되어 있다.


생각해 보자. '창조욕'이란 따로이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자신에게로 향한 관심이다. 이 과정을

지탱하는 감정은? 사랑이다! 당연하다. 물론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라는 반론도 있

겠지만 내가 말하는 사랑은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에 닿아있는 사랑이다. '나'는 '나의 눈'으

로 세상을 인식한다. 어느 누구도 내가 보는 것만큼 생생하게 나에게 현실을 인식시켜 줄 수는

없다. '나'는 '나의 마음'으로 감정을 느낀다. 어느 누구도, 첫사랑과 헤어질 때에 느껴지는 감정,

눈은 따끔따끔해 오고 입술은 말라오고 가슴의 심실과 심방 어디쯤이 꾸욱 저며오는 가운데 사타구

니 근처가 싸-해지는 그 감정. 그 감정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없다. 그것을 느끼게 해 주는 모든 것

은- '나'. 그러므로 '나'는 소중하다. 소중한 것은 사랑스러운 것이다. 사랑이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 그리고 해 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

운 일이다. DIY는 여기에 포인트를 맞춘 상품이라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라는 것.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DIY관련 상품들은 과연 이러한 만족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제품군으

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다고 간주되었던 상품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뜨개질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DIY이지만, 그것을 주류

상품으로 내미는 DIY사업은 없다. 생각해보라. 이전부터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그것은 흥미를

끌 수 없다. 무언가 새로운 것. 할 수 없다고 간주되어 있었던 것.


우리는 얼마나 이 사회를 잘 알고 있을까? 당신은 당신의 세금이 어떠한 비율로 계산되는지 알고

있는가? 핵폭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는가? 식탁은 어떤 순서로 못을 박아 만드는지 알고

있는가? 만약, 지구종말이 다가와 당신과 당신의 아내만이 지구에 남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아이를

받아낼 수 있는가? 백년쯤 지나 당신의 후손들은 증기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한 특성을 정의짓는다. '분업'이다. 산업화 사회의

가장 큰 원동력중의 하나였던 이 노동형태는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고 드디어는 인간의 정신까

지 규정짓기에 이르렀다. 당신은 당신이 '전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가스를 가는데도 업자가 오지 않으면 만져 보지조차 않고, 실내 인테리어는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으

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집에서 만드는 피자는 왠지 맛이 없을 것 같고, 패키지 여행이 아니면

여행지에서 뭔가 손해를 볼 것 같다.


아무려면 어떤가! 당신은 '아마추어'다. 아무래도 괜찮은 것이다!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우리와 똑같은, 똑같은 출발점에 있었을 것이고, 미용계의 비달 사순이 아닌 이상, 미술계

의 피카소가 아닌 이상 '전문가'들도 우리가 서 있는 거기로부터 멀리는 못 갔을 것이다.


이 생각의 근본이 바로 창작욕, 그리고 아마추어리즘, 거기에 더해진 자기애. 이것이 인디정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목에 걸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쓸 탁자를 만들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만들, 수, 있다. Do It Yourself, 'cause you can do it.


나는 그래서 DIY를 좋아한다. 뜨개질을 하는 것, 장난감을 만드는 것, 연극을 하면서 못질을 하여

무대를 만드는 것, 그리고 크게 보면 준비된 제품만을 소비하는 것만이 아닌 편지쓰기, 글쓰기,

여행하기등등까지. 이것들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대호가 좋아하고, 이제는 잘하는 일들을 해 보시라. 떡볶이를 만들어 보길. 머리를 직접 잘라 보길.

댑따 어려운 장난감을 사서 만들어 보길. 벽에 못을 박아 보길. 합판과 각목을 사다가 탁자를 만들

어 보길. DIY.



아아. 참. 말이야 멋들어지지만, 여하튼 나도 혼자 있기도 하고 같이 있기도 한 인간이고, 오늘도 내

머리속에서는 역지사지와 인디가 싸우고, 부르조아와 보헤미안이 싸우고, 교훈과 쾌락이 싸우고.

현상과 본질이 싸우고. 피곤하다.


참. 혹여나 원하는 반지 있으면 개인적인 루트를 통해 말해 보시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만들

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리고 당연히, 잘 아시다시피, as always, 소년들의 주문은 받지

않는다. 굿나잇, Girls. It's christma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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