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지친 몸 달려나 보자. 눈에 푹 익은 길이니 조금이라도 더 편하겠지.
며칠 전에도 왔었던 골든 라이탄 앞을 지난다.
그대 청년이여 무슨 사연 있관대 2인용 자전거를 홀로 타는가. 혹 단순한 체력단련이라면 멋대로 감정이입한 것
에 깊이 사과하겠소.
오 전임 시장님의 또 하나의 역작인 세빛둥둥섬. 못지 않은 역작인 아라뱃길을 지나와 이렇게 만나고 보니 감회
가 한층 더하다.
팔자 좋게 이런저런 사진 찍으며 온 것 같지만 사실 위의 사진을 찍을 때쯤 나는 크게 후회를 하고 있었다. 딱
마지막 한 방울에 컵의 물이 넘치듯, 여의도에서 뚝섬으로 오는 이 길의 어딘가에서 분이 넘치고 말았던 것이다.
집에서 나섰을 때부터 여섯 시간쯤 팟캐스트를 들었더니 아이폰은 딱 인증샷을 찍고 지도를 검색할 수 있을 정
도의 배터리만 남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전면 후레쉬도 배터리가 떨어졌는지 껌뻑대기 시작했고, 회음부와 허
벅지 쪽에는 큰일이 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 밑에 멈춰서서 멍하니 쉬는데 어둑어둑한 한강을 배경으
로 어디선가 구슬픈 한편 자주 음정이 틀리는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이쯤부터는 이미 무념무상. 정확히 언제 찍었는지 어디서 찍었는지도 기억 안 난다.
시간은 아홉시. 한강의 토요일 밤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오도카니 서 있는 인증센터에서. 여의도에서 17km 더
왔으니 집에서는 34km만큼 멀어졌다는 사실도 이 때에야 떠올랐다. 수고 많았다. 갈 길이 이미 멀다. 잠깐 앉아
서 물 한 모금 먹고 얼른 집에 가자, 하고 혼자 생각하며, 이 날 하루 동안 들게 된 습관이라 무심코 다음 거점이
자 한강종주자전거길의 마지막 거점인 광나루자전거공원을 검색해 보니.
6km. 6km. 야 이 나쁜 놈들아 6km가 웬 말이냐. 갈 힘도 없고 의지도 없지만 여기까지 와서 6km를 더 안 가면 나
는 그런 나와 어찌 살란 말이냐.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다시 집에서 12km만큼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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