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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1. 4대강 아라자전거길 - 서해갑문에서

 

 

 

 

어잇샤 어잇샤. 페달을 밟자. 7km도 넘게 떨어져 있다니 검암역까지 지하철로 편하게 온 부끄러움도 조금은 가

 

라 앉누나.

 

 

 

 

 

 

 

그냥 자전거 도로 위에 글씨 몇 자 써 놓은 것 뿐인데, 달리던 중 브레이크를 밟고 찍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장면.

 

어머나, 뭔가 시작되긴 시작됐나봐 하는 생각에 스르륵 웃음이 난다. 어쨌든 고맙긴 고마운 것이니 그 분에 대한

 

오마쥬의 마음으로 혀도 몇 번 날름거려 본다.

 

 

 

 

 

 

 

옳거니 오른 쪽의 저것이 수첩 판매처렷다. 4대강 자전거길 선배님들의 블로그를 보니 망치 모양 건물이라 하던

 

데 그것 참 직관적이고 좋은 설명이었구먼.

 

 

 

 

 

 

 

가까이서 보니 더욱 망치. 머리가 두 개 달린 쌍망치.

 

 

 

 

 

 

 

사생대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밖이 더웠는지 학부모와 아이들이 건물 내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화장실

 

에서는 붓 빨고 파레트로 물싸움 하는 꼬마 애들 때문에 청소하는 할머니만 울상.

 

 

 

 

 

 

 

수첩은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안내센터에서 팔고 있었다. 지도와 '여권 수첩'을 합쳐 4,500원. 카드 계산

 

도 된다고 자랑스레 쓰여 있었다. 수첩 4,000원, 지도 500원으로 별도 구매도 가능하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산 이유는 출발지에서 사고 싶다는 감상적인 이유가 아니라 오프라인 상으로는 여기에서만

 

팔기 때문이었다. 이전엔 서울의 여의도, 뚝섬 등의 거점에서도 판매했지만 최근에 서울 내의 판매 거점이 전부

 

철수했다. 물론 서울 내의 거점에서 철수한 것일 뿐 4대강의 다른 자전거길의 지점들 중에는 판매하는 곳이 많

 

다. 나는 이 날 아라자전거길과 한강종주자전거길의 일부만을 달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중 유일한 판매 거점

 

인 이곳에서 산 것이다. (착불 택배비 3,500원을 부담하면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혼자 갔지만 나중에 줄 수 있게 되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두 개 샀다.

 

 

 

 

 

 

 

건물 안이고 밖이고 간에 눕고 엎드린 사람이 워낙 많아 나도 덕분에 철퍼덕 편하게 앉아 수첩과 지도를 살펴 봤

 

다. 가격 대비 대단히 훌륭하다. 낼름낼름.

 

 

 

 

 

 

 

그리고 쌍망치 인근에 위치한, 첫번째 인증센터. 아라자전거길의 첫번째 거점인 '아라서해갑문'의 인증센터이

 

다. 런던의 폰 부스 같기도 하고, 키아누 리브스의 숨겨진 명작 <엑설런트 어드벤쳐>의 타임머신 같기도 하다.

 

안쪽, 안쪽을 보자. 

 

 

 

 

 

 

 

수첩과 지도는 함께 사면 작은 비닐봉투에 넣어져 나오는데, 그 비닐을 여기에서야 벗긴 이들이 많았던 듯.

 

 

자전거 붐에 맞물려 4대강 자전거길이 인기를 얻은 탓에, 이 인증 도장은 여기저기가 닳아 잘 찍히지 않기로

 

명하다. 스탬프를 열어놓고 떠나는 이들 때문에 다음에 온 사람이 흐릿한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내가 들어갔을 때에도 스탬프는 훌러덩 뚜껑이 열려 있었다. 절도를 걱정한 것인지 도장에 튼튼한 쇠줄을 달아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 염려는 현실적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우연히 한두 거점을 빠뜨린 사람을 위해 그

 

거점에 가 대신 도장을 찍어주는 알바도 있고, 아예 전국을 돌며 도장만 주루룩 찍어 주는 알바도 있다 한다.

 

멋지구리한 완주 인증서와 메달의 예상 못한 폐해라 할 수 있겠다.)

 

 

 

 

 

 

 

첫 도장 쾅 찍고 좀처럼 안 찍는 셀카까지. 자랑스러워서는 아니고, 수첩을 분실하거나 혹은 도장이 흐릿해서 인

 

증이 어려울 때 인증샷으로 찍은 사진이 있으면 대체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은 변죽 좋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

 

진 촬영을 부탁하기 어려워서 혼자 찍었다.

 

 

 

 

 

 

 

혼자 찍는 모습을 본 다른 라이더 아저씨가 척척 오더니, '어, 아까 검암역에서 봤던 아저씨네. 우리보다 먼저 도

 

착하셨구나. 내가 찍어 드릴게'라고 주루룩 말하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저씨의 호방한 오지랖에 나는 그만 겸

 

손한 미소와 공손한 앞손을.

 

 

 

 

 

 

 

인증센터부터 종주길 출발점까지는 십여 미터가 조금 넘는다. 그 사이에 있는 조각상. 짧은 코스나마 돌아보고

 

집에 돌아온 지금 다시 보니 조금 감동적이다. 이걸 뭣하러 자전거로 가, 하는 생각이 들던 거리도 한 페달 한 페

 

달 밟다 보니 어느덧 다 돌고 귀가까지 마치게 됐다. 국토 종주를 마치고 다시 보면 감흥이 한층 더 하겠지.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라이더가 찍고 가는, '출발점에서' 사진. 말벅지 아저씨도 유치원 꼬마도, 비싼 MTB도 네

 

발 자전거도, 모두 출발은 0에서 해야 한다.

 

 

 

   

 

 

 

하는 따위의 감상적인 생각을 하다가 옆을 보면, 부산 끝에서부터 여기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길은 633km. 감상

 

과 성찰은 300km라도 넘은 다음에 하자. 주제 넘은 짓이었다.

 

 

 

 

 

 

 

머쓱해진 마음에 뭐 더 볼만한 거 없을까 하고 둘러보니 부채살 모양의 조각에 각 자전거길의 지도가 그려져 있

 

다. 첫번째 지도에는 현재 조성 중이라는 제주도 자전거길을 빼고 나머지 자전거길이 모두 나와있다. 이제부터

 

시작할 아라자전거길은 21km.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낙동강자전거길은 324km. 스탬프 아니

 

었으면 꿈도 못 꿨을 일이다.

 

 

 

 

 

 

 

전체 자전거길 옆으로 위무 당당하게 늘어선 여기저기 자전거 길들. 하나씩 천천히 살피다가, 역시 괜한 짓을

 

시작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출발점에 세워둔 내 자전거를 돌아보니 이렇게 왜소하고 처량해 보일 데가. 나중에 뭐가 되든 일

 

단 자전거로 집에라도 가 보자 하는 심정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