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나는 총 아홉 점의 그림을 그렸다. 좋아서 하는 짓이라지만 앞의 석 점에서 새로 도전하는 기법에 신경을 쓰느라 진이 좀 빠지기도 했고 계속 앉아있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해서, 쉽게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 그리며 기분전환을 하기로 했다.
일빠따는 지난 번에 슥슥 그려서 큰 성공 거두었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고양이. 밑그림 연습도 별로 안 하고 그렸던 그 그림이 주변으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던 탓에 건방 떨면서 또 한 번 그렸다가 비율부터 크게 망했다. 게다가 방금 전에 배웠던, '수성 붓펜에 바니쉬를 칠하면 번진다'는 사실을 잊고 또 한 번 슥 칠한 덕에 붓펜으로 그린 고양이 수염이 번져버렸다. 고양이는 수염이 생명인데. 미안미안.
두번째는 기타 그림. 이 그림에서는 어두운 바탕색을 캔버스 전면에 칠해놓고 그 위에 다시 색을 칠할 때 얼만큼 비치는지를 실험해봤다. 밝은 색의 경우에는 붓에 전혀 물을 묻히지 않고 물감째로 칠하더라도 몇 차례 덧칠하지 않는 이상 바탕색이 드러났다. 그 효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려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그리고 나서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현이 네 개 뿐이라 처음부터 우쿨렐레를 그리려 했던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로 했다.
이것은 정말로 재미 삼아 그린 그림. 하지만 만족도는 이날 그린 아홉 점 중에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높았다. 일본의 공포 만화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활발히 레퍼런스로 활용되는 그림을 다수 그린 일본 만화가 우메즈 카즈오楳圖一雄의 작품 중에서.
우메즈 카즈오 특유의, 끔찍하면서도 어딘가 코믹한 구석이 있는 그림을 직접 따라그려본 것도 즐거웠지만, 처음으로 정방형, 그러니까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것도 무척 즐거웠다. 미술책에서, 직사각형 캔버스에는 풍경을, 정사각형 캔버스에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 잘 어울린다는 설명을 읽었을 때에는 왜 그런지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직접 그려보니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정방형 1호라 자그마해서 금세 그릴 수 있었고 완성 뒤에 귀여운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려본 캔버스는 직사각형의 5호, 6호로 짧은 변도 내 손으로 한뼘 반 정도의 길이였는데 정방형 1호는 한 변이 3/4 뼘 정도였다.
그림의 제목은 <갸악>으로 붙였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머리칼 부분에 '갸악'을 써넣을 걸 그랬나.
슥슥 4연작의 마지막은 동양화 기법을 활용한 나팔꽃. 대범하게 면 몇 개 슥슥 칠해놓고 둥글게 원을 둘러 꽃모양을 만드는 것이 신기해 언젠가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였다. 농담의 차는 분명히 드러났지만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깔끔해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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