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등학생들의 논술 시험이 있다고 해서 저녁 다섯 시 반까지 연구실 출입이 통제되었다. 느
지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석양을 업고서는 올라오는 길에 아름이를 만났다. 스무 살들은 정말 부쩍
부쩍 예뻐진다. 십 년째 실감하고 있는, 연세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진리로 남을 것만 같다.
교정은 이미 조용했다. 시험이 다섯 시 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내의 정리가 모두 끝나는 것이
다섯 시 반이었던 모양이다. 연구실에 도착하여 선풍기를 옆으로 치워두고 다시 히터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하고 귀찮아서 미뤄 두었던 일이다. 올 해는 겨울이 일찍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참외와 사과를 까 먹었다. 여름 방학부터 쭉 저녁에 일어나 아침에 자는 생활을 하다보
니 그 시간에 여는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 쌀이 들어간 변변한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먹는 것이라
고는 김밥이나 라면 따위 뿐이어서, 딱히 건강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속이나 버리
지 말아야지 싶어 철 늦은 참외나 토마토, 그리고 제철의 사과 등을 주로 사 먹는다. 확실한 것은, 아
무리 과일이라도 배고프다고 사과를 여섯 개쯤 처먹으면 살은 여전히 찐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
게 스스로 증명해 낸 사실이다.
지도 교수님의 귀국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석사논문의 준비라고는 한숨 나올 지경이지만, 다음 주
가 서당의 중간고사라 교재인 중국 경전을 꺼내어 읽는다. 1학년인 올 해 나는 <논어>와 <소학>, 그
리고 역사서인 <통감절요>를 배우고 있다. 시험범위가 초한지와 겹치는 <통감절요>나 성리학이 어
떻게 성 차별을 제도화, 내면화하였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소학>은 딱히 공부한
다는 생각 없이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따로이 적어 놓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읽지만, <논어>와 <대
학>등은 입술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열없는 얼굴로 한장한장 퍼덕퍼덕 넘길 뿐이다. 이기심이나 명
예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지막지한 성욕까지도 '몸'이라는 표제어 하에 제동 없이 긍정되는 시대에
사욕私欲을 제거하라고 아무리 말한들 마음에 와 닿을 리가 있나? 장기하의 말마따나,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 중의 한 분인 현경 형은 공자와 주자의 무덤만 봐도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벗어나와야 마침내 유학을 비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고 말했었다. 역시 아직 깜냥이 못 되어 그저 공부에 치여 불퉁거리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웹 서핑을 하다가 인도 여행을 하며 곳곳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한 블로거의 일기를 읽었다. 인도와
그림 모두 가슴을 울리는 화두들이라 한참 시간을 두고 쳐다봤다. 아직까지 남의 그림이나 이미 찍혀
있는 사진을 따라 그릴 뿐인 애송이이지만 그래도 몇 년간 혼자 끄적거리며 느끼는 것이 있다면 연습
하지 않은 선은 절대로 그려낼 수 없다는 것과, 좋은 그림은 좋은 눈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가 지나면 시월도 반이 넘어간다. 가을이 손님처럼 다녀가는구나.
지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석양을 업고서는 올라오는 길에 아름이를 만났다. 스무 살들은 정말 부쩍
부쩍 예뻐진다. 십 년째 실감하고 있는, 연세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진리로 남을 것만 같다.
교정은 이미 조용했다. 시험이 다섯 시 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내의 정리가 모두 끝나는 것이
다섯 시 반이었던 모양이다. 연구실에 도착하여 선풍기를 옆으로 치워두고 다시 히터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하고 귀찮아서 미뤄 두었던 일이다. 올 해는 겨울이 일찍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참외와 사과를 까 먹었다. 여름 방학부터 쭉 저녁에 일어나 아침에 자는 생활을 하다보
니 그 시간에 여는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 쌀이 들어간 변변한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먹는 것이라
고는 김밥이나 라면 따위 뿐이어서, 딱히 건강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속이나 버리
지 말아야지 싶어 철 늦은 참외나 토마토, 그리고 제철의 사과 등을 주로 사 먹는다. 확실한 것은, 아
무리 과일이라도 배고프다고 사과를 여섯 개쯤 처먹으면 살은 여전히 찐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
게 스스로 증명해 낸 사실이다.
지도 교수님의 귀국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석사논문의 준비라고는 한숨 나올 지경이지만, 다음 주
가 서당의 중간고사라 교재인 중국 경전을 꺼내어 읽는다. 1학년인 올 해 나는 <논어>와 <소학>, 그
리고 역사서인 <통감절요>를 배우고 있다. 시험범위가 초한지와 겹치는 <통감절요>나 성리학이 어
떻게 성 차별을 제도화, 내면화하였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소학>은 딱히 공부한
다는 생각 없이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따로이 적어 놓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읽지만, <논어>와 <대
학>등은 입술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열없는 얼굴로 한장한장 퍼덕퍼덕 넘길 뿐이다. 이기심이나 명
예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지막지한 성욕까지도 '몸'이라는 표제어 하에 제동 없이 긍정되는 시대에
사욕私欲을 제거하라고 아무리 말한들 마음에 와 닿을 리가 있나? 장기하의 말마따나,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 중의 한 분인 현경 형은 공자와 주자의 무덤만 봐도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벗어나와야 마침내 유학을 비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고 말했었다. 역시 아직 깜냥이 못 되어 그저 공부에 치여 불퉁거리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웹 서핑을 하다가 인도 여행을 하며 곳곳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한 블로거의 일기를 읽었다. 인도와
그림 모두 가슴을 울리는 화두들이라 한참 시간을 두고 쳐다봤다. 아직까지 남의 그림이나 이미 찍혀
있는 사진을 따라 그릴 뿐인 애송이이지만 그래도 몇 년간 혼자 끄적거리며 느끼는 것이 있다면 연습
하지 않은 선은 절대로 그려낼 수 없다는 것과, 좋은 그림은 좋은 눈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가 지나면 시월도 반이 넘어간다. 가을이 손님처럼 다녀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