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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9

10월 10일 토요일

오늘은 고등학생들의 논술 시험이 있다고 해서 저녁 다섯 시 반까지 연구실 출입이 통제되었다. 느

지막히 일어나 밥을 먹고 석양을 업고서는 올라오는 길에 아름이를 만났다. 스무 살들은 정말 부쩍

부쩍 예뻐진다. 십 년째 실감하고 있는, 연세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진리로 남을 것만 같다.


교정은 이미 조용했다. 시험이 다섯 시 반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내의 정리가 모두 끝나는 것이

다섯 시 반이었던 모양이다. 연구실에 도착하여 선풍기를 옆으로 치워두고 다시 히터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생각만 하고 귀찮아서 미뤄 두었던 일이다. 올 해는 겨울이 일찍 찾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가 참외와 사과를 까 먹었다. 여름 방학부터 쭉 저녁에 일어나 아침에 자는 생활을 하다보

니 그 시간에 여는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 쌀이 들어간 변변한 식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먹는 것이라

고는 김밥이나 라면 따위 뿐이어서, 딱히 건강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속이나 버리

지 말아야지 싶어 철 늦은 참외나 토마토, 그리고 제철의 사과 등을 주로 사 먹는다. 확실한 것은, 아

무리 과일이라도 배고프다고 사과를 여섯 개쯤 처먹으면 살은 여전히 찐다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

게 스스로 증명해 낸 사실이다.


지도 교수님의 귀국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고 석사논문의 준비라고는 한숨 나올 지경이지만, 다음 주

가 서당의 중간고사라 교재인 중국 경전을 꺼내어 읽는다. 1학년인 올 해 나는 <논어>와 <소학>, 그

리고 역사서인 <통감절요>를 배우고 있다. 시험범위가 초한지와 겹치는 <통감절요>나 성리학이 어

떻게 성 차별을 제도화, 내면화하였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는 <소학>은 딱히 공부한

다는 생각 없이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따로이 적어 놓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읽지만, <논어>와 <대

학>등은 입술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열없는 얼굴로 한장한장 퍼덕퍼덕 넘길 뿐이다. 이기심이나 명

예욕은 말할 것도 없고 무지막지한 성욕까지도 '몸'이라는 표제어 하에 제동 없이 긍정되는 시대에

사욕私欲을 제거하라고 아무리 말한들 마음에 와 닿을 리가 있나? 장기하의 말마따나,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 중의 한 분인 현경 형은 공자와 주자의 무덤만 봐도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다시 벗어나와야 마침내 유학을 비판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고 말했었다. 역시 아직 깜냥이 못 되어 그저 공부에 치여 불퉁거리는 소리를 하는 것일까.


웹 서핑을 하다가 인도 여행을 하며 곳곳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한 블로거의 일기를 읽었다. 인도와

그림 모두 가슴을 울리는 화두들이라 한참 시간을 두고 쳐다봤다. 아직까지 남의 그림이나 이미 찍혀

있는 사진을 따라 그릴 뿐인 애송이이지만 그래도 몇 년간 혼자 끄적거리며 느끼는 것이 있다면 연습

하지 않은 선은 절대로 그려낼 수 없다는 것과, 좋은 그림은 좋은 눈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음 주가 지나면 시월도 반이 넘어간다. 가을이 손님처럼 다녀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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