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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유홍준, <유홍준의 국보순례>






저자의 호칭을 명지대 교수로 해야 하나 전 문화재청장으로 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사람들은 어떤 쪽을 더 선호

하는지 검색을 해 보니, 많은 서평에서 그저 '유쌤'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쌤'이라는 줄임말이 선

생님이라는 본래의 호칭에서 존경심 등의 정신적 의미를 모두 걷어내고 단지 언어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한 결과

라고 여겨져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의 소탈한 모습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보여준 젊은이같은 모습을 떠올려 보면 본인도 꺼려하시지 않을 호칭일 듯. 아

무튼, 유쌤의 2011년 7월 신작이다. 


제목이 담담해서 좋다. '유홍준'이라는 이름을 굳이 넣은 것은 저자의 뜻이라기보다는 출판사의 뜻이 아니었을

까 생각하면서도, '유홍준의'를 빼고 그저 '국보순례'였다면 훨씬 딱딱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기는 하다. 표지에

함께 기재된 영어 제목도 'Treasures of Korean art'으로 간결하고 알기 쉬워 보기 좋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래 조선일보에 매 주 기고하던 글 중 앞서의 백 개를 일단 묶어 책으로 낸 것이라 한다. 기고

지가 하필 조선일보냐는 항의가 많았던 듯 '고정칼럼을 제공한다는데 어느 신문인들 마다하겠는가'라는 변명이

함께 실려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글이 한 지면에라도 더 소개된다면 좋은 거지 뭐, 하는 생각이 들다가

도 '정치얘기는 후졌는데 문화랑 경제 섹션이 빵빵해서 조선을 못 끊어'라는 흔한 넋두리들에 논거가 되어주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저자 본인도 고민이 되었다는 흔적을 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책에는 모두 백 개의 문화재가 '그림, 글씨', '공예, 도자', '조각, 건축', '해외 한국 문화재'의 네 개의 카테고리

로 나뉘어 소개되어 있다. 책을 집어들었을 때에는 이 기회에 국보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아두어야겠다는 의지

가 있었는데, 읽어보니 제목과 달리 실제로 기재된 문화재들이 모두 국보인 것은 아니었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국보급'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재들을 선별한 것인데, 속았다는 불쾌감은 들지 않고 오히려 여러 문화재들을 접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더했다.


구성은 가독성을 고려한 듯 왼쪽에는 해설, 오른쪽에는 도판으로 통일되었고, 글이 조금 길어지거나 소개해야

할 도판이 많은 몇몇 예외의 경우에도 최종 분량은 두 장으로 맞추어져 있다. 미술 평론서를 읽다 보면 해설을
 
읽다가 앞쪽에 나왔던 그림을 다시 보기 위해 책장을 몇 번이고 들척거려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 잦

은데,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어 읽기가 아주 편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저자가 서문에서도 자부하고 있듯 도판이 큼직큼직하여 보기가 시원하다는 것이었다.

큰 사진을 통해 문화재의 구석구석을 관찰할 수 있으니 저자의 '감상'에 공명하기가 무척 용이했다. 큰 건축물

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작은 조각상이나 공예품 가운데에는 실물의 크기에 육박하는 사진들도 있

어 사진만을 보려고도 몇 번이나 다시 책을 펼쳐보곤 했다.


저자의 유려한 글을 읽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편마다 단순히 주관적인 감상만이 아니라 문화재에 이름을
 
붙이는 법이라든지, 문화재에 얽힌 역사적 사실이라든지 하는 전문적 지식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음에도 쉽고
 
간결한 말로 소개되어 있어 한 번도 긴장하거나 끊기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말

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쉬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는 것도 사기꾼이라면 능히 해 낼 수 있는 일이

지만,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하는 것은 고수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책의 말미에는 소개된 문화재의 이름과 재료, 창작 시기, 크기, 문화재 지정번호, 소장처 등의 정보를 기재한 표

와 그 표를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것도 함께 실려 있어 자료로서의 가치도 겸하고 있다. 문화재 공부를 더 심층적

으로 하고자 하거나 실물을 직접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기 쉽고 좋은 글에 대해 독후감을 쓰기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저자가 뜻하고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누락된

점 하나 없이 책에 그대로 잘 설명되어 있으니 이런저런 군말을 붙이는 것이 일독을 강권함만 못하다. 두 권쯤

사서 한 권은 갖고 한 권은 아끼는 이에게 주어도 좋겠다. 책을 읽다가 메모해 둔 단편적 지식 몇 개, 그리고 호

연의 <도자기>에서 보고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 무척이나 반가웠던 '백자철화끈무늬병', 이른

바 '넥타이 술병'의 사진을 덧붙이며 끝낸다.



- 그동안 문화재 지정에는 절차상의 모순이 있었다. 국보가 되려면 먼저 보물이 되어야 하고, 보물이 되려면 소

장자가 지방 자치단체에 신청해야 한다. 신청하지 않은 유물은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아직 신청

조차 하지 않은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일괄 공모' 방식이 도입되었다. 일정 분야의 유물들

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심의하는 것이다. (p72)


- 문화재에 이름을 붙이는 데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재료 + 내용 + 형태' 순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청자 + 사

자모양 + 향로", "금동 + 보살 + 입상' 식이다. (p144)


- 사찰에서 등은 어둠을 밝히는 기능뿐만 아니라 부처님 말씀을 의미하는 상징성이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 스승

이 제자에게 내려 주는 가르침을 전등(傳燈)이라 하고 가람배치에서는 석등을 절 마당의 중심에 놓는다. 같은

등이라도 중국과 일본 사찰에서는 청동이나 나무로 세웠는데 우리나라는 양질의화강암 덕분에 석등으로 발전

했다... ...석등은 아무리 넓어도 하나만 세우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는 <시등공덕경施燈功德經>에서 부자의

화려한 등불보다 가난하나 진실된 자의 등불 하나가 더 부처의 마음에 다가간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요

즘 절에서는 화려한 석등을 쌍으로 설치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p158)



 



백자철화끈무늬병. 조선 16세기. 높이 31.4cm. 보물 제 1060호. 서재식 기증.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박201106-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