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일기를 쓰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요사이 일기가 뜸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왕좌의 게임 때문이기도 하다. 일기를 쓸 때의 여러가지 원칙이 있지만, 십 년이 넘게 블
로그를 운영해 오며 지키고 있는 몇 개의 대원칙 가운데 하나는 화자의 스탠스를 분명히 할 것, 이다. 비평가가
됐든 풍류객이 됐든 사기꾼이 됐든, 뭐든지 간에 하나로 정해두어서 글이 하나의 수원(水源)에서 흘러나오도록
할 것. 그날 일기를 쓰고 있는 화자의 왕좌에는 단 한 명만이 앉아 있도록 할 것.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교사와 제자 사이로 만났던 독자들의 유입이 갑작스레 늘었다. 이 또한 지나갈 일이지마
는 지나가기 전까지는 어쨌든 현재형이다. 제자들의 모호한 찬사에 떠밀려, 자연스레 왕좌의 자리에는 며칠째
참스승 최대호가 앉아 있는데, 사실 이 친구는 점잖은 척과 아는 체를 일삼기 때문에 내 안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는 별로 인기가 없다. 특히 바로 전 일기에서, 방학을 맞은 제자들에게 축전을 보내며 맹자의 내용을 인용하였던
소행은 격렬한 내전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었다. 일상적 사회생활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지만 이 일기장에서 손꼽
히는 인기 캐릭터이자 내면의 갈등 시 종종 최고 의사 결정권자로 활약하는 난봉꾼 최대호는, 미성년자가 보는
건전한 교육 블로그 될 바엔 차라리 아무 내용 쓰지 말고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만 올려서 자폭하자는 주장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사태를 원만히 화합시키고자, 마을의 장로 최대호는 하나의 이벤트를 기획하였다. 젊은이들, 내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뒷짐 지고서 꼴사납게 찬사만을 즐기지 말고, 이 큰 흐름 자체를 또 하나의 재미로 삼자. 6개월씩
개정되는 비정규직 계약에 의해 법적으로는 이미 소진된 사제 관계일랑 그만 붙들고, 필자와 독자라는 새로운
관계망을 쌓자. 이것이 대통합이요 이것이 창조 경제이다.
해서, 뚝딱뚝딱 말새끼 하나 그려넣고 기획한 '제 1회 강의 & 블로그 품평회(가칭)'. 이 이벤트의 내용은 특히 제
자였던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연을 공모하여 우수작을 선정하는 일종의 공모전이다. 응모할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공모전의 취지에 맞춤하는 정식 명칭
2) 교육 소비자로서 내 강의 중 좋았던 내용, 혹은 포인트
3) 십대 독자로서 이 블로그에서 좋았던 기사, 혹은 관점
4) 내가 겪은 귀신 이야기
넷 중에 하나 이상을 골라 다음의 메일 주소(will810826@hanmail.net)로 투고해 주면 된다. 기한은 이번 주 일요
일인 7월 21일 자정까지이며 시간이 지난 투고는 심사에 올리지 않는다. 우수작은 내용의 질에 따라 최대 5개까
지 선정할 예정이며 당선자에게는 노력에 값하는 부상이 주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더운 여름 교실에 앉아 짜증
만 내지 말고 남의 강의와 블로그 날카롭게 찢어보는 재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길 기대한다. We wan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