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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멋진 악몽

 

 

 

 

 

보고싶은 영화가 있는데, cgv의 상영관도 많지 않고 그나마도 대학로, 압구정처럼 먼 곳들이어서 다른 극장에서

 

는 안 하나 찾아 봤다. 마침 바로 옆의 이대 ecc 안에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곳에서 상영을 하고 있었다. 곧 내

 

려갈 영화라 부랴부랴 예매를 하여서 혼자 보러 갔다. 혼자 영화를 보러가는 것만 해도 오랜만이데, 혼자 이대를

 

걷는 것은 도대체 언제 이후의 일인지 기억도 안 났다. 나는 항상 교내의 위락시설인 ecc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

 

각해 왔는데, 막상 가 보니 뽀대 나고 편해서 부러운 마음이 일견 들기는 했다. 저-쪽 반대편은 계단처럼 되어 있

 

어서 앉을 수 있는데, 비오는 날 거기에 앉아 가운데의 푹 패인 곳으로 빗물이 흐르는 모습을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 끝쪽에 숨어 있었던 아트하우스 모모. 시험 기간이라 그런 것일까? 사람이 거의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기다릴 수 있었다.

 

 

 

 

 

 

 

 

보러 간 것은 이 영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일기에 독후감을 쓰다가 저녁 때를 놓친 탓에, 역시 ecc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샌드위치

 

를 사 먹었다. 두 계산대 중에 빈 곳이 있길래 물건을 내려 놓았더니 점원이 한 줄 서기 운동을 실천 중이라고 말

 

해 주었다. 돌아보니 정말로 다들 얌전하게 한 줄로 서서 계산대가 비면 한 명씩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다른 편의

 

점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널리 퍼졌으면 한다.

 

 

 

 

 

 

 

 

ecc에 처음 들어가 신기하답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티켓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매표소 누나에게 사정을

 

했더니, 원래는 안 되는 거지만 한 장 뿐이라 특별히 추가로 발급해 주는 것이고, 혹 내가 잃어버린 티켓을 주워

 

서 자기가 산 것처럼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잘 해결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나쁜 놈은 혼구멍을 내 주겠다고

 

말하자 누나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돌아볼 정도로 크게 웃었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가 상영관에 들어가기

 

위해 일어나면서 혹 근처에 떨어졌을까 싶어 테이블 틈새 등을 기웃거려 보니 원래의 표가 소파 밑에 얌전하게

 

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스크린은 크지 않았지만 좌석 간의 높이가 아주 많이 차이가 나서, 큰 사람이 앞에 앉고 작은 사람이 뒤에 앉아

 

도 관람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을 것 같았다. 100석이 조금 못 되는 것 같은 총 좌석에 열 명 정도의 사람이 관람

 

을 했다. 그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 이 블로그에서 정말 마르고 닳도록 찬양해 온 미타니 코키 감독의 신작, <멋진 악몽>. 원제는 <멋진 가

 

위눌림> 정도 된다고 한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 그다지 많은 식견이 있지는 않은 내 눈에도 어처구니 없을 정

 

도의 저 캐스팅. 이미 일본에서 흥행가도를 달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망하거나 말았거나, 전국에서 단 한 관만

 

개봉하더라도 달려가서 봤을 것이다.

 

 

 

 

 

 

 

 

가장 많은 장면이 진행되는 법정 신. 장기인 '좁은 공간'으로 돌아온 미타니 코키 감독. 그는 본래 연극계 출신이

 

다.

 

 

 

 

 

 

 

 

주인공인 호쇼 에미(후카츠 에리 분)는 실력과 성과가 별로인 변호사다. 더 이상 실패를 했다가는 직장을 그만둬

 

야 할지도 모르게 된 그 때에, 그녀에게 마지막 사건이 주어진다. 한 여자의 살인사건.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되

 

는 남편은 여자가 죽던 밤 어느 산 중턱의 옛날식 여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체크인과 체크아웃만이 확인되

 

었을 뿐, 그 사이에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는 아무것도 없다. 좌절한 호쇼 에미에게

 

남편은 기묘한 말을 한다. 여관에서 지낸 그 밤, 한 패전 무사의 유령에 의해 밤새도록 가위눌림을 당했다는 것

 

이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호쇼 에는 일단 증거 수집을 위해 여관으로 향한다.

 

 

 

 

 

 

 

 

여관에서 호쇼 에미는 실제로 패전 무사의 유령을 만난다. 그는 도요토미에게 쫓겨 도망가던 중 아군에 의해 간

 

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참수당한 사라시나 로쿠베(니시다 토시유키 분). 호쇼 에미는 유령을 보고 대경실

 

색하지만, 이내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재판의 증인으로 서달라는 부탁을 한다. 본인과 흡사

 

하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범인이 될 지경에 놓인 남편에게 강한 연민을 느낀 로쿠베는 법정에 출두하기로 결심

 

을 굳힌다. 이제 법정은 유령의 존재를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유령을 증인으로 택할 것인지 아닌지 등 전대미문

 

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두 주인공과 미타니 코키 감독. 영화는 감독의 장기인 일종의 '소동극'이다. 모두가 성취하고자 하는 하나의 목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의견과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갈등들이 중첩적으로 얽혀든다. 이

 

러한 구조는 '모두의 집'의 집짓기, '웃음의 대학'의 희곡 대본 완성, '라디오의 시간'의 라디오 드라마 녹음, '우

 

초우텐 호텔'의 12월 31일의 무사한 호텔운영 등에서 보듯 감독이 꾸준히 시도해 온 것이다. 얼핏 보면 단순

 

수 있는 이 틀에, 미타니 코키는 언어 유희나 부조리한 설정 등 특유의 유머감각을 가미해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

 

를 구축해 왔다. 아울러 단역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나 원칙을 갖고 있는 점, 그

 

고 주요한 스토리 라인과 다소간 멀어질지라도 시간을 할애하여 그러한 신념과 원칙에 카메라를 비추어주는

 

점, 마지막으로 가장 큰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인물들 간의 유대관계로부터 발원한다는 점 등에서 볼 수

 

있는 휴머니즘적 색채 또한 그의 영화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두 주인공은 사실 감독의 전작 '매직 아워'에서 호흡을 맞춘 바가 있다.

 

 

 

 

 

 

 

 

후카츠 에리는 젊은 애인과 눈이 맞아 돈을 들고 도망가려 하는 보스의 정부 역을 맡았고,

 

 

 

 

 

 

 

 

니시다 토시유키는 나이 든 보스 역할을 맡았다. 그는 미타니 코키의 다른 작품에도 출연한 이력이 있다.

 

 

 

 

 

 

 

 

12월 31일 밤 '우쵸우텐 호텔'로 모여든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더 우쵸우텐 호텔'에서, 툭하면 우울

 

증에 빠져 다른 사람들에게 목을 졸라 죽여달라고 간청하는 흘러간 엔카 가수 '도쿠가와 젠부'역할을 맡은 것이

 

다. 이건 미타니 코키의 영화를 보면서 얻는 특별한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마츠 다카코나 야쿠쇼 코지, 츠마부

 

키 사토시 등 특 A급 배우들을 제하면, 그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반복하여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

 

다. 아마도 의도된 것이겠지만, 전작의 비중있는 조연이 다음 번엔 단역으로 나온다든지, 얌전했던 캐릭터가 난

 

폭하고 막무가내의 캐릭터로 나온다든지 하기 때문에 비교해 가며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이를테면 전작 '매직 아워'에서 실질적인 히어로 역할이었던 사토 코이치는,

 

 

 

 

 

 

 

 

직업이 배우인 여주인공의 남편, - 그도 사실은 단역에 가까운데 -, 그 남편의 동료 배우로 슥 하고 지나간다. 하

 

하하 웃다가 그의 등장 장면에 짧게 흐르는 BGM의 멜로디가 어쩐지 귀에 익은 것 같아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DVD를 틀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매직 아워' 메인 테마의 어레인지 버전이었다. 음악감독도 같은 음악감독. 키

 

요코 오기노.

 

 

 

이들 못지 않게 매력적인 다른 배우들이 어떻게 변천하였는가는, 미타니 월드의 광팬으로서 '멋진 악몽' 영상을

 

구하게 되는대로 다른 영화들과 함께 총정리하여 한 번 올리겠다. 그러나 다음 번에 또 하더라도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단 한 명의 배우, 토다 케이코.

 

 

 

 

 

 

 

 

'멋진 악몽'에서는 패전 무사의 유령이 나오는 산장 여주인.

 

 

 

 

 

 

 

 

'매직 아워'에서는 출신과 정체와 진짜 머리 스타일이 모두 미스테리에 휩싸여 있는 호텔 주인,

 

 

 

 

 

 

 

 

'더 우쵸우텐 호텔'에서는 부지배인 야쿠쇼 코지를 성실하게 보좌하는 매니저 역할로 길지 않은 분량에서 절정

 

의 연기력을 뽐내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뭐니뭐니 해도

 

 

 

 

 

 

 

 

'라디오의 시간'의 센본 놋코. 모든 갈등의 거대한 근원인 팜므 파탈. 밉살스럽게 느끼다가 어느샌가 그녀의 매

 

력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마는. 엔딩 곡의 가사대로, 센본 놋코만 웃어준다면 나는야

 

만족이다. 그렇다면야 나는 꿈 속이다. 극화하여 연극 무대에 올릴 때에는 '박춘자'로 개명하였었다. 춘자 씨.

 

오, 나의 춘자 씨. 타국의 일개 팬인 내가 존경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이 역할로 일본 아카데미에서 여

 

우 조연상을 수상하신 바도 있을 정도로 귀신같은 연기력 자랑하시고, '날아라 호빵맨'에서 호빵맨 목소리를 맡

 

으실 정도로 성우로서도 성공한 삶 살고 계신다 하니. 죽기 전에 한 번 뵙고 이 사랑을 고백할 기회가 오길 간

 

절히 기원한다.

 

 

 

 

아무튼, 오늘은 <멋진 악몽> 일기. 구글 저팬에서 찾아낸 이미지 하나로 잘 마무리한다. 유령은 아무에게나 보이

 

지는 않는데, 마침 그 재판의 법정 화가는 '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몇 장의 그림을 그려 사람들과 언론에

 

전했다. 정작 패전 무사는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툴툴거리는 그 그림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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