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社稷)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왕조의 수호신을 가리키며, 사는 하(夏)왕조의, 직은 주(周)
왕조의 신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사는 토지의 신이 아니라 실은 물의 신이고, 직은 곡물의 신이지
만, 주 왕조가 함께 제사를 지내서 땅을 결실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 왕실이 사직을 제1의 신으
로 하는 한, 주 왕실에 속해 있는 나라들의 공실도 사직을 받들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존립은
사직에 걸려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사직이라고 하면 국가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 나라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군주인가, 사직인가. 이 질문에 있어 제나라의 명재상 안평중영,
안자(晏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주라는 것은 백성 위에 서 있지만, 백성을 깔보면 안 되고, 사직을 받드는 사람이다. 신하라는 것
은 녹봉을 위해 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직을 키우는 사람이다."
-역사소설, 이라 하면 그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실(史實)로 남아 있는 성긴 얼개의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도몬 후유지와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등이 이 방면에 능한 작가로 손꼽히는데, 둘의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주로 일본 역사를 다루고 있는 도몬 후유지는 공무원 출신의 작가인 탓인지 글에 낭비
가 없다. 정확히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짧은 길이가 때로는 가치판단까지도 지니
고 있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따금 마음이 어지러우면 그의 책을
꺼내어 읽는다. 회사원들에게 자주 읽히는 '인간경영' 시리즈도 볼 만 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우에스기 요잔의 생애를 다룬 '불씨'라는 작품이다. 다음 내용을 쉬 예측해 가며 읽을 수 있는 것
이 흡사 동화책을 읽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중국 춘추시대를 주로 서사하고 있는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은 그야말로 용과 같다.
[논어]에 보면, 맹자를 만나고 돌아온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낚을 수 있으되 용이란 물건은 도무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용을 보았다.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이 과연 그렇다. 도몬 후유지의 글이 갈 길을 잘 닦아 놓고 밟을 곳까지
상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면 마사미쓰의 글은 흡사 절벽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와도 같다. 한발짝 한
발짝 훌쩍훌쩍 뛰어 넘어 어느새 저만치서 새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데에는 도무지 당할 노릇이
없다. 그 사이를 채워 나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면 가히 능동적 독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필체에 있어서도, (비록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세권짜리 시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디자인 센스 만점의 현대시집이 아닌, 한지 냄새가 푸욱 나는 옛 종이의 더미, 모음집.
중이, 맹상군등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인데, 나는 안자(晏子)를 권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개인으로서의 그의 취향을 담뿍 담고 있기로 유명하다. 표와 기등의, 그 성격
에 따른 '챕터'의 '장르'를 개척했다고도 일컬어지는 사기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챕터는 '열전'이다.
역사의 한 사건을 독립시켜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는 하나의 문학 형태라고 해도 좋을만
한 것인데- 이 열전의 두번째가 '관안열전'이다.
'관안'의 '관'은 제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의 으뜸으로 세워 놓은 명재상 관중(잘 알려진 숙어
관포지교의 관도 이 사람이다.)을 말하는 것이고, 그 뒤의 '안'이 바로 안평중영, 안자를 가리키고 있
는 것이다. 수많은 인재가 그 재주를 뽐내었던 춘추전국시대에서, 사마천이라는 천재가 첫번째 두
번째 손으로 꼽은 인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치가 능히 짐작된다 할 수 있겠다.
안자(晏子)라 할 때에, 이것이 반드시 안영만을 지칭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익히 알듯이, 고대 중국에
서 자(子)는 공경을 받을 만한 인물에게 붙이는 일종의 칭호였다. 따라서 안씨 집안에 따로이 유명한
인물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안영만을 안자로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이 소설도 거기에 대한 것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행히도 안씨 집안에서 따로이 안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안영의
아버지, 안약(晏弱)이다. 이 소설은 안약과 안영, 이대 부자의 생을 그리고 있다.
법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안영은 중국민이 오래도록 추앙할 만한 인물형은 아니다. 그
럼에도 중국에 있는 안자의 사당에는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향취를 가진 사람의 행보를, 유려한(그렇다. 유려하다는 말을 세상 단 한군데에만
써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소설 안자에 바치겠다.) 글로 따라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던 것도 육칠년이 다 되어간다. 책을 고쳐 읽는 것이 내 오랜 습성이라지만
이 책만큼 손때를 묻혀 가며 놓지 않는 책도 많지 않다. 느지막히 일어나 신문을 읽다가 사직, 이라
는 말이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 책을 들추어 보았다. 굳이 일부러 읽을 것 까지는
없고, 가을이라 책이나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싶은데 딱히 읽을 책이 없는 분들에게 권한다.
출판사가 한경인 것은 신경쓰지 말자. 내용만 재미있으면 됐지.
왕조의 신이다. 자세하게 말하면, 사는 토지의 신이 아니라 실은 물의 신이고, 직은 곡물의 신이지
만, 주 왕조가 함께 제사를 지내서 땅을 결실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 왕실이 사직을 제1의 신으
로 하는 한, 주 왕실에 속해 있는 나라들의 공실도 사직을 받들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존립은
사직에 걸려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부터 사직이라고 하면 국가를 가리키게 되었다.
한 나라에 있어 가장 주요한 것은 군주인가, 사직인가. 이 질문에 있어 제나라의 명재상 안평중영,
안자(晏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주라는 것은 백성 위에 서 있지만, 백성을 깔보면 안 되고, 사직을 받드는 사람이다. 신하라는 것
은 녹봉을 위해 군주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직을 키우는 사람이다."
-역사소설, 이라 하면 그 비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실(史實)로 남아 있는 성긴 얼개의 사이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도몬 후유지와 미야기타니
마사미쓰 등이 이 방면에 능한 작가로 손꼽히는데, 둘의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주로 일본 역사를 다루고 있는 도몬 후유지는 공무원 출신의 작가인 탓인지 글에 낭비
가 없다. 정확히 필요한 정보만을 전달하고 있는데, 그 짧은 길이가 때로는 가치판단까지도 지니
고 있어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이따금 마음이 어지러우면 그의 책을
꺼내어 읽는다. 회사원들에게 자주 읽히는 '인간경영' 시리즈도 볼 만 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우에스기 요잔의 생애를 다룬 '불씨'라는 작품이다. 다음 내용을 쉬 예측해 가며 읽을 수 있는 것
이 흡사 동화책을 읽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에 비해 중국 춘추시대를 주로 서사하고 있는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은 그야말로 용과 같다.
[논어]에 보면, 맹자를 만나고 돌아온 공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것은 화살로
잡을 수 있고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그물로 낚을 수 있으되 용이란 물건은 도무지 어디로 갈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용을 보았다.
미야기타니 마사미쓰의 글이 과연 그렇다. 도몬 후유지의 글이 갈 길을 잘 닦아 놓고 밟을 곳까지
상세히 가르쳐 주고 있다면 마사미쓰의 글은 흡사 절벽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와도 같다. 한발짝 한
발짝 훌쩍훌쩍 뛰어 넘어 어느새 저만치서 새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데에는 도무지 당할 노릇이
없다. 그 사이를 채워 나가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면 가히 능동적 독자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필체에 있어서도, (비록 번역된 것이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세권짜리 시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디자인 센스 만점의 현대시집이 아닌, 한지 냄새가 푸욱 나는 옛 종이의 더미, 모음집.
중이, 맹상군등이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인데, 나는 안자(晏子)를 권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개인으로서의 그의 취향을 담뿍 담고 있기로 유명하다. 표와 기등의, 그 성격
에 따른 '챕터'의 '장르'를 개척했다고도 일컬어지는 사기에서 특이하게 보이는 챕터는 '열전'이다.
역사의 한 사건을 독립시켜 인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는 하나의 문학 형태라고 해도 좋을만
한 것인데- 이 열전의 두번째가 '관안열전'이다.
'관안'의 '관'은 제환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의 으뜸으로 세워 놓은 명재상 관중(잘 알려진 숙어
관포지교의 관도 이 사람이다.)을 말하는 것이고, 그 뒤의 '안'이 바로 안평중영, 안자를 가리키고 있
는 것이다. 수많은 인재가 그 재주를 뽐내었던 춘추전국시대에서, 사마천이라는 천재가 첫번째 두
번째 손으로 꼽은 인물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치가 능히 짐작된다 할 수 있겠다.
안자(晏子)라 할 때에, 이것이 반드시 안영만을 지칭한다고는 할 수 없다. 익히 알듯이, 고대 중국에
서 자(子)는 공경을 받을 만한 인물에게 붙이는 일종의 칭호였다. 따라서 안씨 집안에 따로이 유명한
인물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안영만을 안자로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이 소설도 거기에 대한 것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행히도 안씨 집안에서 따로이 안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은 안영의
아버지, 안약(晏弱)이다. 이 소설은 안약과 안영, 이대 부자의 생을 그리고 있다.
법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안영은 중국민이 오래도록 추앙할 만한 인물형은 아니다. 그
럼에도 중국에 있는 안자의 사당에는 각지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독특한 향취를 가진 사람의 행보를, 유려한(그렇다. 유려하다는 말을 세상 단 한군데에만
써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소설 안자에 바치겠다.) 글로 따라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던 것도 육칠년이 다 되어간다. 책을 고쳐 읽는 것이 내 오랜 습성이라지만
이 책만큼 손때를 묻혀 가며 놓지 않는 책도 많지 않다. 느지막히 일어나 신문을 읽다가 사직, 이라
는 말이 남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 책을 들추어 보았다. 굳이 일부러 읽을 것 까지는
없고, 가을이라 책이나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싶은데 딱히 읽을 책이 없는 분들에게 권한다.
출판사가 한경인 것은 신경쓰지 말자. 내용만 재미있으면 됐지.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비노 (2) | 2003.10.04 |
---|---|
존재의 이유 (0) | 2003.10.03 |
9.29-9.30 (0) | 2003.09.29 |
sound mind in sound body (1) | 2003.09.28 |
성민아 생일 축하해 (2) | 2003.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