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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2

美 LA시, 포르노 배우 콘돔 사용 의무화 조례 제정





오늘자 인터넷 한겨레에서 흥미로운 기사(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515278.html)를 읽었

다. 미국 LA 시에서 포르노 배우들이 촬영시 의무적으로 콘돔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례가 제정되었고 LA시장

의 사인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LA 시는 미국의 포르노 중 90% 이상이 생산되는 곳으로, 이 곳에

서의 위와 같은 조치는 단지 상징적인 의미 뿐 아니라 실효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사에 의하면 상기 조례를 제정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배우들의 에이즈 예방이고, 두 번째는

포르노 시청자들을 계도하기 위함이다.




에이즈에 관해서 기사는 이미 수치로 증명을 하고 있었다. 포르노 배우들을 돕는 핑크크로스재단은 2000년 이

후 배우 18명이 에이즈로 숨졌다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이 산업에서 100명이 에이즈에 목

숨을 내줬다는 추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미 대형 제작사를 위주로 한 달에 한 번씩 성병 검사

를 시행하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조치는 과잉대응이거나 지나친 간섭이라고 반응했다.


배우들의 건강권을 걱정하는 목소리와 충분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 양 쪽 다 일리가 있다. 이 산업이 지

속되어야 할 성격의 것인가 하는 윤리적 질문을 일단 배제하고 생각해 보면, 여성 출연자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임신의 가능성을 줄여주어 안정적으로 직업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남자 배우들의 입장에서도 성행위가 성욕

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업무의 일환일 것이므로 환영할 것 까지는 없지만 반대할 이유도 없는 조치라

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보다 더 논쟁적인 것은 '시청자 계도'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에는 최소한 세 개의 쟁점이 존재한다.


첫째, 에이즈 예방 단체들은 위의 조치로 에이즈가 감소할 것이라며 환영했다고 하지만, 포르노에서 콘돔을 사

용하고 있다고 하여 그것이 시청자들의 성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증명될 수 없다.

물론 충분한 성교육을 받지 못한 남성들에게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포르노가 일종의 '교재' 역할을 할 수 있다

는 것은 합리적인 추정이나, 추정은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에이즈 예방 단체들의 주장이 타당성을 획득하

려면 영상물이 시청자의 가치관과 행위에 얼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연구 결과가 뒷

받침되어야 한다.




둘째,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기사에서 LA 시의 포르노 업계 관련자들은 이

러한 조치가 단지 포르노 산업이 LA 시를 떠나 규제가 없는 곳으로 옮겨가게 할 뿐으로, 장기적으로 시 재정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후발 주자이며 시장 지배력이 약했던 JVC의 VHS가 소니의 베타에 맞서 시장표준규격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 '신기하지만 쓸모는 없다'는 지적까지 받았던 인터넷이 초기에 부진했으나 폭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시점 등에 포르노가 깊이 관여되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곧, '포르노는 돈이다'라는 명제는 '매체'가
 
바뀌는 혁명적 순간들에도 이미 몇 번씩이나 그 건재함을 증명해 온 '팩트'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은 LA 시와 같

이 집적의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부지를 찾고 이주하는 데에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에 단기적 위축이 있을 수 있

지만, 포르노산업은 그 수고를 아끼지 않고 대체 지역을 찾아낼 것이다. '포르노는 돈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LA에서 만들어지든 뉴욕에서 만들어지든 그 포르노의

'원산지'는 중요하지 않다. (역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포르노를 선호하는 '취향'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안 맞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따라서

포르노는 어디에선가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포르노에 돈을 지불할 것이

다. 그런데 굳이 LA 시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포르노 산업을 몰아낼 필요가 있느냐. LA 포르노 산업 관계

자들의 지적은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논리적이다.


단, 이 경우 미 포르노 산업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에서 이와 같은 조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후의

흐름에 대해서도 상당한 경고성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와 주 별로 천차만별의 법안을 갖고 있는 미

국이라지만, 이러한 경향이 미 대선과 맞물려 해당 조례의 전국적 법제화 등의 캠페인으로까지 격상될 가능성

도 없지 않다. 즉, 실질적인 '실효성'을 갖게 되는 효과적 착수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번째의 쟁점. 개인적으로는 그런 포르노를 보거나 안 보거나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콘돔의 사용을 기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포르노 팔아 번 돈이 LA 시로 들어가든 뉴욕 시로 들어가든 우리와는 별 상관도 없는

일이므로 위의 쟁점들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사에서 한 여성 포르노 배우의
 
“콘돔을 착용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 “그런 것을 정부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는 눈길이 간다.


위에서 에이즈 예방 단체들의 주장을 공박하였고, LA 시 포르노 산업 관련자들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평하였

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논리 차원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포르노가 존경받을

만한 예술 장르라거나 그 소비 의식이 건강하고 공정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위의 여배우의 발

언은 표현상 논리적인 오류가 있다. '정부'가 결정한 것은 포르노라는 영상물, 즉 심의의 대상에서의 콘돔의 사

용에 관한 것이지 해당 여배우 개인의 성생활에서의 콘돔 사용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더라도, - 아마도 여배우가 본래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으로 추측되는 -  콘

돔의 사용이라는 사안이 정부가 나서서 영상물을 규제하여 시청자들을 '계도'까지 해야 하는 성격의 것일까, 라

는 의문은 강하게 든다. 현대의 인간사회에서 법이나 제도로 굳이 규제하지 않는 것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그

것이 윤리적인가 아닌가, 라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미치는가 미치지 않는가, 일 것이다. 혹여나 그것

이 자기 파괴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법은 그 공과를 논하지 않는

다. 콘돔을 사용할지 말지에 관해서는 강간이 아닌 이상 성행위 당사자들 간에 충분히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혹여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일어날 경우 그것은 주식투자의 피해를 감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인으

로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도의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해당 사안에 대해 어느 정도 사안을 매듭지은 지금에도 사실 나는 아직도 조금 혼란스럽다. 성격이 비슷

한 사안인 '이혼숙려
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이혼숙려제란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제도로, 부부가
가정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할 경우 양육할 자

녀가 있을 때는 3개월, 없으면 1개월간 생각할 시간을 준
뒤 이혼 의사를 다시 확인받도록 한 제도이다. 부부싸

움을 한 뒤나 술을 마신 직후 등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혼 신청을 했다가 덜컥 통과가 되어버

리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되므로, 이른바 '홧김이혼'을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 제정된 제도였다.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제도의 시행 이후 협의이혼 신청을 다시 취소하는 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나는 사람이 언제든 감정에 치우친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결혼생활이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 제도의 취지와 입법화에 찬성했었다. 그 때, 반대론

자들의 주요한 논거는, '취지는 이해하나, 국가가 법제화할 대상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개인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일이라는 설명이었는데, 나는 반대론자들이 대체로 스스로의 선택이 이성적이라는 개인적 경

험에 근거해 '인간'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들을 혐오했었다. 당시의 내 입말로 풀자면, '너네는 똑똑하

니까 언제든지 이성적인 선택을 하고 결과에 책임질 수 있다는 거 아냐. 너네가 그러니까 남들도 다 그런 줄 알

고 있다는 거 아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홧김에 실수도 하고 결과가 얼마나 클지 모르고 선택을 하기도 하는

데, 이 제도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헛똑똑

이 소리들만 하면 되겠냐.' 정도 되겠다. 반대론자들이 대체로 고학력자나 미혼자들이어서 혐오감은 더 했던 것

같다.



곧, 수 년 전의 나는 장기적 관점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몇몇 자유들은 제한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던 것인데,

비록 사안이 콘돔의 사용이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이슈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일에 대해 반대의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단지 사안의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면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나이의 영향일까. 이 뒤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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