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03

????






누나, '여전히' 건강하시죠? 아하하.


메일주소를 모르니 메일을 못 보내잖아, 주소를 모르니 편지를 못 보내잖아, 번호를 모르니 전화를

못 하잖아, 하고 어영부영 미루기만 하네요. 그러다 아주 가끔 누나가 달아주는 답글을 보면 아, 그

래도 아직 까먹지는 않았구나하고 안도하기도 하고.


근래에 Guess who를 시작해 봤는데, 주위 사람들 중에는 누구를 할까 많이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꽤 귀찮아요. 예전 사진, 요즘 사진이 두장씩 있어야 하니까. 예전 사진같은 건 스캔

해 놓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그렇다고 '내 일기에 올릴 거니까 스캔해서 보내줘.'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공자님 말씀에도 '네가 귀찮은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아라', 그 비슷한 것도 있고.


야, 그런데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에서 누나 사진들을 보고 제 3의 길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어요.

요새 사진에서 변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구나, 하고. 아, 정말이지 그 요상한 카페에서 누나랑 찍은

테입이 아직도 서랍장에 있는데, 이 믿을 수 없는 사진이라니.


그러고 보니 누나 이름을 아직 안 썼네요. 고학번(이게 참 주관적인 단어라서 말이죠. 저도 이젠

고학번이예요 누나. 저도 믿을 수 없어요. 믿지도 않고요.)들은 서서히 피어오르는 아스라한 추측을

억누르며 '아냐, 그 사람은 아닐거야'하고 있다가 제가 누나 이름을 부르는 순간 -헉-하고 [  ]성을

지르겠죠. ( [  ]안에 들어갈 단어도 또 주관적이라 말이죠. [탄]이든, [환]이든, [괴]이든. )


지은이누나. ( -헉- )  기억이 날까 모르겠어요. 누나를 처음 본게 그 사진 근처였거든요. 그 왜, 다시

한 번 그래서 들어오면 원배형이 다시는 안 만나주겠다고 했다던, 그 빨간 펑퍼짐티. 그리고 그 다음

만남쯔음도 거기서 멀지 않지요. 갈래머리에 노란 후드티. 문대 오르막길. '누나-'부르는 소리에 돌아

서서는 두 다리를 굳게 벌리고 서서 (그 유명한) 너털웃음과 함께 힘찬 브이자를 그리던 그 모습.

아, 나도 저렇게 학교를 오래 다니면 학교 안에서 무슨 행동을 하든 자신있게 될까,라고 자문하게

만들던 그 모습. 아니면 유럽에 다녀온 탓인가, 라고도 생각하게 만들던 그 모습.


대학생활의 대부들 중 한 명인 원배옹이 있었기 때문에, 전 97이 같이 놀아도 되는 학번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2학년이 되어서야, 이상하다, 00이나 01은 보통 99까지랑 노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

했고, 3학년인 지금이 되어서야 01들과 함께 호흡했던 형 누나가 얼마나 opened soul이었는가를

조금 느끼게 되니. 이제 해가 갈수록 우러름이 더해지겠지요.


그나저나, 날씨도 좋고, 올리지 못 한 다른 사진들에서의 의상도 과감하시고 (특히 복고풍들이),

정말이지 유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절로 나올법하네요. 저도 군대 갔다와서 유럽 갈 거라구요.

30대가 오기 전에 브리티쉬 액센트를 꼭 익히고야 말 거예요. 그리고 진모형처럼 입고 자랑스레

유럽의 어느 도시를 활보할 거예요.


얼른 신랑감을 찾으셔서 연애만담을 집필해 주셨으면 하고. 제목이 '신혼일기', 뭐 이런거라면

정기연재도 부탁드릴게요. 일주일에 한번씩. 흑흑.


아 참. 누나, 너무 유럽인이 되어서 돌아오지는 말아요. 누나 예전 사진들 보면 '아, 한국인의 포즈다'

라는 생각들이 들었는데 유럽 사진들 보니까 그 자연스럽고도 과감한 포즈들에 누나가 너무 멀리 가

버린 것 같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니치 천문대 앞에서 찍었다는 딱 그 사진만큼만

유럽인이 되어서 돌아와 주세요. 언제 돌아오시나요?


돌아오실 때까지도 쭈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3.7. 28. 月. 최대호

'일기장 > 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호야 일기쓴다  (9) 2003.08.04
그때로 돌아가는게  (9) 2003.07.29
중복을 기다리며 특별 보너스  (0) 2003.07.28
아...  (0) 2003.07.27
이야아  (2) 2003.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