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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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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려나 보다.



바람이 휘잉 하고 불어 여름내 열려져 있었는지 닫혀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 했던 창문을 밀어 반

쯤 닫는다. 창문이 있던 자리는 먼지가 쌓이지 않아 깨끗하다. 집안에서는 팬티만 입고 있는다는 엄격

한 가풍을 어기고, 입고 나서 몇번을 굴러봐도 개어져 있던 선이 지워지지 않는 긴팔 상의를 꺼내

어다 입는다. 팔뚝 위를 덮는 옷의 느낌이 고작 두어달만인데 낯설다.


개강 첫 날 학교까지 못 가게 만든 피아노곡들을 들으며 책을 읽자니 야릇한 느낌은 한층 더한다.

삼사백년 전의 갈색 역사에서 잠시 눈을 떼고 몇달째, 아니면 몇년째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채색의

주위로 눈을 돌린다. 비록 홀로 지내는 처지가 되어 소일하는 요즘이지만, 눈에 닿는 물건들에서

지나간 사람들과 다시 마주하며 드는 감정은 그리움이나 쓸쓸함보다 먼저 행복함이다. 오로지 처음부

터 끝까지 한 사람만을 만나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이야, 허락되는 사람을 단 한 차례도 보지 못

한 호사이지만, 비록 그 마음이 끝내 변했을지언정 한 계절을, 혹은 한 시절을 불같이 태웠던 일을,

나는 몇번이나 겪어 왔는가. 그것도 이렇게 다시 떠올리며 웃을 수 있게 하는 고왔던 사람들과 함께.

서로 나눈 편지와 선물들, 공연표와 영화표들에서 손으로 눈으로 먼지를 떨어내며 나는 웃는다.


당신들의 숨결. 내 머리를 그러안고 있던 가슴의 향기. 뒤에서 나를 감싸주던 손길의 온도. 나와 당신

들(중 한 명. 한 번엔 반드시 한 명뿐이었다는 것은 분명히 해 두자.)이 눈길을 주고 받으며 말없이

있던 그 행복한 순간. 나는 모두 기억한다. 어디선가 행복한 가을을 보내고 있기를, 바란다.

나의 사랑하는.





마음은 이미 가을의 한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