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흰둥이는 겁보였다. 선생님이 처음 발견하고 구조를 할 때에도 도망갈 수 없는 구석에 몰린 뒤로는 발톱이 다 닳고 사이에 피가 맺히도록 바닥이나 벽을 긁어대었다 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며칠이고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고양이의 일반적인 습성이라 하지만 흰둥이는 함께 지낸 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내가 밖에 나갔다가 새 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면 어두운 구석에 숨어 한참이나 눈치를 본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 가서 숨어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숨어서 자고 있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는 것은 내가 없을 때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기대하던 쟈미난 생활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까지 내가 혼자 살던 삶과 별로 달라지던 것도 없어서 나는 그럭저럭 지냈다. 이따금 간식을 던져주면 배를 뒤집으며 벌러덩벌러덩 하는 것은 웃으면서 보았다.
택배 상자로 만들어 준 임시 집에서 흰둥이는 잘 잤다. 다만 뭘 하고 있나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크게 뜨고 콧김을 퓽퓽 내쉬는 탓에, 나쁜 짓 하는 것 같아 근처에도 안 가게 된 것은 좀 서운했다. 이래서야 혼자 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언가.
일주일 가량이 지났을까, 손에 간식을 쥐고 있으면 다가와서 얼른 하나 먹고 다시 도망갈 정도는 친해졌을 때, 나는 박스 안으로 손을 넣어 흰둥이를 쓰다듬어 보았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았던 어설픈 지식대로 귀 사이의 머리통을 긁어 주고 목덜미와 턱을 만져 주었더니 의외로 순순히 옆으로 누워 그르렁 그르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친해진 표시일까, 하는 생각도 좀 기쁘고, 내 집에 와서 안정을 찾은 모양이다, 하는 생각도 기뻐서 나는 여기저기를 긁어 주었다.
그러다가, 벌렁 누워서 배를 보이고 있으니 배를 만져달라는 것일까 하고 배도 한참 만졌는데 흰둥이는 갑자기 얼굴을 귀신처럼 일그러 뜨리면서 캬악, 캬악, 하고 수 차례나 위협하는 소리를 냈다. 친해졌다는 생각이 배신당한 것 같기도 하고, 박스 깊숙이 들어가 있는 손이 걱정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큼직한 고양이가 눈 앞에서 그렇게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는 것을 처음 본 탓에 놀라기도 해서, 나는 그 감정을 뭉뚱그려 화가 났다. 먹이 주고 똥 치워주고 쓰다듬어 줬는데 이게 주인한테, 하고. 화가 난 나는 박스를 후려쳤고 흰둥이는 정신 없이 집 안의 구석을 찾아 도망다녔다. 이때까지 나는 고양이가 무시하거나 위협을 할 때 말고도 무서울 때에 캬악 소리를 낸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
'일기장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10. 20. 쥐순이. (1) | 2017.10.21 |
---|---|
고양이 (2) | 2017.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