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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4

혼신의 퇴근탐험

 

 

 

 

벼르고 벼르던 전기자전거를 마침내 샀다. 오래 전 블로그에도 소개한 바 있었던 알톤 사의 이스타26s이다. 손

 

가락 빨며 이런저런 뉴스와 블로그 기사를 검색하고 마침내 이 모델로 정했던 것이 1년도 전의 일이다. 돈이 생

 

겼다고 다시 다른 전기자전거들을 기웃거릴 필요는 전혀 없었다.

 

동네 산책길에 지나치며 기웃기웃거리던 전기자전거 판매점에 전화해 보니 작년 겨울 양천구로 이사를 했다 한

 

다. 집 앞에서 사 난짝 들고 오는 것보다야 불편하겠지만 이 참에 먼 동네에서 사자마자 타고 귀가를 해볼까, 생

 

각하니 그 또한 나름의 재미가 있겠다 싶다. 다운 받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자전거로 여기 가려면 어떻게 가지,

 

저기 가려면 어떻게 가지 하고 만지작거리던 네이버 길찾기 어플, 드디어 제대로 한 번 써먹는다.

 

 

 

 

 

 

 

 

서울 생활 15년에 버스나 지하철 타고 부지불식간에 지난 적은 있겠지만 신정 역 인근을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

 

은 처음 있는 일이다. 나즈막한 상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크지 않은 간판이 걸린 지하의 가게를 겨우 찾아 들어갔

 

다.

 

자전거 가게에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이 구매하려 하는 것이 마침 같은 알톤 사에서 나온 유

 

니크20s라 구경 잘했다. 유니크20s는 내가 산 이스타26s와 매 격인 전기자전거이다. 윗사진의 왼쪽이 유니

 

크20s, 오른쪽이 내가 산 이스타26s이다. 유니크는 차체도 작고, 26인치인 이스타에 비해 바퀴도 20인치로 더

 

작고, 핸들을 접을 수 있어 보관이 용이하다. 디자인이 예뻐서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한다. 나도 결정 과정에서

 

예쁘게 생긴 것에 혹한 적이 있었고 막상 실물로 보게 되니 혹하는 마음이 더 혹해졌다. 그 자리에서 사네마네

 

하던 앞 손님이 결국 다음에 사기로 하고 가게를 나간 뒤, 유니크는 현금가로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묻자 사장님

 

은 저 자전거엔 앞바퀴에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이 없다는 짧은 말을 해 주었다. 나에겐 충격 흡수 장치를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예쁜 자전거를 샀다가 일시적으로나마 남성 기능의 심각한 감퇴를 호소하였던 지인이

 

있다. 역시 처음에 찍은 답이 정답이다.    

 

 

 

 

 

 

 

 

전기자전거는 둘째치고 그냥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지나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런만큼 많이 알게 되면

 

걱정거리가 더 생길까봐 엣다 하고 첫 페달을 밟기로 했다. 출발 전, 처음으로 탑승하고 사진을 찍어봤다. 사진

 

에도 나왔듯이 복장은 라이딩과 멀어도 한참 먼 복장.

 

핸들에 빈 자리 없이 주렁주렁 달린 악세사리들이 보인다. 기본으로 달린 기어와 전자 패널, 차임벨 외에 전면

 

등과 스마트폰 주머니를 더 달았다.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그 이외로 후면등, 장갑, 헬멧, 그리고 안 잘리기로 유

 

명하다는 대만산 자물쇠까지 추가하고 나서 계산을 하자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새삼 머리를 때린다. 비

 

싼 물건을 산 적이 많지 않아 옵션 무서운 줄 몰랐던 탓이다. 소중한 깨달음 얻고 출발. 

 

 

 

 

 

 

 

양천구 신정동 출발, 서대문구 연희동 도착. 거리는 9km 시간은 40분. 조금 더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40분에서

 

더 걸려봐야 얼마나 더 걸릴까 싶기도 하고, 십수 년을 오간 양화대교 넘어 홍대 지나가는 길에 길을 잃어봐야

 

얼마나 잃겠나 싶어 호기롭게 출발한다.

 

 

 

 

 

 

 

 

하지만 중간결과는 역시 조난. 마음이 쓸쓸해져서 모르는 동네의 놀이터에 자전거를 잠시 세우고 코끼리 분수

 

에게 위로를 받는다. 수돗물로 어푸어푸 입을 헹구고 있는데 키득거리며 손잡고 놀이터로 들어오던 고교생 커

 

플이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다시 나가 버린다. 청춘의 추억 방해해 미안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어. 

 

 

 

 

 

 

 

 

이 사진은 사실, 드디어 양화대교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에 찍었던 것이다. 인천 가는 광역버스가 이 다리를

 

지나기 때문에 나에겐 서울의 어떤 다리보다도 친근한 다리이기 때문이다. 별 난코스도 없는 길에서 방향도 잃

 

어 보고 행인들 피하다 담벼락과 가드 펜스에 몇 번씩 박아 보기도 하며 도착한 것이라 어휴 한숨을 내쉬며 찍었

 

다. 엄홍길 대장님의 수기 같지만 실제로는 약 4km의 주행.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이 날의 주행 중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자전거만 다녀도 두 대가 서로 스칠락말락하는 너

 

비의 길인데 저녁 먹고 나온 서울시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통에 몇 번을 멈춰섰는지 기억도 안 난다. 전기 자전

 

는 전기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어 일반 자전거보다 꽤나 무거워서 멈출 때마다 그 중량을 감당하지 못해 핸들

 

이 꺾이거나 휘청 하고 넘어지려 하는 것이 특히 고생스러웠다. 어쩌다 타는 취미용이 아니라 출퇴근용으로 산

 

이라 눈앞이 캄캄했다. 아, 서울에 다리가 몇 개인데 이래서야 탈 수나 있겠나, 하고.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소요시간은 한 시간 반. 네이버 어플의 예상보다 두 배 정도 걸렸다. 샤워를 하다 따끔

 

해서 쳐다보자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무릎이 대판 까져 있었다.

 

 

     

 

 

 

 

 

 

 

다음날인 오늘. 출강 중인 고등학교까지 루트를 검색해 봤다. 전날 9km로도 그렇게 고생했는데 22km가 가당키

 

나 한 말인가. 그래도 평소 빙 돌아가는 버스 노선 탓에 낭비되는 시간과 몇 차례나 갈아타야하는 번거로움에 지

 

쳐 이럴 바엔 자전거 사서 운동이라도 하자 싶어 결정했던 것. 거금 주고 사오기까지 했으니 중간에 퍼져서 죽

 

이 되더라도 한 번 가보기자 해보자 싶어 자전거 끌고 집을 나섰다. 어제의 교훈으로 네이버 어플의 예상 시간에

 

두 배를 곱해, 강의 시간 세 시간 반 전에 출발.   

 

 

 

 

 

 

 

 

위 지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네이버 어플은 연대 - 종로 - 동대문을 거치는 직선 코스를 추천하지 않고 한강으

 

로 빙 돌아가는 코스를 추천해 줬다. 전날의 고생으로 의기소침해져 기계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게 된 마음가

 

짐이 없었다면 나는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처럼 종로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꾸역꾸역 서강대교를 통해 한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 자전거 도로도 확충해 놓지 않고 자전거 많은 에코 시티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이나 남

 

발하는 지자체장은 멍석말이라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첫 라이딩을 한강의 자전거 도로에서 시작했다

 

면 얼마좋았을까! 시간은 낮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천천히 가도 재촉하는 라이더도 없고 이따금 반대편에서

 

달려오사람들은 핸들에서 손을 떼고 인사를 다 해주질 않나. 내 자전거로는 처음 달려보는 한강 자전거 도로,

 

그 첫인상은 마치 존 레논과 같았다. 온 세상이 러브 앤 피스. 

 

 

 

단, 언급할 것은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현행법상 전기자전거는 원동기로 분류되기 때문에 '자전거 도로'에는

 

출입이 불가하다. 출력이 얼만큼 됐든 속도가 얼마나 빠르든 인력이 아닌 수단을 사용해 운행되는 것은 '자전거'

 

로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형도 자전거이고 기기 자체에 일정한 속도제한이 걸려 있어서 일반 자전거의

 

행에 불편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예전부터 있어왔던 법이 그렇다. 현행법에 따르자면 전기자전거의 운

 

행은 1종이나 2종 운전 면허 말고 원동기 면허를 따로 취득해서 상시 소지해야 하며 헬멧을 미착용할 시에는

 

칙금도 교부되는 등 높은 배기량의 오토바이와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전기 자전거를 타고 일반 도

 

로에 나갔다가 교통 사고가 날 경우, 전기 자전거 운전자가 원동기 면허를 취득한 상태가 아니라면 무면허 운전

 

으로 처벌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전기 자전거의 천국이라고 불리우는 유럽에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기기 자체에 걸린 제한속도가

 

대단히 높은 몇몇 개의 특정 기종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전기 자전거를 타는 데 면허가 필요하지 않다. 접근

 

의 용이성, (차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비용, 그리고 도심에서의 이동성 등으로 인해 유럽의 전기 자

 

전거 시장은 전세계의 시장을 이끄는 주축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경기침체, 고유가 등의 이유로 전기 자전거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또 정부에서도 친환경

 

업으로 거듭 지정한 바도 있어 그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관련 법안인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

 

한 법률 개정안'은 2, 3년째 국회에서 개정되네 마네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장려하는데 법에서는 처벌한

 

다. 일반 도로에서 사고 나면 무면허, 자전거 도로에 출입하면 불법. 하나만 더 적자면 전기 자전거는 자전거 보

 

험에도 못 들고 원동기 보험에도 못 든다. 이런 사실들이 현재 전기 자전거가 처해 있는 입지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여러 제한 사항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는 분명히 위법한 활동임은 알지만. 전기자전거를 사기로 마

 

음먹었을 때부터 웹 상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아 안타까웠던 탓에 이렇게 직접 관련 일기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니, 한강 자전거 도로에 전기 자전거가 달린다는 사실을 불쾌해 하는 라이더 분들은 부디 너그러이 양

 

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 한강 자전거 도로의 속도제한이 20km/h이던데 나는 전기 모터의 도움을 받아 달려도 내

 

내 17km/h 언저리였다는 정상도 추가로 참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 괜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

 

만 그간 돌아다녀본 자전거 커뮤니티들에서는 전기 자전거의 자전거 도로 출입이 꽤나 논쟁적인 이슈였던 것을

 

수 차례 목격했던 바라 이렇게 첨언을 붙여둔다.

 

 

 

 

 

 

 

 

자전거를 사기 전엔 출퇴근하며 서울길의 이모저모를 찍어보고자 했지만 막상 왕복 40km 달려보니 멋진 석양

 

시원한 바람에도 얼굴은 죽상. 그래도 첫 퇴근길인데 너무 사진을 안 찍은 것 같아 마지막으로 쉬는 지점에서 갓

 

상경한 청년처럼 63빌딩 찍어봤다. 다음에는 몇 차례 더 타 본 뒤 기능의 활용과 주행소감 등 좀 더 실용적인 내

 

용에 관해 일기를 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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