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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2010

리영희 선생님 별세





웃고 계신 사진이 있어 다행이다. 요사이 빠져 있는 취미가 있어 일기장 돌보기를 소홀히 하느라, 며칠이나 차이가 나

는 부음인데도 이렇게 연이어 올리게 됐다. 그래도 적어두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작은 아버지는 집안의 윗 대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셨다. 일찌감치 공부로 길을 잡은 내게 다른 조카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는데, 회사에서 인재로 뽑혀 일본으로 장기 해외 근무를 나가시던 때 갖고 계신 천여 권의 책

들을 우리 집에 맡긴 데에는 모종의 기대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청소년기의 나는 거기에서 '전환시대의 논리'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만났다. 선생을 마음의 은사로 섬겼던 세대와는 못해도 반 세대 정도의 차이를 갖지만 오

마이뉴스나 미디어오늘도 없었고 하다못해 십이년 학창 생활에 전교조 문사철 선생님 한 번 만나지 못했던 나는 큰 충

격을 받으며 두 권을 탐독했다. 그때 생겨난 관심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 사회과학 서적을 꾸준히 구입하고 읽어나가는

한 원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대의 지성으로 '군림'했던 것에 비해, -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 말년은 그리 행복하게 보내신 것 같지 않다. 점진적

인 발전이라지만 그래도 십 년의 공든 탑이 전두환이나 노태우에 비하면 악당 축에도 못 끼워줄 인물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지켜본 것은 선생만의 고충은 아니다. 그러나 영혼으로 숭앙했던 이들에게 비난받고 배척되는 것은 한

차례 영웅이 되었던 이가 아니면 겪지 못 할 일이다. 통금과 등화관제의 시대에조차 끊임없이 글로써 세상과 소통했던
 
노년의 문객이 절필을 선언하였던 것은 그 상처를 짐작하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인도에서 읽었던 많은 책들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한 문장은, '우리 모두는 한 편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와

같다'였다. 소중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며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마는, 어떤 사람들의 죽음은 개인의 차원

을 넘어 역사의 한 매듭이 되기도 한다. 공과에 대한 평은 더 배우신 분이나 혹은 더 배운 미래의 나에게 넘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왜 슬퍼야 할지를 알아 보고, 또 크게 슬퍼해도 좋을 하루라고 생각한다. 향년 81세. 빈소는 신촌 세브

란스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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