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일지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3.)

 

 

 

 

 

 

길고 길게 썼다가, 스스로의 눈에도 마뜩찮은 부분이 많아 모두 지웠다. 그만큼, 현재의 유시민과 한 결과물인

 

이 책을 접하는 내 심상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 자체로만 좁혀서 말하자면, 미완성품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그거 무슨 책이야, 라고

 

물어오면, 근래에 읽은 저작들 중 가장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여러 유시민이 오

 

도카니 서 있다. 범박한 제목에서 최초로 연상되는, 청년, 그리고 저자의 동년배들을 위한 제언을 나직하게 읊는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있고, '하필, 지금' 정계를 은퇴한 저간의 사정과 심경을 고백하는 전 진보정의당 공동대

 

표 유시민이 있다. 1980년 5월의 어느날 서울역 앞에서 십만 대학생 앞에 섰던 20대의 유시민이 있고, 며칠 뒤

 

운명의 그 날 광주의 학우들만이 일어난 것에 내내 부끄러워 하는 30대의 유시민이 있고, 자녀와의 관계를 고민

 

하는 50대의 유시민이 있다. 이들이 '오도카니' 서 있다고 표현을 한 이유는, 그 많은 유시민들이 이 한 권의 책

 

을 위해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서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잠언집이기도 하고 에세이이기도

 

하고 자서전이기도 한, 이 책을 무엇이라 설명하면 좋을까.

 

 

 

나는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는, 아마도 저자가 저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 질문이었을 것이라

 

고 추측한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심경을 알고 싶은 정치부 기자에게 유효할 것이고, 어떤 부분은 젊은 날을 함

 

께 했던 '동지'들의 눈물과 회한을 자아낼 것이고, 어떤 부분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로 역사의 눈을 틔웠던 이

 

들의 가슴을 뛰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두를 담은 한 권은, 특정한 연령이나 계층의 독자보다는 아마도 유시

 

민 자신에게 가장 큰 효용을 갖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생각한다. 정리하기 어렵지만, 잘 뭉뚱

 

그려 일단 여기서 하나의 매듭을 짓고, 또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라는, 한 권 분량의 자기고백. 개인적인 생

 

각이지만, 이 책은 그의 대표 저작이 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의 필 인생에 있어 써야 할 당위성

 

이 가장 높았던 저작으로는 선두에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인 유시민은 동년배의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겪은 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후배인 나는 그를

 

통해 정치가 역사가 되는 장면들을 지켜봐 왔다. 그런 그가 힘들었다 한다.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일생을 살고 싶다' 한다.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 왜 없을까마는, 단 한

 

명의 정치인만이 그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은퇴할 수 있다면, 그 권리는 마땅히 유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나

 

는 생각한다. 그런 선택의 끝에 '해방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하니, 함께 기뻐하고, 그간의 노고에 값

 

하는 광영이 있기를 빌어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시 한 번 쓰지만, 마음이 복잡해서 글에 갈피가 없다. 사실 내가 이 순간에 누군가에게 굳이 이 책을 설명해야

 

다면, 굳이 이런저런 군소리를 덧붙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한 곡의 노래를 추천해 주

 

싶다. W & Whale의 '오빠가 돌아왔다'이다. 가사를 덧붙이는 것은 촌스러운 짓 같아 피한다. 좋은 노래이니

 

관심 가는 분이라면 한 번 찾아 들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