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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4. 4대강 남한강자전거길 - 아트터널에서

 

 

 

 

종주수첩의 남한강자전거길 소개글을 읽어보면 '옛 기차길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구간으로서 기차가 달리던 폐

 

철도, 폐교량, 폐터널 등이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재탄생되었다'는 문구가 있다. 이 설명은 대체로 남한강자전거

 

길의 마지막 구간인 '양평군립미술관 - 능내역' 구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폐교량, 폐철로 위를 달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특별한 경험은 역시 폐터널. 23km의 길지 않

 

은 구간에서 여남은 개의 폐터널을 만나게 된다. 뒤에서 오는 자동차 걱정할 필요 없이 터널 안을 달려도 된다는

 

것도 신나지만 잠시나마 햇빛을 피하며 냉골 같은 바람까지 쐰다는 것도 짜릿한 쾌락이다.

 

 

 

그 터널 가운데에서도 또 눈에 띄는 것이 위 사진에 보이는 '아트터널'. 다른 터널들은 안내판에 그냥 'OO터

 

널'이라고 적혀 있는데 반해 두 개인가 세 개 밖에 없었던 아트터널은 터널의 이름 옆에 '아트터널'이라는 글씨

 

가 따로 적혀 있다.

 

 

 

 

 

 

 

 

 

아트터널의 내부는 위와 같다. 평범한 형광등이 달린 다른 터널과 달리 아트터널의 상단부는 백열등, 혹은 LED

 

와 같은 조명장치로 꾸며져 있다. 여기에, 한 아트터널은 조용했지만 다른 아트터널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함께

 

흘러나왔다.

 

 

 

전구는 내처 그냥 켜져 있는 것이 아니고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마치 춤을 추듯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잘

 

라 말하자면 도시의 아케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땡볕 아래 있다가 갑작스레 터널 안으로 들어

 

와서, 에어컨 바람 같은 찬바람 시원하게 쐬어가며, 씽씽 달리는 자전거 위에 앉아 머리 위로 펼쳐지는 빛의 춤

 

을 보면, '우우와-'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나는 실제로 '우우와-'하는 소리를 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 멀리서부터 빛의 가로줄 한 줄이 확 하고 달려오는 패턴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짧

 

은 시간동안 가로줄 한 줄의 전구만을 켰다가 끄고 바로 다음 가로줄 한 줄을 켰다가 끄고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착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자전거로 씽씽 달리고 있을 때에는 빛의 줄이 괴수처럼 왁 하고 달겨드는 느

 

낌을 받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잡고 말았다. 

 

 

 

아트터널은 또 다른 일반터널에 비해 유난스레 시원하다. 처음에는 우연한 결과이거나 아니면 아트터널에 홀딱

 

빠진 나의 따끈따끈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는데, 달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애당초 여러 터널 가운데 전구나

 

LED를 설치할 만한 충분한 길이가 되는 터널을 선정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 터널은 이미 길이가 길기 때문에 바

 

깥의 더운 공기가 침입하는 영역도 상대적으로 더 짧았을 것이다. 그러니 더 시원할 수 밖에.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오랜만에 발아한 내 안의 사이언티픽 마인드에 스스로 감탄했다. 남양주의 셜록 된

 

기분. 

 

 

 

추가로 한 줄만 덧붙이자면, 충주-남양주 방향에서 가고 있다면 터널은 예외없이 내리막이기 때문에 멀리서 터

 

널이 보일 때마다 매번 즐겁다. 반대 방향에서 가시는 분들은 반대로 참고하시라.

 

 

 

 

 

 

 

 

마지막 구간에서는 중앙선의 지하철 역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국수역. 한자로는 수려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지만 한글로만 써 놓으면 짤방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부끄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아 화제를 모았던 고양高陽시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지

 

자체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좀 도움이 되지 않겠나. 면발로 이루어진 캐릭터도 만들고, 국수 역 앞에 '국

 

수라면' 같은 이름의 가게도 만들어서 '국수라면 역시 국수라면'과 같은 트위터도 좀 날리고.

 

 

 

 

 

 

 

 

 

다행히도 지역 내에 그런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들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들이 이미 많이 계신 듯. 국수역 바로

 

앞의 막국수 집에선 낙타가 삐끼를 본다.

 

 

 

 

 

 

 

 

 

우리 집엔 막국수 말고도 뭔가 특별하고 이국적인 것이 있다는 듯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이끌렸지만, 마

 

지막 거점인 능내역의 유인 인증센터가 닫기 전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정신을 차렸

 

다. 꼭 다시 만나자. 언젠가 그냥 지하철 타고 국수역까지 와서 막국수 한 그릇 먹고 다시 지하철 타고 돌아갈게.

 

약속한다. 

 

 

 

 

 

 

 

 

 

국수역 다음으로 나타난 것은 신원역. 역 앞인데도 고즈넉한 풍경에 잠시 안장에서 전립선을 떼고 주위를 둘러

 

보는데.

 

 

 

 

 

 

 

 

 

앗. 길 이름이 몽양길. 혹시나.

 

 

 

 

 

 

 

 

둘러보니 그 몽양이 그 몽양 맞았다! 검색을 해 보니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가 근처에 있었고, 길가에 걸린 현

 

수막에서는 그 생가에서 사진전까지 하고 있다는 정보를 볼 수 있었다. 부랴부랴 경로 검색을 하자 '몽양기념관'

 

은 남한강자전거길에서 500m 거리. 이 때 시간은 오후 네 시 반이었고, 여섯 시에 문을 닫는 능내역 유인 인증센

 

터는 고작 10여 km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몽양 선생을 뵈러 한 번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