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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記/4대강 자전거길

3. 4대강 북한강자전거길 - 경기도는 경기도 좋지

 

 

 

 

아라자전거길과 한강종주자전거길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전거 신호등. 귀엽고 재미있다. 차는 한 대도 안 지나가

 

지만 빨간 불이니 기다리기로 한다.

 

 

 

 

 

 

 

 

자라섬이 여기였구만. 오려면 올 수 있었네, 라는 생각에 다시금 울컥한다. 치토스 표범처럼 언젠간 오고 말거야

 

라고 다짐한다.

 

 

 

 

 

 

 

 

북한강자전거길은 대체로 산과 밭 사이로 이어진 2차로라 편의 시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침 그 자리에 있어

 

서는 안 될 것 같은 자리에 넓고 큰 편의점이 떡하니 있길래 들어가봤다. 큰 통으로 물을 준비해 갔지만 음수대

 

를 만날 수가 없어 1구간에서 다 마셔버린 뒤였다. 1+1로 세일 중인 괴상한 이름의 음료를 사 벌컥벌컥 마시는

 

데 앗, 휴대폰 무료 충전기가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만 이미 휴대폰 배터리

 

가 반 이상 닳은 터라 공복에 뷔페 간 듯 허겁지겁 달려들었는데.

 

 

 

 

 

 

 

 

이런 상황에 처해 보신 분은 누구나 아는 숨겨진 상식. 편의점이나 PC방 등의 충전기는 대부분 안드로이드 폰

 

용이다! 이것은 마치 공복에 뷔페를 갔는데 입에 정조대가 채워진 꼴.

 

 

 

 

 

 

 

 

헤헤헤. 그러나 지난 번 일주 때 한 번 당해 본 나는 충전기를 챙겨갔지롱. 빨간 불 켜고 열심히 전기 빨아먹는

 

아이폰을 보고 있자니 젖먹이는 어미의 마음이 된 것만 같다.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긴 하지만 들어야 할

 

팟캐스트도 많고 또 사람 애먹이는 북한강자전거길에서 경로 탐색도 때마다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들고 다니

 

다가 휴대폰을 연결하여 충전시킬 수 있는 대용량 배터리가 있다던데 그것도 아이폰 용은 없으려나. 회음부에

 

패드가 덧대어진 자전거용 바지와 함께 집에 가면 꼭 검색해 봐야지.

 

 

 

전방 후레쉬가 없는 탓에 해가 지기 전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 한다. 노래를 듣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노선 검

 

색과 사진 촬영 정도는 할 수 있을만큼 충전이 된 것을 보고 바로 출발.

 

 

 

 

 

 

 

 

꽤 달려간 뒤 잠깐 쉬다가 무심코 주변 사진을 찍었는데 뭔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시치미 뚝 떼고 건물 위에 얹혀 있길래 난 십자가인 줄 알았지. 네가 거기 왜 있는거야 도대체.

 

 

 

 

 

 

 

 

북한강자전거길에서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광 중 하나이다. 시원한 물소리 들으며 산과 다리 사이를 누비는

 

길. 그만큼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사진이지만. 파노라마 기능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빨리 지나가는 물체는 잘려

 

서 찍히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잘려버린 다른 라이더들의 모습이 심령사진 같기도 하고 해서 재미 삼아 올려둔

 

다. 이런 효과를 일부러 이용해서 기획 사진 한 번 찍어봐도 괜찮겠는데?

 

 

 

 

 

 

 

 

물도 그대로고 길도 그대로지만 아, 이제 경기도는 확실히 경기도구나 하는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대실비보다 기름값이 더 나올 것 같은 험지의 모텔.

 

 

 

 

 

 

 

 

가는 대도시마다 그 이름을 본 것 같은 쉘 모텔. 모텔이란 업종을 일궈낸 선구자가 미스터 쉘 씨라도 되는 것일

 

. 아니면 동유럽의 어느 나라 말로 '대실 환영!'이란 말이 쉘인 것일까.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푸줏간'이라는 게시판이 따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텔 외벽에 그려진 그림 같아

 

보인다. 푸줏간 모텔. 생각해 보니 은근한 맛이 있는 이름인 것 같기도 하다.

 

 

 

 

 

 

 

 

약 60km를 달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만난 바닥 표시판. 하도 반가워서 일부러 멈춰 찍어봤다. 어차피 돈 들여 길

 

만들었으면 바닥 표시판 정도는 좀 더 많이 써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샛터삼거리 인증센터 인증샷. 모르는 사람이 찍어줬기 때문에 상냥하고 활기 있는 표정 짓고 있지만 손가락은

 

이미 힘 풀려서 축 늘어졌다.

 

 

 

 

 

 

 

 

샛터삼거리 인증센터 앞의 카페. 요 바로 앞에 터널이 있어서 이름이 '터널 카페'인 모양이다. 사방으로 탁 트인

 

1, 2층과 넓은 마당을 만들어 주는 차양의 디자인이 눈을 확 잡아끌어 사진을 찍어봤다.

 

 

 

 

 

 

 

 

마지막 구간인 3구간은 15km 밖에 안 남았고 해서 단 거 한 잔 마시고 갈까 고민을 많이 했다. 마냥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곳이 있으면 들어도 가보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먹어도 보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도 전방 후레쉬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려 아직 해 있을 때 더 가보기로 하고 헬멧 끈을 조인다.

 

 

 

 

 

 

 

세 번째 거점인 샛터삼거리 인증센터에서 네 번째이자 마지막 거점인 밝은광장 인증센터까지 가는 제 3구간. 60

 

km를 달려왔는데 15km쯤이야.

 

 

 

생각해 보니 지난 번 일주 때 60km 지점이라면 사진이고 지랄이고 빨리 다음 거점 도장 찍은 뒤 집에 가고 싶다,

 

내가 분에 넘치는 일을 저질렀다, 이런 혼잣말 하면서 땅만 쳐다보며 페달을 밟고 있던 시점이었다. 용기나 근성

 

이라기보다는, 무리라고 여겨지는 시점에 딱 멈출 에너지조차 없을만큼 탈진했기 때문에 계속 달리고 있었던 기

 

억이 난다.

 

 

 

그것이 고작 1주일 전의 일이고 그 사이 내 체력이 특별히 좋아지거나 힘나는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야, 이

 

것도 멘탈 게임이구나. 똑같은 60km인데 이번엔 이제 15km 남았으니 경쾌하게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니. 잘

 

했다. 수고 많았다.

 

 

 

따위의 생각으로 마음이 해이해진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