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2021

2021년

오랜만에 쓰는 일기이다. 이따금 올렸던 부고를 제하고는 사오 년만의 기록이다. 생각해보니 일상적인 문자 정도를 제하고는 일기를 포함해 어떤 글이든 쓴 지 오래 되었다.

 

'일기' 카테고리의 연도를 클릭해보면 그 해에 쓴 일기의 총 갯수를 볼 수 있다. 살펴보니 서른이 넘어서는 이미 글이 꾸준히 줄고 있었다. 그 맘때쯤 쓸 것이 없었다든지 그 맘때쯤 사는 것에 치여서 그렇다든지 하는 생각을 편린적으로 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미 오래 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가. 나는 왜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인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모두 중요한 질문이었는데 개중 하나라도 대답하기에는 깜냥이 안 됐다. 관련된 지식은 일천했고 도움이 될 경험들은 꼬여서 몸에 치덕치덕 감겨 있었다. 그런 채로 계속 글을 쓰는 것이 나한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잠시 생각해보니, 멀리 내다보고 영리하게 그만둔 것은 아니고 계속하자니 괴로워서 그만두었던 것 같다. 또 하나 거짓말을 할 뻔 했다. 

 

아무튼 몇 년이 지났고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됐다. 적어도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지향성 정도는 든든하게 챙겼다. 올해 들어서는 방향도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지향성과 방향은 또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자니 기껏 갈무리했던 생각들이 여러 유혹에 흩어지는 것을 느낀다. 깊은 생각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고 매끄럽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 생각을 아카이빙하면 이미지가 생기고 서사가 생긴다. 지금의 나는 거기에서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면 된다. 막는 것은 나뿐이다.

 

다만 일상을 아카이빙하는 것은 괜찮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계간으로 책과 공연, 음악과 여행 경험을 아카이빙해두는 친구의 삶을 수 년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아 먹게 된 마음이다.

 

오 년 전의 글들을 몇 개 읽어보니 생각은 둘째치고 일상적 환경조차 달라진 것이 너무 많다. 그 사이를 채워넣으려는 마음이 성난 말처럼 푸릉거린다. 또 누구를 위해서 푸릉거리는 것인지 붙잡고 물어볼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은 낡은 집에 신발 신고 들어가 거미줄과 폐자재나 걷어낸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예전이라면 이제야 이 정도라니 하고 좌절하고 남은 공정을 계산하며 막막해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다음번의 걸레질은 무슨 걸레로 할까 생각하며 조금 즐겁다. 조금씩 하다보면 될 것이고, 꼭 다 안 되어도 괜찮다. 오랜만의 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을까 조금 고민했는데, 앞문장의 괜찮다, 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괜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