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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지승호/이상호, <이상호 GO발뉴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11월 작. 저자는 2012년에 네 권을 출간하였는데, 출간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다. 오슬로 대학 한학 교수 박노자를 인터뷰한 <좌파하라>, 영화감독 양익준을 인터뷰한 <Let's cinema party?

 

똥파리>, 서울시장 박원순과 그의 선거 캠프 인사들을 인터뷰한 <시민은 현명하다>, 그리고 '고발전문자' 이

 

상호를 인터뷰한 <이상호 GO발뉴스>이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각기 세 권씩이 출간됐으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마음 편하게 정기 구독하도록 계간 잡지로 나와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줄은 알겠지

 

마는. 아니면 최소한 제목과 표지 디자인 담당 에디터 만이라도 통일해 주면 어떨까. 매 출간마다 출판사는 바뀌

 

는데 제목과 표지 디자인은 알찬 내용에 비해 좀 처지는 느낌이다. 개성이 없을거면 통일성이라도 있어주길 바

 

라는 건 장서가들의 공통된 소원이 아닐까 싶다.

 

 

 

 

 

이상호는 기자다. 그것도 고발 전문 기자다. 그가 취재한 아이템 가운데에는 이른바 '대박'이 많았다. 그런데도

 

대중 일반에게 그는 뉴스의 전달자보다 뉴스의 주인공으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한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그가

 

'센 놈'들만 골라서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호는 자유총연맹을 건드렸다. 이상호는 전두환을 건드렸다. 그

 

리고 이상호는, 삼성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이 가운데 삼성 X-file 건은 본

 

인이 취재 과정에서 메모하였던 것들을 정리하지난 7월 <이상호 기자 X-fil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

 

다. 한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고 수기 형태이기 때문에 긴박감과 진솔함이 한층 하다. 삼성 X-file 건만을

 

놓고 보실 분이라면 그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좀 더 객관적인 자료를 원한다면 삼성 X-file 건에서 이상호와 함

 

께 최대의 피해자로 꼽히는 노회찬 의원이 출간한 <노회찬과 삼성 X파일>이 도움이 된다.)

 

 

 

 

 

지승호의 올 해 책들 가운데서 살펴보자면, <좌파하라>와 <시민은 현명하다>를 한 묶음으로, <Let's cinema

 

party? 똥파리>와 <이상호 GO발뉴스>를 다른 한 묶음으로 가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인터뷰집이긴 하지만,

 

전자는 탈자본주의와 서울시장선거라는 '이슈'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고, 후자는 영화인 양익준과 기자 이

 

상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깊어서 좋고, 후자는 넓어서 좋다.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1장 '요즘 기자로 산다는 건'은 현재 이상호과 관심을 갖고 취재하는 사건, 그리고 만나

 

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이다. 2장 '워스트 5 & 베스트 10+α'는 제목 그대로 이상호가 스스로 뽑은 기자 인생 최고

 

의 취재 다섯 개, 최악의 취재 열 개이다. 3장 '못다 한 이야기들'에서는 삼성 엑스파일 건 이후 일어난 일들과

 

참여정부와 삼성의 밀월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 '고발뉴스 이상호의 기자론'은 이상호가 생각하는 '기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범상한 제목으로 정리하고 놓고 보면야 확 눈길 가는 곳이 없지만, 각 장을 채우는

 

내용들은 모두 십수 년 간 출입처 기자가 아니라 현장 기자로서의 삶을 지향해 온 이상호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을 감수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사실 읽다 보면 연민과 공감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듯한 <이상호 기자 X-file>과 그 사람의 진심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이상호 GO발뉴스>를 모두 접한 뒤에

 

도, 이상호가 완벽한 선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명감'과 '진정성'을 모두 갖춘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

 

길지는 몰라도 때로 당대에 큰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가 직접 밝는 이력에도 그런 모습은 몇 차례 발견되고, 본인이 모르는 와중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뉴스의 전달자가 아니라 뉴스의 주인공으로 비추어지고, 그럼으로써 사회에 꼭 전달되어야 했던

 

메시지들이 물타기 된 것은 자본과 보수 언론의 주도면밀한 공세가 주 원인이었겠지만 서툴고 거칠며 전략이 부

 

재한 그 자신에게도 일단의 실마리가 있었다 할 것이다. 지만 그럼에도 세세한 흠결을 집어내어 그에게 면박

 

을 줄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명만이라도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그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고 왜 무섭지 않았

 

을까. 정말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예수의 기도였다고 한다. '주여,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제게서 거둬주십시오. 하지만 주님의 뜻이라면 마시겠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기자들은 경찰에서 검찰으로, 검찰에서 국회로 출입처를 옮겨가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회사에

 

서는 좌천되고, 뉴스는 스마트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전두환을 인터뷰하다 수갑을 차고 삼성을 고발하다

 

고소를 당하면서도 계속해서 고발 기자로 남는 이유로, 이상호는 이한열의 이름을 꺼낸다. 1987년, 이한열은 연

 

세대 경영학과의 2학년 과대표였고 이상호는 1학년 과대표였다. 그해 늦봄, 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수업

 

거부를 행하였는데, 첫 날 백양로를 채웠던 400명은 날이 갈수록 줄어 열흘째 되던 날에는 부대표와 이상호, 그

 

리고 이한열만이 남았다. 이한열은 새우깡과 막걸리를 사왔고 셋은 청송대에 올라가 울었다 한다. 그리고 운명

 

의 6월 9일, 이한열은 연세대 정문에서 전경을 향한 맨 앞 줄에 섰고, 이상호는 그의 뒤통수를 보고 두번째 줄에

 

섰다. SY-44가 수직으로 발사됐고 이한열은 쓰러졌다. 발사 소리에 도망가던 이상호는 누군가 쓰러진 것을 보

 

고 돌아와 그의 다리를 들었고, 세브란스에 눕히고 나서야 그것이 이한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얼마 전 관련된 일기(http://chleogh.tistory.com/1695)에서 올린 사진에, 얼굴이 나오지 않은

 

이한열의 다리를 들고 있었던 학생이 이상호였던 셈이다. 때로, 한 순간이 지배하는 인생이 있다. 이상호의

 

순간은 87년 6월 9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