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도 이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일까? 출판소식이 들릴 때부터 잠복해 있다가 학교의 도서관에 들어오자
마자 예약을 걸었음에도 석 달 여가 지난 이제에야 손에 떨어졌다.
출판 전부터 이미 화제가 된 바 있었다. 미 대학에서 수학 전공, 삼일 회계법인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 파생
상품 트레이더로 억대 연봉 등 하여튼 돈과 숫자에 관해서라면 어디 가서도 밀리지 않을 이력의 저자가 홍대에
직접 커피숍을 냈다가 쫄딱 망한 이야기. 생판 남에다가, 다시 돈 좀 벌어보자면 못 벌 스펙도 아니고, 한 차례의
실패를 거름 삼아 다시 카페를 차려 3년째 운영 중이며, 이런 책을 내서 사회적 명망도 얻었다 하니 그런 형이
한 번 망했던 이야기야 겨울밤 간식과 함께 고소하게 즐겨도 좋으련마는.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자영업과 자영
업자의 현실을 접하다 보면 가족 중 자영업자 한 명 없는 나도 섬뜩하다. 영업장에 들이닥친 채무자라든지 사업
실패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수기 같은 '드라마'가 아니라, 자영업 현장의 담담한 증언과 각종 수치로 전해지는
'다큐멘터리'라 한기寒氣는 한층 더 하다. 책의 띠지에는 '자영업으로 생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문
구가 실려 있는데, 독서를 마친 뒤의 솔직한 감상을 적자면 '자영업을 하지 않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바꾸
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하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자영업 지옥이라는 현상의 적시,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서 발원하는 원인
분석, 그리고 대안. 임대료, 권리금, 프랜차이즈의 인테리어 등의 덫에 관해 개별적으로는 책으로 다큐로 접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와 몇 명의 육성을 통해 그러한 덫들이 실제로 어떻게 순차적으로 연계되어 작
동하는지를 듣고 나면, 정말이지 눈 뜨고도 코 베인다는 말이 딱 맞는 것만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럼에도 자영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이러한 추세가 반짝 카페 붐 등의 개별 아이템에 따른 단기
적 현상이 아니라,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맞물려 적어도 향후 20 - 30년간 지속될 변화라는 점이다. 정년은 점
점 짧아져 50대로 내려온지 오래인데, 평균 수명 연장에 따라 적어도 3, 40년은 남은 본인들의 여생도 여생이거
니와, 초혼 연령이 높아진 이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은퇴 전에 결혼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승집 개가 죽
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간다고, 은퇴 뒤의 축의금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속편하다. 결국 자식의 거
주 문제를, 퇴직금이 있으면 퇴직금으로 해결하고 없으면 팔 걷어 붙이고 자영업에라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즐
거운 마음으로 나서는 길도 아니고 해당 업종에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심도 깊은 리서치 등은 애당초 어
려운 이야기, 그렇게 엉거주춤 나서는 길의 끝은 폐업률 80%이다. 혹시나 도와줄까 싶어 정부를 쳐다보지만, 건
물주들이 임대료를 높이 후려칠 수 있도록 부동산 경기부양책들을 내놓은 것도, 자영업도 일자리라고 취업률이
올라갔다며 치적의 나팔을 불고 있는 것도 정부다. (이런 고민을 껴안고 있는 세력이 바로 90%에 가깝게 우루루
뛰어나와 박근혜 당선인을 찍었던 것이니, 투표하는 그 마음이 오로지 유신에의 향수라고 말하는 것은 폄하일
수도 있겠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영업 인구가 취업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은 31.3%. OECD 평균보다 두배 가량
높으며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서너 배가 높다. 말인즉슨, 자영업의 문제는 국가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업종
에서, 매해 60만의 창업과 58만의 폐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자가 내놓는 대안은 두 가지이다. '사회적 기업에 주목할 것'과 '스스로 전문성을 갖춘 가
게를 만들고 수익 이상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데, 애석한 공통점이라면 역시 '대박 칠 생각은 말아라'이다. 한편
으로는 급전이 필요해 자영업 하는 사람한테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정부도 언론도 기업도 몰라서 자영업자 안
살려주는 게 아닌 판에 이 형 혼자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대안 읊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궁극적일 수는 없으나 나름으로 현실적이고 다소 희망적이기도 하다.
56년생 아버지와 57년생 어머니를 두고, 열흘 남은 서른둘에 아직 미혼인 나로서도 전연 남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변의 직장인 친구들 중 전문 직종을 제하고 나면 열에 아홉이 술자리에서 창업을 화제로 올리는 것도 독서의
중간중간 떠올랐다. 말하자면 이 책은, 실용서나 에세이, 혹은 독특한 형태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2012년 대
한민국의 역사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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