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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지

우석훈, <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우띨' 우석훈 씨의 2012년 10월 신작. 본래는 전 독후감인 <시민은 현명하다> 편의 끝부분에서 시민단체에 관

 

해 언급하며 이어서 이 독후감을 쓸 작정이었는데, 쓰다 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권 별로 나눈다. 함께 엮어 생각

 

하면 더 재미있는 독서를 할 수 있으니 이 책을 읽을 분은 <시민은 현명하다>와 같이 읽으시면 좋겠다.

 

 

 

 

 

'정치'의 참여자를 그 참여도에 따라 선 상에 배열해 보면, 맨 아래에는 정치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투표도 하

 

지 않는 유권자가 있을 것이고, 맨 위의 정점에는 공당의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이 포진해 있을 것이다. 87년 체제

 

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 중 다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사이에 누가 있는지를 고민해 보지 않았다. 마음에 맞는 대

 

통령 하나와 국회의원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말했던 대로, 혹은 그들이 행해줄 것이라 우리가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무작정 무책임하거나 순진한 것이라고 공박할 수는 없을 것이

 

다. 그렇게 되라고 대의 민주주의가 생겨난 것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정치의 양 꼭지점 사이에 꽤나 많은 주체들이 있었다. 정치는 주무부서의 과장급 결재에서도 이

 

루어지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연초 보고서에서도 이루어지고, 외국계 금융자본의 클릭에서도 이루어졌다. 여의

 

의 상층부가 밀약하거나 방조하거나 외면하는 사이, 이들은 다수의 삶에 굵직굵직한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꼭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가 미처 주목하지 못하거나 혹은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사회의 공익' 등과 같은, 말하자면 '당장 돈이 안 되는' 목적을 가지고 뛰어든 주체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들이

 

'운동'을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을 포함한 '정치' 주체들을 선 위에 배열해 준다. 저자 스스로가 시민운동에 오랫동안 몸담았

 

기 때문에 그 내용은 주로 범진보 계열의 시민운동의 이력과 현황, 한계와 미래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만 보수

 

시민단체와 행정부의 주무 부서, 모피아, 삼성 등에 관한 언급도 두루 미쳐 있다. 결국 저자의 메시지는, '모르면

 

진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꼽사리다>의 구호인 '정치는 쫄지마, 경제는

 

속지마'와도 일통한다. 맞기 싫으면, 어느 쪽에서 때리는지를 알아야 피하거나 반격할 수 있다. 추우면 어디가

 

아랫목인지를 찾아야 가서 누울 수 있다. 총선에서 이겼다고, 대선에서 이겼다고 속편하게 배 두드리며 콧노래

 

나 흥얼거리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인 '시민의 정부'는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은 것으로, 앞서 말하였던 '주체들'

 

에 관한 이야기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시민운동의 현재'에서는 여러 가지의 도구로 시민운동을 설명한다. 시민운동의 당위성, 시민운동과 민중운

 

동의 차이, 시민운동 내부의 분위기, 시민운동의 지지기반 등에 관한 내용이다. '시민운동'이라는 용어 자체를

 

몰랐던 이들에게는 귀중한 가이드이다.

 

 

2장 '시민의 정부란 무엇인가'는 연재물을 묶은 탓인지 유기적인 주제의식을 찾기는 어렵다. 느슨한 공약수를

 

찾자면 시민사회와 '정치'가 유기적인 연관을 맺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 가운

 

데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시민적 가치를 담는 방법'이라는 챕터에서 제기된 '캐비닛 연정'으로, 집권을 위해

 

연정을 하되 특정 부처는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 계열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안이다. 우석

 

훈은 여기에서 강기갑 전 의원이 농업을 맡고 진보신당의 노회찬 의원이 법무를 맡는 것은 어떨까, 하는 예시를

 

들고는 유연성과 교섭력의 부재 탓으로 그런 구상이 현실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개인적으로도

 

동의하는 주장이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뻥이 심해지는 공약만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내각 구성안을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지지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보통신부 장관에 안철수, 방통위 위원

 

장에 박경신, 감사원장에 박영선, 해양수산부 장관에 김두관, 같은 식으로. 알맹이 없는 정책 공약보다 후보의

 

의지도 더 잘 보여줄 수 있고, 민주당 외의 연정 세력들도 '비판적 지지'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억울한 감정을 다

 

소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3장 '시민의 정부, 어떻게 만들까?'에서는 현재 행정부 주무부처들의 실상을 고발한다. 행정안전부, 여성가족부

 

등을 비롯해 총 8개 부서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평가가 이어진다.

 

 

4장 '서울시장 선거와 2012년 총선 전후'에서는 시민단체의 성공적인 정계 진입 사례였던 박원순 시장의 선거

 

과정을 복기하고 박 시장이 경계해야 할 점들을 주문하고 있다.

 

 

5장 '변화하는 시민운동'에서는 시민운동의 현황 가운데에서도 내외적 요인에 의해 전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이

 

는 양상들에 대해 언급한다. 예시로 거론된 것은 자금관리의 측면, 시민단체 내 노조활동의 측면, 여성 시민운동

 

의 진화 등이다.

 

 

6장 '시민운동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제목은 '시민운동의 장애물'이나 '시민운동이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바꾸

 

는 편이 더 좋겠다. 시민운동이 맞서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된 '주체'는 총 여섯이다. 오염된 공무원들, 삼

 

성 공화국, 모피아, 혁신 없는 우파 민주당, 상식 없는 행정, 그리고 토건 토호.

 

 

 

 

 

여기까지가 경향신문에 '시민운동 몇 어찌'라는 이름으로 연재되었던 칼럼의 모음이다. 말하자면 1부 제목이자

 

책 제목의 반인 '시민의 정부'에서 '시민'은 '시민단체'를 지칭하는 것에 가깝다. 저자는 1부를 완성하고 난 뒤,

 

시민단체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혹은 시민단체와 함께 가는 과정에서 '시민'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

 

해서까지 써야 할 책무를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집필된 것이 2부인 '시민의 경제'이다. '시민의 경제'의 '시민'

 

은 말 그대로 시민인 셈이다. 2부는 시민의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시민 경제의 내용과 방향성에 대해 언급한

 

다. 꼭지 별로 집필된 1부와 달리, 2부는 이어서 집필된 듯 내용이 유기적으로 얽힌다. 한 줄로 정리하자면 '시민

 

이여 각성하라'정도이겠는데, 기실 이 알찬 내용들을 저런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

 

 

 

 

 

총평. 우리가 사는 사회상을 좀 더 현실에 가깝게 파악하게 하는 정보와 시각, 그리고 저자 특유의 편안한 설명.

 

알차게 꽉꽉 들어찬 이 내용의 전말을 드래그 몇 번 분량 내에 요약하는 것은 애당초 포기한 일이라, 기실 이번

 

독후감은 누구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다시 읽을 나 자신을 위해 대강의 뉘앙스를 정리해 둔 것

 

에 불과하다. 나는 이 책을 반납 전까지 한 차례 더 읽을 것이고, 가격 할인에 들어가면 바로 구입할 것이다. 독

 

서를 권하기엔 형편 없이 모자란 글을 써 놓고 이렇게 마무리를 짓는 것이 면구스럽지만, 시간 되는 사람은 꼭

 

한 번 읽어나 보자. 후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